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opyright by Mudbull

▲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경북 구미 금오산





     ... 그(토마스 상카라)는 어떤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곧 근본적인 개혁에 나섰던 거야. 이미 말했지만, 당시 부르키나파소에서는 공무원 수가 3만 8,000명에 달했어. 턱없이 많은 인원이었지. 더구나 대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어. 그들은 종래의 지연과 혈연 등으로 똘똘 뭉쳐 있었지. 사실 1960년대 들어 형식적이나마 독립을 이룩한 아프리카 나라들의 사정은 대체로 이와 비슷했지. 행정조직은 거대하고 비효율적이었어. (중략) 이것은 젊은 혁명가들에게 정말 힘겨운 과제였어.(중략)

    상카라가 인두세 폐지에 이어 취한 조치는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였어. 그 전에는 마을의 운영책임자들이 마음대로 땅을 할당해주었지. 그러고는 그곳에 무엇을 경작해야 할지 명령하고 농사 일정을 결정하는가 하면, 파종과 추수 의식을 주관하고 돈이나 수확물, 혹은 강제노동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징수했어. 그러나 토마스 상카라가 권력을 잡은 뒤로는 농업부서 토지대장을 작성했어. 토지는 각 가정의 수요에 따라 재분배되었지. 그래서 어떠한 강제적 징수도 없이, 농민들은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단다.

    정말 놀라웠지! 4년도 지나지 않아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어. 국가지출도 줄었고, 그래서 자금이 도로나 상수도 건설, 농업교육의 보급, 지역의 수공업촉진 사업 등에 우선적으로 투자되었지.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다민족의 복잡한 사회구성은 한층 민주적이고 정의로워졌지. (중략)

     부르키나파소의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대부분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상카라의 개혁으로 불공평함이 없어지면서, 인간다움과 자부심을 되찾으며 웅대한 희망에 불타올랐던 거야. 이 희망은 서아프리카는 물론 중부아프리카 지역에 이르기까지 빛을 발했어. 부르키나파소가 경험한 개혁의 희망은 정치부패에 시달리고 있던 이웃나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어. 코트디부아르의 우프에 부아니 대통령, 가봉의 봉고 대통령, 토고의 에야데마 대통령 등의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지.

    이런 정권들은 하나같이 프랑스의 꼭두각시야. 프랑스 본국 정부의 일부 세력은 상카라의 개혁을반기지 않았지. 예언자는 살해되어야 했어. 상카라는 결국 자신의 동지이자 참모였던 콤파오레에 의해 살해되었지. 콤파오레는 현재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란다. 토마스 상카라의 죽음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죽음과 비슷해. 외국 세력의 조종을 받은 자국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잖니.(중략)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의 커다란 희망도 깨졌지. 콤파오레 치하의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말았어. 완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북부지방의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절망하는 농민들…...


     - 징 지글러(Jean Ziegler)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고파스, 2009)





2010/06/09 03:32 2010/06/09 03:32

트랙백 주소 :: http://kwak.hosting.paran.com/tc/trackback/59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