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Photo/기타'에 해당되는 글 97건

  1. 2011/12/03 이우 곽원효 사물에의 의존 Vs 인간에의 의존 : 루소의 <에밀>
  2. 2011/11/28 이우 곽원효 법가(法家)의 법(法), 세(勢), 술(術)
  3. 2011/11/28 이우 곽원효 춘추전국시대, 전쟁을 피하는 방법 : 양주 Vs 한비자
  4. 2011/11/12 이우 곽원효 과학사는 단절적인 혁명의 과정이다_토머스 쿤
  5. 2011/11/03 이우 곽원효 사랑_ 대타존재(代打存在)'와 대자존재(代自存在)
  6. 2011/05/13 이우 곽원효 절대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에서
  7. 2011/03/30 이우 곽원효 고독한 군중(Lonely Crowd)
  8. 2011/03/29 이우 곽원효 아비튀스(Habitus)
  9. 2011/03/25 이우 곽원효 철학의 이해
  10. 2010/06/27 이우 곽원효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자본_ 부르디외 (2)
  11. 2010/06/25 이우 곽원효 사용가치, 교환가치, 기호가치, 상징가치_ 보드리야르
  12. 2010/06/16 이우 곽원효 패션의 에로티시즘과 산업자본_벤야민
  13. 2010/06/15 이우 곽원효 공간과 일상과의 관계_짐멜
  14. 2010/06/09 이우 곽원효 자연도태 혹은 약육강식_ 징 지글러
  15. 2010/06/09 이우 곽원효 식량의 무기화_ 징 지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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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다산 유적지 / Photo by 이우




   교육이론서의 고전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 루소의 <에밀>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 모든 것은 선했지만 인간의 손 안에서 모든 것은 타락한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자연상태에서는 본래적으로 선한 존재이지만 문명화 된 사회 안에서 악에 물들었다는 기본적인 전제 위에서 루소는 자연상태와 같은 갓 태어난 어린이의 타락하지 않은 상태를 어떻게 잘 유지할 것인가를 교육의 과제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외면적 직업을 위한 훈련으로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대하여 루소는 인간이 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는 자연주의적인 교육을 최고의 교육적 이상으로 삼았다. 좋은 교육이란 어린이를 어떤 특별한 사회적인 조건하에서 양육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 - 따라서 모든 조건에 적합한 인간과 시민을 육성해내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루소의 교육론은 과거의 교육이론과 완전히 결별하는 새로운 것이었다. 루소는 자신의 입장이 타협과 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독창적임을 의식하고 이전의 교육방법을 고수하던가 아니면 전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채택할 것을 권하였다. 루소가 교육의 영역에서 가져온 새로움이란 우선 유아기의 특수성과 가치의 재인식이다. 루소는 어린이를 더 이상 어른을 기준으로 하여 이해하지 않고 어른과는 차이나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어린이의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 동안의 관찰을 중시하였다. 미완성의 과도기적인 단계로 간주되던 유아기를 그 나름대로 완성된 삶의 형태로 본 것이다. 어린이가 자신의 유아기를 향유해야만 한다는 것은 결국 행복과 그 조건이 되는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론을 의미한다.

   이 때 자유는 방임이 아니라 자연을 뜻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흐름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소의 교육하지 않는 교육, 이른바 '소극적 교육'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교육이 아니라, 선하게 타고난 존재인 어린이에게 섣불리 교훈을 주고 미덕을 주입시키지 말고 단지 범할지도 모르는 실수와 악덕을 예방하고 장차 지식 습득을 위한 능력들을 완성하면서 자연적인 성장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의 교육학은 자연적인 순서에 의해서 순차적으로 발달하는 인간능력들의 발달심리학에 의거하고 있다.  루소는 최초로 교육학을 심리학 위에 세움으로써 근대 교육학의 선구가 되었다.


     … 의존 상태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물에의 의존인데, 이것은 자연에 기인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인간에의 의존인데 이것은 사회에 기인하고 있다. 사물에의 의존은 하등의 교육성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자유를 방해하지 않고 악을 낳는 일은 없었다. 인간에의 의존은 무질서한 것이어서 모든 악을 탄생시켜 지배자와 노예가 서로 상대방을 타락하게 만든다.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악에 대하여 저항하는 어떤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대신의 자리에 법을 놓고 일반 의지에다 현실적인 힘을 부여하여 그것을 개별 의지로 행하는 모든 일에 놓는 일일 것이다. 모든 국민의 법률이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인간의 힘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는 불굴의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에의 의존이 사물에의 의존으로 바꿔질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안에서 자연 상태에 있는 모든 이익이 사회 상태의 이익과 연결된다. 인간이 악에서부터 빠져 나오게 하는 자유의 인간이 미덕을 향해 올라가게 해주는 도덕성을 연결시키는 결과가 된다.

 아이를 오직 사물에의 의존상태에 머무르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교육의 진행 과정이 자연의 질서를 뒤따르는 결과가 된다. 아이의 분별없는 의지에 대해선 물리적 장애만을 주는 것이 좋겠다. 혹은 행동 그 자체에서 생기는 벌만을 주는 것이 좋겠다. 나쁜 일을 하려는 것을 막거나 하지 말고 그것을 방해만 하면 된다. 갖고 싶어 한다고 줘선 안 된다. 필요할 때만 주어야 한다. 아이가 행동할 때 복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기의 행동에 있어서도 당신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자유를 느껴야 한다. 명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의 힘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모자랄 때에는 보충해 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당신의 협조를 겸허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그런 협조가 없이도 할 수 있는 때를,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때를 갈망하도록 해야 한다 …

- 루소, <에밀>중에서



    루소가 <에밀>과 <사회계약론>을 동시에 집필하고 출간하였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루소가 얼마나 정치적인 문제를 교육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루소에게서 교육학은 분명 정치학과 만난다. 왜냐하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이상의 실현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하며 가장 잘 만들어진 법률이라 할지라도 개인 의지가 일반의지에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을 지배하려면 그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며, 자유시민의 교육에 관한 <에밀>은 정치이론서인 <사회계약론>을 보완하는 글로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에밀>에는 <사회계약론>이 요약되어 있기도 하다.

    루소의 시대는 지배자 권력과 피지배자의 구속으로 유지되는 사회였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 상태에서는 어떤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자연 상태의 사회 질서는 만드는 일이다. 서로에 대한 의존 상태를 벗어나 보편적이며 영원한 자연권을 누리는 자유인이다. 이를 위해 지배와 의존의 인간관계를 대신하여 신의 듯에 의한 자연법을 확립하고 왕권의 횡포를 뜻하는 개별 의지를 배제하고 일반 의지를 세워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낡은 사회를 파괴하고 합리적 인간 이성이 공동체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를 보장하는 법칙이 자연 법칙이라면 공동체의 사회 질서는 바로 일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한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 상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러한 루소의 사회학적 논의는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에게 규제를 가하고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교육 기능이지 그것이 당시 어른들이 서로 상호 간에 맺고 있었던 지배와 복종의 원리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들에게도 필요했던 자유, 자연적 질서였던 것이다.  

    1762년 5월 말경에 출간된 <에밀>은 그해 6월초에 이미 소르본과 파리의회에 의해 금지되었고, 저자가 체포령을 피해 스위스로 도주해서 1766년 1월 영국으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에밀>은 루소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규정한 작품으로서 그의 인간학으로부터 도출된 교육론 체계를 담고 있었다. 게다가 <에밀>에는 루소가 특별히 애착을 갖는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La profession de foi du vicaire savoyard>이 포함되어 있다. 이 텍스트에는 유물론 반박, 원죄설의 거부, 다양한 '역사적 종교'들을 넘어서 있는 순수한 '자연종교'에 대한 생각 등 루소 사상에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들이 담겨져 있다. 이렇게 종교철학적으로 볼 때 루소는 이신론자(理神論者)로서 '자연종교' 이외에 역사적 종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식의 내면적 증거에 근거하는 동시에 이성과 합치하는 자연종교는 미묘한 신학적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도덕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개의 큰 진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신조로 삼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고 보편적이다. 여기서 루소가 말하는 자연종교가 기본적으로 믿는 것은 ‘섭리하는 신의 존재’와 ‘영혼불멸’ 그리고 ‘의지의 자유’ 등이다. 바로 이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이 갖고 있는 종교적 시각으로 인해 <에밀>은 금서가 되었다.


2011/12/03 11:32 2011/12/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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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남이섬 / Photo by 이우




   법가(法家)는 실용적인 정치 철학으로 전국(戰國)시기에 형성되었다. 춘추(春秋) 후기에 노예의 끊임없는 폭동과 봉건 지주계급의 흥기로 인하여 기존의 노예주 귀족계급 통치를 유지하였던 "예치(禮治)"가 점차 붕괴되어 효력을 상실하였다. 이에 유가의 "예치(禮治)"사상에 대립하여 각 제후국에서는 변법을 통하여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풍조가 출현하였다.


  전국(戰國) 초기에 위(魏)나라의 재상 이회(李悝 , 약 B455~BC395)는 ≪법경(法經)≫을 편찬하고 솔선하여 위(魏)나라에서 변법(變法)을 단행하였다. 계속하여 오기(吳起, BC 약 440 BC 381)는 초(楚)나라에서 법률을 개편하였다. 전국(戰國) 중기에 상앙(商鞅 , 약 BC390~BC338)은 진(秦)나라에서 변법(變法)을 실행하였다. 또 한(韓)나라의 신불해(申不害), 조(趙)나라의 신도(愼到) 등도 모두 자국에서 연이어 변법(變法)을 실행하였다. 이들은 모두 각국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정치가들로 잔존해 있던 노예주 귀족계급의 정치 경제통치를 청산하고, 봉건적인 정치 경제제도를 확립 발전시키기 위해서, "변법(變法)"을 통하여 구귀족의 정치에 대한 전횡을 타파하고 관료정치로써 귀족정치를 대체하여 국가권력을 봉건군주에게 집중시킬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걍력한 제도와 법령을 공포해서 전국의 모든 사상을 통일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以法治國)"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강력하게 실행하였던 이러한 정치가들의 사상 이론과 실천은 각종 사조(思潮)가 격렬하게 경쟁한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의 주장은 "법치(法治)"를 핵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법가(法家)"라고 일컬어진다.


  한비자는 신불해, 신도, 상앙 등의 초기 법가사상을 종합하여 "법치(法治)"를 중심으로 삼고 법(法), 세(勢), 술(術)이 서로 결합한 관점을 주장하였다. 한비는 "술"만 언급하고 "법"을 중시하지 않은 신불해와, "법"만 언급하고 "술"을 중시하지 않은 상앙의 사상은 모두 군주의 통치에 불리하므로 정확한 방법은 법, 술, 세 삼자를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비자는 먼저 정권의 천하통일에 유리한 준칙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법(法, 군주는 인민을 통제하는 공개적이고 자세한 규칙)"이었다. 그는 사회가 모두 반드시 "법"을 준수해야 하며 누구든지 "법"을 위반하면 징벌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법령을 "명(名)"이라 하고 법령에 의거하여 상벌을 가하는 것을 "형(刑)"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유명한 "형명지술(刑名之術)"이다.


  한비자는 또한 중앙집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술(術, 신하들을 지배하는 은밀한 방식)"도 필요한데, "술"은 군주가 "법"에 의거하여 관료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법"은 공개된 것이고 "술"은 은폐된 것이며 "술"이 있으면 국왕은 정권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법"과 "술" 외에도 한비는 "세(勢, 인민과 신하를 굴복시키는 힘)"를 주장하였다. 이른바 "세(勢)"란 바로 정권이며 "승세(乘勢, 세를 타는 것)"는 바로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는 신도의 "중세(重勢)"설을 수용하고 발전시켜 "세(勢)"를 "자연지세(自然之勢)"와 "인위지세(人爲之勢)"로 구분하고 "인위지세(人爲之勢)"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세"와 "법"을 결합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공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시대(BC 475~221)에 한비자(韓非子)의 영향을 받아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秦:BC 221~206)의 이념적 토대를 이루었다. 법가는 인간의 실제행동에 따라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백성이 통치자의 미덕을 인정한다고 해서 사회적 화합이 보장되지는 않으며, 오직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을 통해서만 사회적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법가는 특정한 행동에 대해 엄격하게 상벌을 내리는 법률체계를 내세워 정부를 옹호했다. 또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통치자와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11/28 13:02 2011/11/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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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Canon EF 50mm / Photo by 이우




   ... 슈미트(Carl Schmitt)는 적과 동지라는 범주가 작동하는 순간 이미 ‘정차적인 것’이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기구이다. 국가는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적을 규정할 수 있는 탁월한 역능을 가진 존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전쟁 기구의 성격을 갖게 된다. 국가는 내적으로 ‘적’을 설정하면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일부 국민들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고, 외적으로는 다른 국가를 ‘적’으로 간주하면서 실질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도 있다. 대립과 갈등 속에서 이득을 얻는 것은 국가이고 피를 흘리면서 사라져가는 것은 국가의 구성원인 개별적인 인간들이다.

  국가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간들은 끝내 분열과 대립을 피할 수 없다. 국가라는 것 자체가 어떤 조직 혹은 집단의 분열 및 그 분열로 인한 갈등을 먹이 삼아 성장하고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 그리고 전쟁을 이 세계로부터 추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슈미트의 논리가 그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폐기하여 ‘정차적인 것’이 작동하지 않도록 할 수만 있다면, 거듭된 국가의 발호를 원초적으로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무의식적으로나마 ‘정치적인 것’의 소멸만이 국가, 전쟁, 그리고 적대관계를 막을 수 있다고 고백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인류란 보편적인, 즉 지상의 전 인류를 포괄하는 사회적 이상 구조이며, 투쟁의 현실적 가능성이 배제되고, 어떤 적과 동지의 결속도 불가능하게 된 때에 비로소 현실적인 존재가 되는 개개인 상호 관계의 체계이다. 이 보편적인 사회 내부에는 정치적 통일체로서의 어떤 국민도, 나아가서는 투쟁하는 어떤 계급, 적대하는 어떤 집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Der Begriff des Politischen)> 중에서 )


   제자백가들이 활동했던 고대 중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철학자는 공자도, 맹자도, 장자도, 노자도 아니라 양주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묵자와 함께 당시 사상계를 양분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였던 것이다. 모든 사상가들이 얼룩진 당시 사회를 통합시키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이념을 제안하려고 했을 때, 오직 그만은 사회를 통일하려는 이념 자체가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다. 양주에 따르면 인간의 삶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숭고한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수단으로만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당시 새롭게 제안된 다양한 이념들은 그의 눈에는 인간에게 자신의 고유한 삶을 되돌려주기보다 오히려 또 다른 새로운 이념을 위해 인간의 삶을 희생하도록 유혹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인간의 삶을 수단으로 보기를 포기했을 때,양주는 국가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날 수 있었다. 국가주의를 선택했던 한비자가 양주의 철학을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실 한비자 자신도 맹목적인 국가주의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대다수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강력한 국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한비자는 중요한 수단으로 긍정된 국가란 결국 나중에는 그 누구도 공경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적이 되고 만다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



양주 : 자유로운 개인들이 공동체는 가능하다

  전쟁으로 얼룩진 전국시대를 종결시키는 방법으로 양주가 제안한 것은 표면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세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그가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전체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원인이 국가나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때, 오직 양주만이 무질서의 원인이 ‘바람직한 사회를 위하여 삶을 희생하라’고 선동하는 유가, 혹은 묵가의 국가 지향적 이념에 놓여 있다고 간파했기 때문이다. 양주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개체의 삶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개체를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가?

  2,000여년 전 양주라는 철학자는 개체의 삶을 위해 바람직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모든 주장이, 결국은 강력한 공권력을 독점한 국가에 의해 개체의 삶을 일종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을 통찰하고 있었다. 국가나 공동체라는 것은 각자의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결코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양주의 관점이었다.



한비자 : 오직 법치국가만이 개체의 삶을 보장해 준다

  순자는 공권력과 규범의 외재성을 강조하면서 성악설을 주장했던 철학자이다. 물론, 그가 말한 규범이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주장한 유학적 이념을 가리켰다. 하지만 개체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사회 안정을 위해서 외적인 강제가 불가피하다면, 전통적인 규범보다는 강력한 공권력이 더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순자의 수제자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가 규범을 제거하고 공권력에 종속된 법을 내세우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전국시대의 핏빛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강력한 절대군주론을 요청했다.


  그에게 있어 법은 기본적으로 상벌의 체계를 의미한다. 강력한 공권력으로 법을 지키면 상을 내리고, 어기면 벌을 내린다. 한비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법을 지켜서 상이라는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법치를 통하여 국가는 강력해지고 동시에 민중들도 충분한 보호를 얻고, 자신의 이득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민중들의 이득이란 결국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통한 약탈로부터 기원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국가 형식 자체를 긍정하고 있었던 한비자에게 있어 양주의 사상은 너무나도 위험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 강신주의 <철학 대 철학>에서 정리하였습니다. )





2011/11/28 12:35 2011/11/2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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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okina 75-300mm / 양평 걸리버파크 / Photo by 이우





  … 토머스 쿤은 포퍼의 색각과는 달리 과학이 결코 누적적으로 진보하는 것1)이 아니라, 혁명적인 단절을 겪는다고 주장하였다. 쿤은 이런 혁명적인 단절과 변화를 ‘패러다임(paradigm)'이란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중략) 패러다임이란 말은 ’패턴‘, '모델’, ‘예’를 의미하는 희랍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쿤은 패러다임을 ’어느 주어진 시대의 어느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문제 풀이의 표본‘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실험실에서 10g의 마그네슘과 10g의 산소로 연소시키는 실험을 했다고 하자. 그러자 놀랍게도 연소결과물인 산화마그네슘의 질량이 25g으로 측정되었다. 실험을 하던 학생이 ‘질량 보존의 법칙’의 반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선생님은 어떻게 대응할까? 아마 선생님은 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부주의로 5g의 산소가 더 공급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실험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선생님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던, 혹은 기존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방금 우리는 어느 실험실에서 포퍼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반증 가능성, 추측, 논박, 비판적 이성 등의 개념들이 손쉽게 무력해지는 장면 하나를 목격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고등학교나 대학에서의 과학 실험은 새로운 이론의 발견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정해진 패러다임에 따라 이루어지는 과학적 활동을 쿤은 ‘정상과학’이라고 부른다. 쿤에 따르면 정상과학의 붕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 때문에 발생한다. 쿤에 따르면 고대로부터 중세시대까지의 물리학, 갈릴레이로부터 시작되는 근대 물리학, 아인슈타인 이후의 현대물리학은 각각 상이한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 상이한 정상과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정상과학들 사이에서 패러다임의 단절, 혹은 과학혁명이 발생했던 것이다.

  쿤은 각 시대를 장악하는 패러다임들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동시에 ‘통약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이 두 가지 패러다임이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통약 불가능하다는 것은 두 가지 패러다임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패러다임 사이에는 질적인 단절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과학혁명이란 말 자체가 과학의 발전이 누전적인 과정이 아니라 단절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 (중략)

   사실 우리가 특정 에피스메테2)나 패러다임이란 규칙에 의해 지배될 때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기 힘들다. 오직 새로운 에피스메테나 패러다임으로 개종했을 때에만, 우리는 과거에 자신이 맹목적으로 따랐던 에피스테메나 패러다임이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이었는지 의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는 현재의 규칙들은 과연 어떤 것일까?

  푸코나 쿤이 우리에게 던져 준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미래로 갈 수 없는 우리가 현재를 알기 위해서 뒤돌아볼 있는 유일한 곳은 과거뿐인 것이다. 과거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영위했던 다른 패러다임, 혹은 다른 에피스테메에 충분히 익숙해졌을 때,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현재의 패러다임이나 에피스테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외국에 나가 보았을 때 자신이 지금까지 따르고 있던 무의식적인 삶의 규칙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


-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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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 포퍼(1902~1994)는 과학이나 사회의 발전에는 ‘인간의 비판적 이성이 핵심적인 역학을 담당한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자신이 이론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경험을 통하여 비판하고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의 ’비판적 합리주의‘가 형성되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성의 합리적인 추론만을 맹신하지 않고 논라적인 추론을 항상 경험에 비추어 점검하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증가능성‘이라는 개념이다. 반증 가능성은 어느 이론이 과학적이려면 경험으로부터 반박되거나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2) 인식론적 지층. 푸코는 그의 저서 <말과 사물>에서 ‘한 문화의 어떤 시점에 하나만 존재하는 모든 지식의 가능성 조건’이라고 하면서, 르네상스 시기(1500년~1660년), 고전주의 시기(1660년~1800년), 근대 시기(1800년~1950년), 그리고 구조주의 시기(1950년 이후)를 서로 통약 불가능한 시대로 구분했던 적이 있다. 각각의 시대는 자신만의 고유한 에피스메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20세기 역사학적 상상력이 공유하는 한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를 연속적이고 누적적이라기보다 불연속적이고 단절적이라고 보려는 사유 경향이다.


 

2011/11/12 03:55 2011/11/12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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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2009공예트렌드페어 / Photo by 이우





  샤르트르는 인간의 기초적인 존재론적 차원의 하나로 '대타존재(代打存在)' 와 '대자존재(代自存在)'를 이야기한다.

   '타자에 대하여 혹은 타자에 있어서 존재하는 '주체(나)'를 '대타존재(代打存在)'라고 한다. 이 개념은 이미 헤겔에게도 나타나고 있지만,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은 자기에 대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대자존재(代自存在)’ 동시에 ‘타자에 대하여 존재하는 대타존재(代打存在)‘라고 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주체'이지만, 다른 주체에 대해서는 그 신체가 물(物)로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객체'로서 몸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주체와 객체의 갈등이 생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란 항상 고독하며, 자신만이 스스로를 짐질 수 있다. 그런데 나를 존재하게 하는 타인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타인이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무시하고 타인에게 기대어 산다. 자기 앞에 '객체(타인)'로 향한 절대 목적을 놓음으로써 자기 자유성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적 도구의 역할을 떠맡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이 자기 뜻에 의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이 베푼 희생이 짓밟혔다고 여긴다. 자기(주체) 목적과 타인(객체)의 목적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이 ‘자유로운 증여’의 성격을 띠기 위해선 증여받는 상대 역시 자유로운 상태여야 한다. 이럴 때만 타인의 자유와 만나는 자신의 자유가 실재성을 띤다. 그리고 자유와 자유의 만남은 다른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오히려 완성의 모습을 보인다. 자유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그러나 타인이 나의 초월성을 따르기 위해선 같은 길, 같은 지점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유를 향한 길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하나는 ‘내 자유의 전진운동에 의해 나를 초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이 나의 ‘초월성을 따라올 수 있거나, 추월할 위치를 그들을 위해 열어주는 노력’이다.

  그래서, 타인은 내 존재를 물(物)화하지만 나에게 자유를 부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가 타인에게 존재할 수 있으려면 타인이 나를 자유로운 인격이길 바라야 한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타인이 나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타인에게 나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사랑과 증오, 자학, 새디즘, 소통과 배려, 친절, 부끄러움 등은 대타(代打)의 차원에서 성립하는 태도다. 또, 언어(言語), 페이스북(Face book),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은 대타(代打)의 차원에서 필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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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생애에는 하나의 필연적인 사랑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보부아르와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많은 우연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보부아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샤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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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일 내가 타자에 의해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사랑받는 자로서 자유로이 선택되어져야만 한다. 알다시피 사랑과 관련된 통상적인 용법에 따르면 ‘사랑받는 자’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 선택은 상대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타자가 자기를 선택한 것이 ‘다른 애인들 중에서’라고 생각하는 경우, 사랑에 빠진 사람은 화가 나고, 자기가 값싸진 것으로 느낀다. “그렇다면 만일 내가 이 도시에 오지 않았다면, 만일 내가 누군가의 집에 드나들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이런 생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슬프게 한다. … (중략) … 사실 사랑에 빠진 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 (중략) … 타인의 주체성을 존중할 때 ‘우리는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사랑이란 내 주체성을 버리고 타인의 세계로 전락하게 된다. 그때의 감정을 증오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은 실패하고 만다.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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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3 19:21 2011/11/0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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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서울N타워



   … 국가와 주권을 신적인 권위로 정당화하는 논리를 절대주의라고 부른다. 국가나 주권이 신적인 존재와 같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주의 입장을 따를 때 인간은 국가나 주권을 결코 의심하거나 회의할 수조차 없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근대 사회는 신의 초월적 권위가 약화되고 그만큼 인간과 인간이 가진 이성적 능력에 강한 신뢰를 보내게 된다. 이제 주권자나 그가 통치하는 국가를 신과 같은 절대자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힘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근대사회의 국가주의 철학자들은 국가나 주권자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다시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의미심장하게 등장한 것이 바로 ‘사회계약론(theory of social contact)'이다. 사회계약론은 사실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함께 근대철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두 가지 중요한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게약론이 중요한 이유는 이 논의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중요한 논리적 근거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로크(John Locke)가 자신의 주저 <통치에 대한 두 가지 소고>에서 언급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자연적인 권리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 보장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국가나 주권자는 그 자체가 더 이상 신성한 목적이 아니라, 단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볼 때 근대철학에 들어와서 국가와 주권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목적 추구를 위한 단순 수단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논의를 함게 살펴보면 국가와 주권은 수단이기는 하지만 결코 함부로 폐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수단이라는 미묘한 성격을 점유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명목으로만 수단일 뿐 사회계약론을 옹호하던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도 국가는 여전히 신성불가침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가 절대적인 수단이란 주장은 사실 그것이 절대적인 목적이라는 과거의 다를 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합의에 의해 국가와 주권이 정당화되었다면, 원칙적으로 개인들의 새로운 선택과 합의에 의해 국가와 주권의 논리 자체도 다시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계약론자들은 결코 그쪽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시키지는 않았다. 바쿠닌(Mikhail Bakunn)이나 크로포트킨(Pyotr Kropokin)이 외롭게 외쳤던 무정부주의, 즉 아니키즘(Anarchism)이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이다. 그들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일관되게 추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략)

  네그리(Antonio Negri)는 지금까지 자본주의나 정치 권력이 자신이 통제하던 사람들 상호 간의 마주침과 연대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차단해 왔다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자본과 국가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기쁨을 느끼거나 혹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것이다. (중략) 여기서 주권의 논리란 선거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한 사람 혹은 다수의 대표자들에게 양도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이념을 말한다. 만약 정치적 권력을 양도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엄격하게 말해 우리는 대표자의 임기 동안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주어진 기간 동안 우리는 대표자를 주인으로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네그리가 집요하게 문제 삼았던 것이 바로 이 대의민주주의의 허구였다. (중략) 자발적 권력 양도가 논리적으로 ‘자발적인 복종’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중략) 네그리가 “주권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건 불가피하게 일자의 지배로서 제시되고, 완전하고 절대적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침식한다”라고 진단했던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였다. (중략) 다중을 우리는 자신의 권력이 어느 한 때라도 결코 양도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이와 아울러 모든 주권의 논리가 사실은 억압의 논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

- 강신주의 <철학 대 철학>(그린비, 2010) 중에서





 

2011/05/13 18:05 2011/05/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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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D60 / Tamron 17-35mm )



     …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어느 청바지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 문구다. 개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젊은 세대에게는 상당한 호소력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만든는 청바지가 실은 윤전기로 신뭉을 찍듯이 대향생산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 회사의 목적, 그 광고의 목적은 개성을 빌미삼아 똑같은(따라서 개성없는) 제품을 될수록 많이 판매하려는 데 있다. ‘개성 있는’ 청바지를 ‘대량’으로 판매하려는 회사 측의 모순.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죽기보다 싫어 대량복제품을 사서 입는 소비자의 모순--개성의 상품화란 이렇듯 자체 모순에 불과하다.

    1950년대의 저작인 <고독한 군중>에서 미국의 사회학자인 리스먼은 그런 형상이 현대 사회의 타인지향적 성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체성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라는 이야기다. 개성을 강조하는 게 어떻게 타인지향적이냐고? 오히려 자존심을 지키는 게 아니냐고? 물론 똑같이 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태도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대량소비주의에 굴복하는 모순적 태도는 타인지향적 태도에 다름 아니다.

     리스먼이 고독한 군중을 분석하는 도구이자 대상은 성격이다. 그는 정신분석학과 문화인류학의 접근 방식을 수용하여 성격을 분석한다. 하지만 사회학자로서 리스먼이 말하는 성격은 개인적 또는 심리적 성격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이다. 리스먼은 사회적 성격을 ‘사회적/역사적 환경에 의해 항구적으로 결정된 개인의 욕망과 만족의 구성’이라고 정의한다. (중략) 어의상으로는 고독과 거리가 멀어야 할 군중이 고독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군중이란 (중략) 타인 지향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다.  …


-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들녘, 2006) 중에서





2011/03/30 19:15 2011/03/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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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 권력이나 재력을 물려받지 못한 사람에게 신분 상승의 가능성은 학력을 높이는 길 외에는 없다. 실제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학력을 하나의 ‘자본’으로 본다. 사회의 하층 계급에서 상층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자본이 필요하다면 여기에는 학력자본도 한몫을 한다.

    고전적인 계급의 개념은 주로 경제적인 것으로, 생산수단이나 자본이 소유 여부에 따라 계급이 구분되었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아비튀스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계급을 설명한다. 아비튀스란 인간 행위를 생산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한다.

    법대 교수인 김 씨는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좋아하고, 전철역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박씨는 하루 종일 이미자의 뽕짝 카세트만 틀어놓는다. 일반적으로바흐의 음악은 이미자의 음악보다 고급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가 저명한 연극연출가인 아버지와 음악대학의 기악과 교수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면 고급하다는 말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런 집안에서 그런 문화적 여건을 가지고 그런 교육을 받았다면 김 교수의 음악적 취향은 고급, 저급을 논하기 이전에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비튀스란 의식적인 취향의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적이다. 흔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취미도 실은 무의식적 성질을 갖고 있다.

    아비튀스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아비튀스는 복잡한 교육 체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화의 산물이다. 김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영향으로 서양 고전음악에 붙혀 살았을 테고, 무의식적으로 그 취향에 대한 아비튀스를 키워왔을 것이다. 반면 박 씨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자칭 ‘공돌이’, 타칭 산업역군으로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던 짬짬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흪러간 가요’를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나름의 아비튀스를 키워왔을 것이다. 이처럼 아비튀스는 교육을 통해 상속된다.

    부르디외는 교육을 문화적 자본이라고 부른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지배하지만 예전처럼 경제적 자본만으로 지배하는 게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경제적 자본의 지배보다 문화적 자본의 지배가 강화된다. 때로는 두 자본이 서로 결합해 지배하기도 한다.

    경제적 자본을 가진 자본가(기업가)는 문화적 자본을 더 추구하며, 문화적 자본을 가진 자본가(교수, 판사 등)는 경제적 자본을 더 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류층의 ‘혼맥‘은 여기서 비롯된다.

    경제적 자본만 아니라 문화적 자본도 상속된다. 물론 아비튀스는 무의식에 속하므로 의식적으로 한두 세대에 속성 배양할 수 잇는 것은 아니다. 서재에는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들이 가득하고 고전음악은 꼭 전집으로 사들이는 졸부들의 취향이 조잡함을 면치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중략) 졸부들도 대를 이어 열심히 노력하면 한두 세대쯤 지나 진정으로 고급한 아비튀스를 가진 후손을 둘 수도 있다.  …

- 남경태의 <개념어사전>(들녘, 2006) -


 


2011/03/29 11:29 2011/03/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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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D60 / Canon EF 50mm )






     …… 철학에 대한 해묵은 편견이 하나 있다. 그것은 철학이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는 인상과 관련된다. 하지만 이것은 글자 그대로 편견일 뿐이다. (중략) 인문학에서 철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자연과학에서 수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같다. 수학은 많은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힘든 과목이다. 그러나 간단한 계산 규칙이나 논리를 정확히 숙지하고 나면, 수학처럼 쉬운 과목도 없을 것이다. 나아가 수학에 능통해지는 순간,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물리학/화학/경제학/통계학 등 수학식으로 법칙을 표시하는 다양한 텍스트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을 통해서 철학적 사유에 적응하는 순간, 누구든 사회학/정치학/문학/공연예술 등 다양한 텍스트가 전제하는 사유 논리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독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중략)

    수학책은 수학에 능숙한 사람의 경우 별 어려움 없이 다른 언어로도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그만큼 수학이 보편적인 언어, 다시 말해 오해의 여지가 없는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철학도 마찬가지 아닐까? 김소월의 시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 그래서 김소월이 지진 특유의 감성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철학책은 시보다 훨씬 더 용이하게 번역될 수 있다. 인문학의 특성상 철학책 번역이 100%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겠지만, 시나 소설에 비해 훨씬 용이하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철학적 사유가 수학과 유사하게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그리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

(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 그린비, 2010 )





 

2011/03/25 16:46 2011/03/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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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동대문시장


 



    ... 부르디외는 벤야민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를 단순히 경제적 자본논리로 설명하지 않은 점입니다. 물론 부르디외도 경제적 자본이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힘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알튀세르가 지적한 ‘중층결정’의 의미에서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별짓기>에서 부르디외는 경제적 자본 이외에 최소한 세 종류의 자본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째가 문화자본(capital cultured)입니다. 이것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미적 감각 그리고 사람들이 소장한 작품들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학력자본(capital scolaire)입니다. 이것은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따거나 국가고시와 같은 시험제도를 통과해 얻는 자격 혹은 지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관계자본(capital de relation social)입니다. 이것은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을 얻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인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르디외가 주목하는 세 가지 자본들은 모두 경제적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복권에 당첨된 벼락부자라고 하더라도, 돈만으로 이 세 가지 자본을 저절로 확보할 수는 없습니다. 나머지 세 가지 자본들은 지속적인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세 가지 자본들은 하류계층에서 상류계층으로 직접 진입하려는 벼락부자들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벼락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곧 상류사회의 성원이 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전시회에 다니고 미술품을 수집할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늦게나마 대학이나 대학원에 등록하여 명목분인 학위를 딸 수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인맥도 넓혀 나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그들이 곧바로 상류사회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상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이 그들에게는 막강한 경제적 자본이 있습니다. 그래서 벼락부자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세 가지 자본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에 온힘을 쏟고 나아가 가장 수준 높은 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유학을 보내지요.

    한국 사회의 경우 1970~1980년대 이후 산업자본주의의 고도성장 그리고 강남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의 열품은 벼락부자를 많이 양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갑자기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비록 경제적 자본은 상류사회와 비교해볼 때 결코 뒤지지 않지만, 신흥부자들은 상류사회가 가지는 아비투스, 특히 미적 취향을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상류계급의 미적취향을 끊임없이 흉내 내려고 노력했겠지요. (중략)

    그렇다면 하루계급의 사람들이나 벼락부자들은 왜 상류사회에 편입되려고 할까요? 그것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허영(vanity)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인간은 본성이 선하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조차 인간의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략)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산업자본주의가 허영이라는 인간의 치명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취향은 사회공간을 차지하는 개인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알게 해준다. 그래서 취향은 사회적 방향감각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사회 공간 내에 주어진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을, 그들의 재산에 알맞은 지위나 그 지위에 걸맞은 실천이나 상품으로 인도한다. 또한 사회 공간 내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배치될 경우, 그리고 또 그 상품과 제 집단들 간의 대응관계에 대해 다른 행위자들이 가진 실천적 지식이 주어졌을 경우, 사람들의 취향은 선택된 실천과 대상에 대한 사회적 의미 그리고 가치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실천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1979 )

    부르디외는 미적 취향이 계급적 아비투스의 전형적 사례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적 취향이 그에 ‘걸맞은 실천이나 상품으로 인도한다’는 부르디외의 지적입니다. 상류계급이 선호하는 운동이나 행동 그리고 상품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중류나 하루계급 사람들도 흔히 하는 골프와 같은 운동이 한때 무엇을 의미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상류계급 사람들이 운동이라는 순수한 목적을 위해서 골프를 선호했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는 하류계급 사람들이 하기 힘든 운동이었기 때문에 골프를 선호했을 뿐입니다.

    상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명품 핸드백을 상류계급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그 핸드백이 튼튼하고 실용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루계급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특성이 그들이 고가의 핸드백을 구매하는 주요한 이유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비싼 가격일 때 혹은 세일을 전혀 하지 않는 물건이 오히려 더 잘 팔리는 역설적 현상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싼 명품을 구입할 때, 상류계급 사람들이 의도하는 것은 자신들이 하류계급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분명히 입증하는 것입니다. (중략)

    2007년 1월 12일 미국 워싱턴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웃어넘기기 힘든 사진은 매우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죠슈아 벨(Joshua Bell, 1967~ )이 거리의 악사가 되어 남루한 차림으로 45분간 아름다운 클래식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비록 거지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350만 달러를 호가하는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었지요.

    클래식 음악이 그 자체로 향유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마 조슈아 벨 주변에는 엄청난 군중이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잠시라도 멈추어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은 달랑 7명뿐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구걸함에 동전 한 닢이라도 던져 넣어준 사람은 27명에 불과했고 모금된 돈도 27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미적 취향이 얼마나 강하게 사회적 함의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조슈아 벨의 연주가 아무리 훌륭한들, 값비싼 연주회장, 매스컴의 주목, 저명인사들로 이루어진 환호로 이루어진 아우라가 걷히면 그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인 셈이죠.

   죠쥬아 벨의 여주를 들으러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고가의 입장료를 치르고 연주회장에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가 고급 문화생활을 즐기는 상류계급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연말에 트로트 쇼에 가는 사람을 보면, 중하류계급에 속할 거라고 간주하지요. 물론 이 판단은 부르디외의 말대로 우리에게 이미 ‘상품과 제 집단들 간의 대응관계에 대해 다른 행위자들이 갖는 실천적 지식이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실천적 지식, 즉 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타인들이 문화적으로 선호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사회적 위상을 어렵지 않게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것은 중하류계급 사람들이 목돈이 생겼을 때 조슈아 벨의 클래식 공연장에 가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스스로 상류계급 문화를 연출함으로써 상류계급에 편입되고 싶다는 자신의 은근한 소망을 드러내는 셈이라고 할까요. ...


-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세시스, 2009) 중에서



 

2010/06/27 23:51 2010/06/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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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버는 산업자본주의 발달의 원인을 생산과정에서 청교도적인 소명 의식과 금욕적 태도에서 찾았습니다. 자신의 계급 혹은 직업에 대해 종교적 소명 의식이 있던 자본가나 노동자들이 산업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사실 생산과정에서의 원가절감이나 비용절감, 혹은 노동 현장에서의 근면성 등은 그것이 없을 때보다는 있을 때 산업자본에 더 많은 잉여가치를 약속해 줍니다. 이 점에서 베버 역시 생산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사유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좀바르트나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의 잉여가치가 오직 유통과정에서만, 다시 말해 한때 노동자였던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에만 획득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베버와 달리 이들 후자의 개념은 소비중심주의라고 부릅니다. 보드리야르가 생산중심주의를 비판했던 이유도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자본주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면 돈을 가진 자가 상품을 가진 자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그래서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우월한 자리를 점유할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소비자의 위치일 때입니다. 노동의 대가든 다른 경로든 간에 돈이 있다면, 소비자는 상품을 파는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론적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상품을 살 수도 있고 사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산업자본은 반드시 자신이 만든 상품을 노동자인 소비자들이 사게 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보드리야르는 자본주의의 유혹과 인간의 원초적 허영 사이의 은밀한 야합을 목도합니다. (중략)

     소비 영역은 소비자가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산업자본의 음모, 나아가 소비자의 허영을 부추겨 소비를 촉진하려는 산업자본의 전략이 관철되는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소비 영역에서 전개되는 이 같은 산업자본의 음모와 전략을 폭로하는 것. 이것이 보드리야르의 평생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그는 사물이 가진 서로 다른 네 가지 차원의 논리를 해명합니다. (중략)


     “기호와 차이의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소비의 논리를, 그 논리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다른 논리로부터 구별해낼 필요가 있다. 네 가지 논리가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①사용가치(use value)라는 기능적 논리, ②교환가치(exchange value), ③상징적 교환(symbolic exchange)의 논리, ④가치(value)/기호(sign)의 논리. 첫 번째는 실제적인 작용의 논리이다. 두 번째는 등가(equivalence)의 논리이다. 세 번째는 예매성(ambivalence)의 논리이다. 네 번째는 차이의 논리이다. 또한 유용성의 논리, 거래의 논리, 증여의 논리, 신분의 논리.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입각하여 정돈됨에 따라 각각 ‘도구’, ‘상품’, ‘상징’, ‘기호’의 지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것만이 소비라는 특수한 영역을 규정짓는다.”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중략) 간단한 예를 들어 살펴보면 보드리야르가 제안한 사물의 네 가지 서로 다른 논리가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입니다. 여기 다이아몬드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다이아몬드는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도구’일 수도 있고, ‘상품’일 수도 있고, ‘상징’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기호’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도구’의 측면에서 바라본 다이아몬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다이아몬드는 가장 견고한 광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부술 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 도구로서 다이아몬드는 ‘사용가치’라는 기능적 논리를 따르게 됩니다.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를 ‘상품’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다이아몬드는 1억 원으로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됩니다. 이때 상품으로서의 다이아몬드는 ‘교환가치’라는 경제적 논리를 따르게 됩니다. 예들 들어 다이아몬드 한 개는 자동차 5대나 컴퓨터 100대와 바꿀 수 있습니다. (중략)

    세 번째로 다이아몬드는 ‘상징’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는 사랑하는 딸의 결혼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상품으로서의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1억 원으로 다른 것을 살 수도 있겠지요. 혹은 1억원 상당의 다른 상품과 다이아몬드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물로서의 교환은 앞서 말한 등가교환과는 다릅니다. 내가 자이아몬드 하나를 선물 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상대방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로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교환’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선물로서의 다이아몬드는 ‘애매성의 논리’니 ‘증여의 논리’를 따른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애매성으로 번역된 ‘ambivalence'라는 단어는 가치가 애매하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는 ‘기호’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도 바로 이 네 번째 측면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상류계층에 속하므로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호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다이아몬드는 보드리야르가 말했듯이 ‘신분의 논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중략)


                    --------------------------------------------------------------------------  
                                        도구                    상품                 상징                  기호
                    --------------------------------------------------------------------------
                    가치             사용가치              교환가치            상징가치            기호가치
                    작동논리       작용성                 등가성               애매성               차이성
                    적용영역       유용성의 차원       거래의 차원        증여의 차원        신분의 차원
                    --------------------------------------------------------------------------



    생산중심주의에서 살펴본다면, 사물의 네 가지 측면들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생산에 가장 도움이 될까요? 인간의 노동력을 줄여주거나 아니면 확장시켜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첫 번째 ‘도구’로서의 사물이란 개념은 생산중심주의에 잘 부합됩니다. 또 ‘상품’으로서의 사물도 당연히 생산에 도움이 됩니다. 높은 교환가치에 상품이 팔리면, 그만큼 산업자본은 생산력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기호’로서의 사물도 생산중심주의에 잘 부합됩니다. 인간이 가진 허영심과 욕망을 증폭시켜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상품이라도 고가에 사들이게 한다면, 산업자본은 막대한 잉여가치를 남길 수 있겠지요. (중략)

     사실 ‘도구’, ‘상품’, ‘기호’라는 사물이 가진 생산주의적 측면은 기본적으로 이기적 동기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사물들의 측면입니다. 하지만 ‘상징’으로서 타인에게 주는 선물, 혹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주는 사람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하려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정신과 생활의 만족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보드리야르는 ‘상징’으로서 사물이 가진 측면이 사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산업자본주의의 마수로부터 구원해 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보았습니다. ‘도구’, ‘상품’, 그리고 ‘기호’로서의 사물의 측면들은 인간을 무한경쟁의 각축장으로 내몰지만, 사물의 ‘상징’적 측면은 공존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문주의적 만남의 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는 타자와 관계할 때 무엇인가를 주거나 혹은 받습니다. 그것은 말의 형식일 수도 있고, 미소와 같은 육체적 기호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장미꽃과 같은 어떤 사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자에게 혹은 타자가 우리에게 건네준 사물은 선물 아니면 뇌물의 형태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보드리야르가 강조했듯이 뇌물은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사용가치나 교환가치, 혹은 기호가치로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선물에는 사용가치, 교환가치 그리고 기호가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사랑이나 애정의 표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가치, 즉 ‘상징적 가치’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예전에 필자가 강의실에서 만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늘 호두 두 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꺼내 만지작거렸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첫사랑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고 하더군요. 가령 호두의 사용가치는 망치로 깨서 호두를 먹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호두를 먹지 않고 그냥 가지고 다녔습니다. 물론 호두의 교환가치 역시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겠지요. 그녀 또한 호두를 다른 것과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렇다면 그 호두의 기호가치는 어떨까요? 호두를 가졌다고 해서 그녀의 사회적 신분이 높아질 리 만무하지요. 그녀에게 호두는 첫사랑으로부터 받은 완전한 의미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세시스, 2009) 중에서



 

2010/06/25 16:30 2010/06/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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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2009공예트렌드페어







     ...  예링은 산업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이제 패션은 개인적 동기를 넘어 사회적 동기를 얻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예링은 패션을 개인적 욕망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학 층위에서 사유합니다. 벤야민이 인용한 패션에 대한 예링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패션은 상류사회로부터 기원합니다. 상류사회는 스스로 하류사회와 구분하기 위해서 새로운 패션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패션은 중간계급이 상류사회의 패션을 모방하자마자 곧바로 소멸됩니다. 중간계급이 상류사회의 패션을 모방하게 되면, 특정한 패션은 상류사회를 중간계급으로부터 구별할 힘을 상실합니다. 셋째, 중간계급에게 패션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폭군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스스로 상류계급을 지향하는 중간계급으로서는 상류계급이 택한 패션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중략)

     푹스*에 따르면 패션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합니다. 첫째, 패션은 예링이 지적했듯 상류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계급적인 구별을 두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패션은 계속 매출을 올려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은 인간에게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중요합니다. (중략)

     산업자본은 부단한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상품을 생산하지 못 하거나 혹은 생산된 제품이 소비되지 않으면 산업자본의 흐름은 중단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상품의 생산이나 소비 차원 중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소비의 측면입니다.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본이 필요한데, 그 자본은 기존 제품이 소비되어야 비로소 확보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소비자의 소비 욕망을 부단하게 불러일으키는 일은 산업자본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활이 걸린 결정적 문제가 되겠지요. 그래서 새로운 상품은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됩니다. 그것은 소비자 스스로 기존 상품이 낡은 것임을 깨닫게 하여 소비 욕망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됩니다. 새로운 상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바로 보들레르를 매혹했던 아케이드, 벤야민이 성찰했던 백화점, 현대의 잡지/신문 인터넷과 같은 대중매체 그리고 영화와 같은 대중예술입니다.

    이제 패션과 관련되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번째 측면, 즉 에로티시즘과 패션과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중략) 피셔와 푹스를 통해 벤야민은 패션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심화해 나갑니다.


     어느 세대든 바로 이전 세대의 패션을, 생각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철저한 황-최음제로서 체험한다. 이런 판단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초점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패션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사랑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포함하며, 모든 패션 속에는 극히 무자비한 방식으로 성적 도착의 기미가 들어 있다. 모든 패션은 유기적인 것과 대립한다. 모든 패션은 살아 있는 육체를 무기물의 세계와 결합시킨다. 살아 있는 것에서 패션은 사체의 모든 권리를 감지한다. 무기적인 것에서 섹스어필을 느끼는 물신숭배야말로 패션의 생명의 핵이다.**


    (중략) 여기서 잠깐 옷과 성적 욕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한 통계에 따르면 나체촌에서는 성촉력이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통 노출이 심할수록 상대방에게 강한 성적 매혹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약간의 노출보다는 오히려 나체가 다 큰 매혹을 불러일으킨다고 추정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정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노출이 심한 경우 중요한 것은 노출된 몸 자체가 아니라, 몸의 특정 부분을 가린 작은 옷입니다. 밀월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가 몸속이 은은히 비치는 잠옷이나 속옷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겠지요. 그렇다면 완전한 나체보다는 작은 옷 혹은 비치는 옷처럼 은근한 노출이 왜 더 강한 성적 매력을 발산할까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욕구(need)와 욕망(desire) 구분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욕구나 욕망은 모두 어떤 결여를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욕구가 단순히 부족한 것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욕망은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여전히 충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욕구보다 좀 더 복잡합니다. 욕망이란 욕구가 교묘하게 뒤틀려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 성적인 경우에도 이처럼 욕구와 욕망의 단계를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적령기가 되면 동물이나 인간은 모두 이성에 대한 성적 욕구, 즉 성적 결핍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발정기 때 동물들은 허겁지겁 짝짓기를 수행하지요.

    그러나 인간은 성적 대상 앞에서 성적 욕구를 느끼지만 상대방과 와인을 마시거나 애무를 하며 직접적인 성교를 뒤로 미룹니다. 이런 측면에서 욕망이란 욕구에 기생해서 작동하는 메타적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결여를 느낄 때 그것을 곧바로 충족시켜버리면, 욕망은 욕구보다 훨씬 커지게 되지요. 물론 욕망이 힘이 너무 강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때,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욕구를 충족시켜 그 욕망의 힘을 잠재워 버립니다.

    이제 옷이 성적 욕망과 관련하여 어떻게 적용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옷은 분명히 성교와 관련된 직접적인 성적 욕구의 충족에는 분명 방해가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요. 성적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더욱 강한 욕망을 발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옷이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옷은 아예 성적 욕구, 즉 성적 결핍감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패션과 관련된 산업자본이 우리에게 개입하는 결정적인 대목입니다.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옷을 만든다면, 그것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겠지요. (중략)

    이제 본격적으로 에로티시즘과 패션에 관련된 벤야민의 논의를 분석해봅시다. 그에게 패션이란 기본적으로 성적 페티시즘(fetishism)***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옷이란 장치는 성적 결핍감을 불러 일으키고 동시에 그 충족을 가로막지요. 이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강화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수단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제는 수단으로서의 옷 자체에 자신의 성적 욕망을 모두 투사하는 것이지요.

    벤야민의 말대로 옷은 기본적으로 ‘무기물’, 다시 말해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옷 속의 몸은 ‘유기물’이고 살아 있지요. 성적 욕망이나 사랑은 모두 살아 있는 개체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중략) 사람들은 이제 무기물로서의 옷 자체를 오히려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중략) 벤야민의 복잡한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성이 어떤 패션을 연출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성적 욕망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현상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패션이 일종의 페티시즘, 혹은 성적 환상을 함축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중략)

     벤야민은 패션이 가진 패티시즘을 추적하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합니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옷이 가진 성적 페티시즘은 원래 머리카락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략) 인간, 특히 여성의 몸 중 유행을 손쉽게 받아들이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머리카락입니다. 머리카락은 잘려서 미용실 바닥에 떨어지면 무기물로 변합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육체의 부분으로서 머리카락은 분명 살아 있는 유기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머리카락이 패션의 장소가 된다는 점입니다. 머리카락은 생명의 일부로서 계속 자라납니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은 다양한 유행을 계속해서 받아들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머리카락은 자라나고, 그러면 여성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카락에 최신 유행하는 패션을 입힐 수 있겠지요. 머리카락이 인간에게 최초의 옷이자 최후의 옷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체로 있다고 해도 칠흑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이 돌아앉은 여인의 등을 타고 흐른다면, 그 모습은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옷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도시 곳곳에 다양한 미용실을 생각해보면, 혹은 결혼식에서 신부의 화려한 머리장식을 생각해보면, 머리카락은 현재도 여전히 성적 페티시즘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략)

     만약 언젠가 산업자본이 붕괴되는 날이 온다면 패션에 대한 페티시즘도 소멸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머리카락에 대한 인간의 최초의 페티시즘은 훨씬 더 오랜 기간 존속하겠지요. ...



     -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세시스, 2009) 중에서

   


...................

* 에두라르트 폭스(Eduard Fuchs, 1870~ ? )

**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87a, 4)

*** 페티시즘(fetishism) : 인공물 또는 간단히 가공된 자연물에 주력(呪力)이 깃들인다고 믿고 이를 숭배하는 것. 영물숭배(靈物崇拜)라고도 한다. 숭배 대상은 동식물, 금석류(金石類), 주문(呪文), 주부(呪符), 주약(呪藥), 주구(呪具) 우상과 상징물 등이다. 주물을 나타내는 페티시(fetish)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라는 뜻의 팍티티우스(factitius)에서 유래했으며, 직접적으로는 포르투갈어인 페티소(fetico;부적·주물이란 뜻)에서 파생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성자(聖者)의 유해나 유물 등을 페티소라 하여 숭배하는 민간신앙이 있었는데,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의 현지인들이 나무·돌·치아·손톱·나무조각·조가비 등을 모발 등으로 싸서 호부(護符)처럼 휴대하면서 숭배하는 것을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보고 이를 그들의 민간신앙에 관련시켜 페티소라 불렀던 것에 연유한다. 페티시즘(fetishism)은 심리학에서는 주로, 남성이 여성의 몸의 특정 부분이나 속옷·스타킹·구두 따위를 보거나 만지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 심리를 일컫기도 한다.







2010/06/16 20:14 2010/06/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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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D60 / Canon EF 50mm / 경북 상주





   ... 공간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배경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간에는 인간을 길들여서 그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고산지대에 사는 인간, 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에 사는 인간, 사막의 오아시스 근처에 사는 인간, 대도시에 사는 인간, 오지에 사는 인간. 분명히 인종은 동일한 인간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신이 사는 공간의 흔적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의 지배력은 거대한 자연적 공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공간을 분할하여 만든 건축물과 같은 인위적 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에를 들어 천주교 성당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부를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중세풍의 인테리어 장식, 적절한 공간에 배치된 성스러운 촛불들.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누구나 성당이란 공간이 내뿜는 강렬한 힘을 느낍니다. 이런 공간에 적응해가며 천주교적 인간, 일종의 종교적 인간이 탄생하게 됩니다.

     공간이 지닌 지배력을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상의 ‘권태’가 지닌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던보이 이상은 소비문화가 작동하는 경성이란 도시가 키워낸 인물입니다. 때문에 시골에서 느꼈던 감정의 바탕에는 그에게 친숙한 도시에서의 삶과 정서가 놓여 있습니다. 즉 이상이 시골에서 권태라는 감정은 도시라는 공간과 시골이라는 공간의 차이를 통해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도시는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길들여 자기에게 맞는 인간 유형을 만들어낼까요? (중략)

     흔히 우리는 인간을 감정적이고 수동적이기보다 지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짐멜은 이런 통념을 비판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지성이란 대도시처럼 수많은 자극이 넘쳐나는 공간에 살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발생하는 산물에 불과합니다. <대도시와 정신적 삶>이란 짐멜의 논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세계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에 따라 구성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략)

    분주한 삶을 영위하던 한 도시인이 어느 깊은 산골에 내려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도시인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그리고 비인격적인 인간관계에 신물이 나서 잠시 도시를 떠났습니다. 우리 주인공에게 시골의 첫인상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녹음으로 우겨진 깊은 산골, 그 사이로 조용히 흐르는 개울물, 친절하고 정 많은 시골사람들, 기름기 없고 소박한 시골의 정겨운 음식들. 아마 도시인은 다음과 같이 읊조릴지도 모릅니다. “내가 왜 지금까지 매연과 경쟁에 찌든 도시에 살았던 말인가?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골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갈 만한 진정한 터전이다.”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며 시골사람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인은 짐멜이 이야기한 것처럼 ‘답답함’을 느낍니다. 물론 이런 감정은 모던보이 이상이 시골에서 느꼈던 ‘권태’와도 유사합니다. 푸르른 자연 풍광은 이제 지루하기만 하고, 몇 명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지나친 친절함은 간섭처럼 귀찮게 느껴지고, 자연에서 직접 채취해 요리한 야채 음식들은 어느 순간 입에 물립니다. 이제 우리 주인공은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떠나온 대도시를 그리워합니다. (중략)

     그런데 도시인은 시골에서 느끼는 ‘답답함’의 감정 이면에는 도시라는 공간이 만들어준 ‘자유’의 감정이 전제되어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시골보다 도시에서 더 자유롭다고 느낄까요? 이제 자유에 대한 짐멜 논문의 후반부 이야기를 경청해 봅시다.

     좀 더 정신적이고 세련된 의미에서 대도시인은 사소한 일들과 편견들에 얽매이는 소도시인들에 대해 ‘자유롭다’. 대도시와 같이 큰 집단이 가진 지적인 삶의 조건들이나 상호무관심이나 속내 감추기라는 태도를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은, 개인의 자립성이 훼손되곤 하는 작은 집단에 속한 개인들이라기보다는 대도시처럼 인구가 극도로 밀집한 곳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일 것이다. 이는 신체적 거리의 가까움과 공간의 협소성이야말로 정신적 거리를 가장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우글거리는 군중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장 잘 느끼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은 위에서 말한 자유의 이면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대도시만큼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반드시 그의 정서적 안정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세시스, 200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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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오르그 짐멜, <대도시와 정신적 삶(The Metropolis and Mentai life)>, 1903

* 게오르그 짐멜 : 베를린 대학에서 역사학, 민족심리학, 철학 및 예술사를 공부했으며, 칸트 철학에 관한 연구로 1881년 박사학위를, 그리고 1884년에 '하빌리타치온(대학교수자격)'을 취득했다. 1885년부터 베를린 대학 철학과에서 사강사로 일하기 시작해 1901년에 부교수가 되었으나, 1914년이 되어서야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짐멜은 <사회분화론>, <도덕과학서설>, <역사철학의 문제들>, <돈의 철학>, <칸트>, <철학의 주요 문제들>, <괴테>, <칸트와 괴테>, <쇼펜하우어와 니체>, <사회학>, <사회학의 근본문제>, <렘브란트>를 비롯해 철학, 윤리학,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며, 수많은 글을 발표했다. 사회학이나 (사회)심리학, 문학과 같은 경험과학, 철학,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 미학 등 실로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서 인간, 사회, 역사, 문화, 예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 짐멜은 막스 베버나 프리드리히 니체와 같은 거장에 견줄 만하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현상들에서 인간과 세계, 그리고 사회의 심층적 구조와 본질을 읽어내는 짐멜의 지적 세계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아니, 단순한 매력 그 이상이다. 모더니티 담론과 포스트모더니티 담론은 게오르그 짐멜이라는 거대한 정신세계에 회귀하면서 더욱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2010/06/15 15:29 2010/06/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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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꿈꾸는 카메라 in Zambia> 사진전






    ...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되었어. 오늘날에는 19세기와 같은 ‘물질적인 결핍’이 사라지게 되었지. 하지만 벌써 사라졌을 것 같은 기아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 하고 있어.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굶주림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더 심해지고 있어.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 거야. (중략)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오늘날 세계는 60억 정도(세계 인구는 2006년 2월 26일 현재 65억 명을 넘어섰다)되지. 하지만 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였어.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예기지. (중략) 식량이 제대로 분배된다면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고도 남게 될 거야. (중략)

     서구의 부자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되고 있다고 보는 거야.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 텐데,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지. 그런 사람들은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긴단다. 산소 부족과 과잉인구에 따른 치명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다는 거야.

     이런 설명은 전형적인 유럽적, 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란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논리지. 자신들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영양실조로 팔다리가 비쩍 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벵골이나 소말리아, 수단의 엄마들이 그 아이들의 죽음과의 싸움이 ‘자연이 고안해 낸 지혜’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니? 그런데도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은 엉터리 신화, 즉 기근이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한다고 믿고 있단다. (중략) 자연도태라. 이 말은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야. 그런데도 이런 표현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아빠는 여러 대학과 제네바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회의, 그리고 유엔의 책임자들과 사적인 대화에서 이 말을 수수히 들어보았어. 숙명적인 기아가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중략)

     18세기말 영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라는 사람이었어. 맬서스는 1798년 인국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어. 이 논문에서 맬서스는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 아픈 일이긴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중략)

     그의 책은 출판되자마자 유럽의 지배층에서 널리 읽혔고, 산업화 초기의 국민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단다. 맬서스의 주장으로 오늘날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 (중략)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

     - 징 지글러(Jean Ziegler)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고파스, 2009)




2010/06/09 03:34 2010/06/09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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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몇 나라에서는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복종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식량을 끊고 있거든. (중략) 대개는 국가적인 폭력이 자행되는 나라에서 배고픔을 무기로 삼는단다. 예를 들어 1992년부터 1995년에 걸쳐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사태는 그야말로 기아를 무기로 삼은 것이었어. 세르비아 공화국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이끄는 세르비아 군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 시민과 그 지도자들을 복종시키려고 사라예보 공항의 지하를 지나는 커널만 제외하고 시가지를 완전히 봉쇄해 버렸지. (중략) 수단 카르툼의 이슬람 정권 지도자인 하산 투라비는 내전을 피해 남부 수단의 외단 지역과 다르푸르 지방에 피난해 있는 수십만 명의 농민이나 유목민에게 식량과 약품을 배급하러 가는 구호단체의 비행기를 연신 포격하며 식량공급을 방해하려고 했어. (중략)

     하지만 자기네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아를 무기로 삼는 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란다.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지. 미국의 대통령은 약간 부드러운 방식을 택하고 있어. 예를 들어 미국의 이집트에 대한 정책을 보자구나. 이집트 사람들의 주식은 밀이나 조를 빻아서 만든 에이시라는 빵이야. 그런데 에이시의 여섯 개 중 하나는 미국과 이집트 간에 맺어진 식량원조 협정에 따라 미국산 밀이 사용되고 있지. 이른바 ‘PL-480 프로그램’을 통해 조달되는 거야. 이 프로그램은 이집트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협정으로 미국은 이집트에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이집트에 팔아넘길 수 있었던 것이란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은 미국의 조정을 받고 있는 셈이지. (중략) 무바라크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어. 미국의 용병 역할에 순응하던가, 아니면 자국의 극심한 기아에 따른 반란으로 축출당하든가 말이야. (중략)

     이라크에서 유엔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다가 최근에 퇴직한 아일랜드 출신의 데니스 할리데이에 따르면, 1994년 이후 매년 6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의약품 부족으로 죽고 있다고 해. 상황은 계속 나빠져 가고 있어. 유니세프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봉쇄로 인해 요즘 5세 미만의 아이들이 매달 5,000~6,000명이나 생명을 잃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어. (중략) 할리데이는 1999년 1월 18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리베라사옹>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기사를 맺고 있어. “이라크에서는 유엔이 민족 살인의 주범이 되고 있다.”


     - 징 지글러(Jean Ziegler)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고파스, 2009)





2010/06/09 03:33 2010/06/09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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