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2009공예트렌드페어
... 예링은 산업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이제 패션은 개인적 동기를 넘어 사회적 동기를 얻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예링은 패션을 개인적 욕망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학 층위에서 사유합니다. 벤야민이 인용한 패션에 대한 예링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패션은 상류사회로부터 기원합니다. 상류사회는 스스로 하류사회와 구분하기 위해서 새로운 패션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패션은 중간계급이 상류사회의 패션을 모방하자마자 곧바로 소멸됩니다. 중간계급이 상류사회의 패션을 모방하게 되면, 특정한 패션은 상류사회를 중간계급으로부터 구별할 힘을 상실합니다. 셋째, 중간계급에게 패션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폭군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스스로 상류계급을 지향하는 중간계급으로서는 상류계급이 택한 패션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중략)
푹스*에 따르면 패션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합니다. 첫째, 패션은 예링이 지적했듯 상류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계급적인 구별을 두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패션은 계속 매출을 올려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은 인간에게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중요합니다. (중략)
산업자본은 부단한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상품을 생산하지 못 하거나 혹은 생산된 제품이 소비되지 않으면 산업자본의 흐름은 중단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상품의 생산이나 소비 차원 중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소비의 측면입니다.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본이 필요한데, 그 자본은 기존 제품이 소비되어야 비로소 확보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소비자의 소비 욕망을 부단하게 불러일으키는 일은 산업자본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활이 걸린 결정적 문제가 되겠지요. 그래서 새로운 상품은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됩니다. 그것은 소비자 스스로 기존 상품이 낡은 것임을 깨닫게 하여 소비 욕망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됩니다. 새로운 상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바로 보들레르를 매혹했던 아케이드, 벤야민이 성찰했던 백화점, 현대의 잡지/신문 인터넷과 같은 대중매체 그리고 영화와 같은 대중예술입니다.
이제 패션과 관련되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번째 측면, 즉 에로티시즘과 패션과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중략) 피셔와 푹스를 통해 벤야민은 패션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심화해 나갑니다.
어느 세대든 바로 이전 세대의 패션을, 생각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철저한 황-최음제로서 체험한다. 이런 판단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초점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패션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사랑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포함하며, 모든 패션 속에는 극히 무자비한 방식으로 성적 도착의 기미가 들어 있다. 모든 패션은 유기적인 것과 대립한다. 모든 패션은 살아 있는 육체를 무기물의 세계와 결합시킨다. 살아 있는 것에서 패션은 사체의 모든 권리를 감지한다. 무기적인 것에서 섹스어필을 느끼는 물신숭배야말로 패션의 생명의 핵이다.**
(중략) 여기서 잠깐 옷과 성적 욕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한 통계에 따르면 나체촌에서는 성촉력이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통 노출이 심할수록 상대방에게 강한 성적 매혹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약간의 노출보다는 오히려 나체가 다 큰 매혹을 불러일으킨다고 추정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정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노출이 심한 경우 중요한 것은 노출된 몸 자체가 아니라, 몸의 특정 부분을 가린 작은 옷입니다. 밀월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가 몸속이 은은히 비치는 잠옷이나 속옷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겠지요. 그렇다면 완전한 나체보다는 작은 옷 혹은 비치는 옷처럼 은근한 노출이 왜 더 강한 성적 매력을 발산할까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욕구(need)와 욕망(desire) 구분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욕구나 욕망은 모두 어떤 결여를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욕구가 단순히 부족한 것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욕망은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여전히 충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욕구보다 좀 더 복잡합니다. 욕망이란 욕구가 교묘하게 뒤틀려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 성적인 경우에도 이처럼 욕구와 욕망의 단계를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적령기가 되면 동물이나 인간은 모두 이성에 대한 성적 욕구, 즉 성적 결핍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발정기 때 동물들은 허겁지겁 짝짓기를 수행하지요.
그러나 인간은 성적 대상 앞에서 성적 욕구를 느끼지만 상대방과 와인을 마시거나 애무를 하며 직접적인 성교를 뒤로 미룹니다. 이런 측면에서 욕망이란 욕구에 기생해서 작동하는 메타적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결여를 느낄 때 그것을 곧바로 충족시켜버리면, 욕망은 욕구보다 훨씬 커지게 되지요. 물론 욕망이 힘이 너무 강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때,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욕구를 충족시켜 그 욕망의 힘을 잠재워 버립니다.
이제 옷이 성적 욕망과 관련하여 어떻게 적용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옷은 분명히 성교와 관련된 직접적인 성적 욕구의 충족에는 분명 방해가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요. 성적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더욱 강한 욕망을 발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옷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옷은 아예 성적 욕구, 즉 성적 결핍감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패션과 관련된 산업자본이 우리에게 개입하는 결정적인 대목입니다.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만든다면, 그것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겠지요. (중략)
이제 본격적으로 에로티시즘과 패션에 관련된 벤야민의 논의를 분석해봅시다. 그에게 패션이란 기본적으로 성적 페티시즘(fetishism)***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옷이란 장치는 성적 결핍감을 불러 일으키고 동시에 그 충족을 가로막지요. 이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강화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수단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제는 수단으로서의 옷 자체에 자신의 성적 욕망을 모두 투사하는 것이지요.
벤야민의 말대로 옷은 기본적으로 ‘무기물’, 다시 말해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옷 속의 몸은 ‘유기물’이고 살아 있지요. 성적 욕망이나 사랑은 모두 살아 있는 개체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중략) 사람들은 이제 무기물로서의 옷 자체를 오히려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중략) 벤야민의 복잡한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성이 어떤 패션을 연출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성적 욕망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현상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패션이 일종의 페티시즘, 혹은 성적 환상을 함축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중략)
벤야민은 패션이 가진 패티시즘을 추적하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합니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옷이 가진 성적 페티시즘은 원래 머리카락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략) 인간, 특히 여성의 몸 중 유행을 손쉽게 받아들이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머리카락입니다. 머리카락은 잘려서 미용실 바닥에 떨어지면 무기물로 변합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육체의 부분으로서 머리카락은 분명 살아 있는 유기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머리카락이 패션의 장소가 된다는 점입니다. 머리카락은 생명의 일부로서 계속 자라납니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은 다양한 유행을 계속해서 받아들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머리카락은 자라나고, 그러면 여성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카락에 최신 유행하는 패션을 입힐 수 있겠지요. 머리카락이 인간에게 최초의 옷이자 최후의 옷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체로 있다고 해도 칠흑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이 돌아앉은 여인의 등을 타고 흐른다면, 그 모습은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옷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도시 곳곳에 다양한 미용실을 생각해보면, 혹은 결혼식에서 신부의 화려한 머리장식을 생각해보면, 머리카락은 현재도 여전히 성적 페티시즘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략)
만약 언젠가 산업자본이 붕괴되는 날이 온다면 패션에 대한 페티시즘도 소멸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머리카락에 대한 인간의 최초의 페티시즘은 훨씬 더 오랜 기간 존속하겠지요. ...
-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세시스, 200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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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라르트 폭스(Eduard Fuchs, 1870~ ? )
**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87a, 4)
*** 페티시즘(fetishism) : 인공물 또는 간단히 가공된 자연물에 주력(呪力)이 깃들인다고 믿고 이를 숭배하는 것. 영물숭배(靈物崇拜)라고도 한다. 숭배 대상은 동식물, 금석류(金石類), 주문(呪文), 주부(呪符), 주약(呪藥), 주구(呪具) 우상과 상징물 등이다. 주물을 나타내는 페티시(fetish)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라는 뜻의 팍티티우스(factitius)에서 유래했으며, 직접적으로는 포르투갈어인 페티소(fetico;부적·주물이란 뜻)에서 파생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성자(聖者)의 유해나 유물 등을 페티소라 하여 숭배하는 민간신앙이 있었는데,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의 현지인들이 나무·돌·치아·손톱·나무조각·조가비 등을 모발 등으로 싸서 호부(護符)처럼 휴대하면서 숭배하는 것을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보고 이를 그들의 민간신앙에 관련시켜 페티소라 불렀던 것에 연유한다. 페티시즘(fetishism)은 심리학에서는 주로, 남성이 여성의 몸의 특정 부분이나 속옷·스타킹·구두 따위를 보거나 만지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 심리를 일컫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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