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ew ]
-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역사의 아침, 2009) -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역사의 아침, 2009)을 읽었다. <<왕을 위한 변명>>, <<조선의 왕>>,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등의 책을 펴낸 저자는 역사학자답게 ‘사실’에 충실해 원경황후, 정희왕후, 인수대비, 인목황후, 혜경궁 홍씨, 명성황후 등 일곱 왕비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냈다. 왕비가 되기 전의 어린 시절, 성장 환경, 친정의 가문 배경까지 다뤄 왕비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의 일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7년 5월 초판을 발행하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13쇄를 찍었다.
사실, 실록(實錄)이란 한 임금의 재위 기간 동안 그 사적을 기록한 것이라 왕비의 삶이 자세하게 담길 수 없다. 실록은 국가 통치자의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보니 이권이 개입될 수 있으며 자칫하면 사화(士禍)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민감해 철저하게 사실만을 기록한다는 원칙에 의해 편찬되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하여 국가의 각종 회의나 모임에 참석한 사관들이 사초를 기록하고, 이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임금이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실록을 편찬한 뒤에는 사관들이 썼던 사초는 세초(洗草)라고 하여 모두 물로 씻어 없애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이렇게 철저한 보안 속에 조선시대 임금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의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처럼 자신의 의견을 더하지 않고 일곱 왕비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써내려 갔다. 조선 왕비들이 주인공이니 ‘조선왕비’, 사관처럼 사실만을 기록했으니 ‘실록’이라 이름 붙여 ‘조선왕비실록’이라는 표제를 달았다. <<조선왕비실록>>은 역사 속에 잘 드러나지 않는 원경황후, 정희왕후, 인수대비, 인목황후, 혜경궁 홍씨, 명성황후 등의 어린 시절과 그녀들을 둘러 싼 사람들의 관계 등을 행록과 행장, 묘지명 등 여러 사료를 고증해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그려내고 있다. ‘조선시대 왕비들의 삶과 당시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진실되고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머리글은 의도를 배제하고 사실만을 말하겠다는 역사학자로서의 신념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사서의 기록이 반드시 그 사실만을 기록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선왕조실록>>조차 사실을 기록한 사초를 바탕 삼지만 왕이 죽은 다음해 춘추관(春秋館)에서 좌/우의정을 총재관으로 하여 편찬되기 때문에 그 편찬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고 비틀려질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의 일화에서처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연과학도 비틀려지는데, 인문학에 속하는 사학(史學)이 온전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서라고 해서 과거 일어났던 수많은 모든 사건들, 존재했던 유?무명의 모든 사람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다. 어떤 사실은 버려지고 어떤 사실은 선택되어 기록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사실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의도적으로 특정 사실만을 나열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계열화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 1892-1982)는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왜곡될 수밖에 없으며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이라고 말하고, 심지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 자체가 불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역사는 가치를 가진다. 한 번 정리되고 기록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시 재구성되면서 역사는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가 신명호가 조선시대 왕비의 삶을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을 뿐인 이 책 또한 의도하지 않더라도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책 <<조선공주실록>>(역사의 아침, 2009), <<궁궐의 꽃, 궁녀>>(시공사, 2004), <<조선의 궁궐에서 일했던 사람들, 궁>>(고래실, 2006)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명호가 그 동안 우리나라 역사의 주인공(master)이었던 임금이나 중요 관료들이 아니라 조연(supporter)에 속에는 공주, 궁녀, 일하던 사람들에 주목한다는 것은 지배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메이어(major)에서 마이너러티(minority)로, 단일화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나가는 우리 시대의 방향을 짐작케 한다.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저자의 역사서에서 그 대상이 왕에서 왕비로, 궁녀로 바뀌고 그 책이 대중들로부터 관심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시대정신이 단일화된 지배중심 문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가진 문화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며, 이 시대정신이 저자에게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정의 사실이 집중적으로 나열되고 계열화되면 동시대인에게 봉상스(bon sens, 양식)를 형성하고, 이 약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다시 계열화하며 한 시대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 좋은 예가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의 반응이다. 혹자는 이 책을 두고 남성 중심의 역사와 여성 중심의 역사라는 시각으로 리뷰를 쓰고, 심지어 출판사 서평초차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거의 모든 공은 남성에게 귀속되었고, 그것은 왕비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에서 왕비는 분명 존재했음에도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라고 쓰며 과거 봉상스로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오해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인의 역사 인식도 포함된다. 그 오해의 진원지는 대부분은 과거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역사서에 의지해 단편적으로 바라보거나, 과거의 역사를 당시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으로 임의적으로 조립하고 양식화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과거 우리의 사회를 두고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양식화하는 것이다. 이 일반화는 남북분단 상황, 그리고 산업화를 앞세우던 6,7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가부장적 지배논리를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충효사상(忠孝思想)이 강조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양식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주역은 지배층 중심의 역사 교육이었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에는 과거 조선시대 지배 논리로 이용되었던 유학(儒學)이 놓여 있다.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하고, 열녀비를 세우면서 불사이부(不事二夫)가 강조되었다는 등의 교육을 받고, 당시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양식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도리어 그 반대일 수가 많다. 합목적적 질서체계(合目的的 秩序體系, 법규나 규칙, 규정 등)는 어떤 성향들이 사회 질서를 해칠 정도로 많이 나타날 때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하고 불사이부의 정신이 강조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많은 여성들이 재혼을 하고 비정상적인 사랑이 성행해 사회 질서를 해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신윤복의 그림 중 가장 빼어난 수작으로 꼽히는 ‘단오풍정(端午風情)’에는 가슴을 드러내 놓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여인들 너머 이를 바라보는 남정네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기다림>이라는 그림에는 뒤뜰에서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사대부집 여인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그림뿐만 아니라 이런 사실은 현재 남아 전하는 대부분의 고대가요, 향가, 속요, 별곡에 나타나고 심지어 주류 정통 역사서에도 많이 보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고려사에는 재상인 조석견을 방문한 강윤충을 유혹하는 조석정의 처 장씨 이야기가 나오고 주로 여성들이 먼저 강윤충을 유혹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정한 기준(제사)에 따라 아들이나 딸에게 모두 공평하게 재산을 상속하고, 거의 태반의 남성들이 ‘장가 가서’ 아예 처가에서 생활하던 역사적 사실을 버려두고 당시 지배논리에 맞는 사실만이 나열되면서 과거 우리의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라고 계열화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 철학자 슬로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우리는 모두 이데올로그’이며 또한 ‘이데올로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일곱 왕비의 삶을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스스로 사초를 기록하던 사관처럼 철저한 고증에 의해 객관적인 사실만을 써내려 갔다. 그러나 잘 반추해 본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이 역사서를 읽는 재미다. 아 참, 잠깐. ‘모든 사람이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는 저자의 첫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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