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꿈꾸는 카메라 in Zambia> 사진전
...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되었어. 오늘날에는 19세기와 같은 ‘물질적인 결핍’이 사라지게 되었지. 하지만 벌써 사라졌을 것 같은 기아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 하고 있어.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굶주림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더 심해지고 있어.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 거야. (중략)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오늘날 세계는 60억 정도(세계 인구는 2006년 2월 26일 현재 65억 명을 넘어섰다)되지. 하지만 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였어.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예기지. (중략) 식량이 제대로 분배된다면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고도 남게 될 거야. (중략)
서구의 부자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되고 있다고 보는 거야.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 텐데,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지. 그런 사람들은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긴단다. 산소 부족과 과잉인구에 따른 치명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다는 거야.
이런 설명은 전형적인 유럽적, 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란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논리지. 자신들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영양실조로 팔다리가 비쩍 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벵골이나 소말리아, 수단의 엄마들이 그 아이들의 죽음과의 싸움이 ‘자연이 고안해 낸 지혜’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니? 그런데도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은 엉터리 신화, 즉 기근이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한다고 믿고 있단다. (중략) 자연도태라. 이 말은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야. 그런데도 이런 표현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아빠는 여러 대학과 제네바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회의, 그리고 유엔의 책임자들과 사적인 대화에서 이 말을 수수히 들어보았어. 숙명적인 기아가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중략)
18세기말 영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라는 사람이었어. 맬서스는 1798년 인국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어. 이 논문에서 맬서스는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 아픈 일이긴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중략)
그의 책은 출판되자마자 유럽의 지배층에서 널리 읽혔고, 산업화 초기의 국민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단다. 맬서스의 주장으로 오늘날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 (중략)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
- 징 지글러(Jean Ziegler)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고파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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