[ 우리 문학 콘서트(대상도서: 권지예 소설 <붉은 비단보>)에 다녀와서 ]



윤리와 이데올로기의 함정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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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중학교의 국어시험 문제지를 풀어주다가 논쟁이 있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은 조국’이라는 국어선생님의 주장에 화가 나서 정면에서 받아버린 것이다. ‘그럼, 한용운은 조국하고 첫키스를 했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죠!’, ‘무슨 소릴하시는 겁니까? 조국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 연인, 동네 처녀, 이렇게 답했다고 해서 틀렸다니요!’, ‘틀렸지요, 교과서에 조국이라고 나오는 것인데요!’….

     논쟁에서 이겼든 졌든 나는 아직도 ‘님’은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승려 한용운이 여인을 사랑했다니!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겐 ‘님’이 ‘사랑했던 여인’이 되어야 더 아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겐 ‘문학적 진실’이다. 언젠가 ‘문학’은 ‘거짓말이 아닌가’라며 못 박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 ‘허구’라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해서 이야기했던 것이리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쳐다보며 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스토리가 허구라고 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 권지예가 쓴 소설 <붉은 비단보>는 조선시대 세 여자의 이야기다. 눈 내린 대나무 숲을 그리고 싶어 대밭으로 가던 ‘항아’, 뛰어난 자색과 춤 솜씨를 갖춘 ‘초롱’, 그리고 문필 신동이라 불리는 ‘가연’. 그들이 엮어 갔던 ‘좌절된 사랑’의 이야기이며, 시대의 윤리적 잣대 속에서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꿈꾼 조선시대 여인들의 이야기다. 서울로 시집을 간 ‘항아’는 현모양처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붉은 비단보 안에 정인의 흔적들을 고이 간직해두고 고달픈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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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30일 <우리 문학 콘서트>에서 만난 작가 권지예는 소설 속의 ‘항아’가 율곡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알려진 ‘신사임당’이 모티브였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붉은 비단보’ 안에 정인(情人)의 ‘모든 것’을 간직해두고 겉으로는 양반가의 현모양처로 살았던 ‘신사임당’이라니! 그렇다면 ‘향아’의 친구 ‘초롱’은 ‘황진이’, ‘가연’은 ‘허난설헌’, ‘항아’가 사랑했던 ‘초롱’의 오빠 ‘준서’는 ‘허균’이 모티브가 된 것이 분명하다.

     “많이 망설였지요. 이러다가 신사임당의 종친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구요(웃음). 그러나 소설가에게 그런 상상력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내가 왜 소설을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작가답다. 훌륭한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로서의 외부적인 모습보다는 예술가로,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꿈꾸는 여인으로 ‘신사임당’(아니 '항아'인가?)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현모양처인 ‘신사임당’과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신사임당(항아)’.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은 중요치 않다. ‘겉과 속이 다른 여자’라고 욕해도 할 말은 없다.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 만든 것은 ‘라캉’이 말하듯 ‘이상’과 ‘선’을 위한 윤리이고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겐, ‘사람’으로서의 신사임당이 ‘진실’이다.

     “... 라캉의 윤리학이 있다. 일반적으로 윤리학이 추구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이상(Idea)’ 혹은 ‘선(good)’이다. 그러나 그런 윤리학들은 속임수가 아닐까 하고 라캉은 묻는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선한 것들은 과연 ‘언제’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선한 것들은 과연 ‘누구에게’ 선한 것인가 말이다. 라캉은 이상의 윤리학과 선의 윤리학이 유토피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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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우리의 뮤지션 제클린도 소설 <붉은 비단보>에 이렇게 곡을 붙이고 노래했다.


      ♬♪사랑, 내게 없고 늘 있는♬♪

      1.
      가슴을 아무리 꼭 여며도 빼앗길 마음은 빼앗기나요
      파문 이는 호수에 그리움들이 멀리멀리 퍼져만 갔죠

      흐르는 물처럼 끊을 수 없고 안개처럼 가둘 수 없는 이 마음
      잡지도 못하는 바람으로 나의 곁을 맴도는 당신

      마음 문 꼭 닫고 인연의 고리 끊으면
      몹쓸 사랑의 꿈에서 깨어나려나

      하지만 흩어버릴수록 가슴 깊은 데서
      울려오는 당신이란 북소리

      2.
      흐르는 물처럼 끊을 수 없고 안개처럼 가둘 수 없는 이 마음
      잡지도 못하는 바람으로 나의 곁을 맴도는 당신

      마음 문 꼭 닫고 인연의 고리 끊으면
      몹쓸 사랑의 꿈에서 깨어나려나

      내게 없었고 또 내게 늘 있었던 당신
      세상 끝에서라도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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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권지예

     1960년 경주 출생.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근대문학에서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연구로 7년간의 연구 끝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1997년에 <꿈꾸는 마리오네뜨>와 <사라진 마녀>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 무덤>, 장편소설로 <아름다운 지옥 1, 2>가 있다. 그림소설집으로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고흐,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 홀릭> 등이 있다.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꽃게 무덤>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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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문학 콘서트

     (주)행복한상상(www.isangsang.kr)이 주관하고, 강남구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문학과 음악과의 만남 행사.  월 1회 대상 문학 도서의 작가가 초청되어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갖고, 뮤지션 제갈인철(제클린, http://blog.naver.com/icjackal )이 대상 문학 도서에 대해 작사, 작곡을 해 콘서트를 연다. 행사 일정은 (주)행복한상상 웹페이지(www.isangsang.kr)에 공지된다.



2009/07/15 07:31 2009/07/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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