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ew ]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를 걷다(2)

- 영덕 옹기전수관 · 진주 전수교육관 · 통영 공예전수교육관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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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권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조사를 마친 일행이 두 번째 탐방으로 가는 곳은 경북 영덕과 경남 진주 · 통영에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관이다. 서울을 떠난 지 다섯 시간.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에서 기인을 만났다. 잠시 들른 청송 야송미술관에서 지역출신 한국화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냈던 한국화가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을 만난 것이다.

야송 이원좌 화백을 만나다

     야송미술관은 이원좌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50점, 국내외 유명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 50여점, 미술관련 서적 1만여 점을 기증받아 2005년 청송군에서 지은 군립미술관이다. 미술관 1층 전시장에는 무토(撫土) 전성근 도예가의 이중투각 백자전이 열리고 있었다. 무토(撫土)라면 ‘흙을 어루만진다’는 뜻. 그가 흙을 만지면, 이중투각 백자가 나온다. 이중투각 도예는 속항아리와 겉항아리 두 개를 만들어 붙이고 겉항아리를 조각을 해 속항아리가 보이게 하는 도예기법. 많은 공을 들여 투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마에서 구울 때 수축률이 맞지 않아 터지는 일이 많은 까다로운 기법이다. 장인이 흙이 가지는 미세한 결 특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완성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동백문이중투각호, 칠보이중투각호 등 약 50점의 백자. 투각되어 겉을 둘러싼 항아리가 속항아리를 내비치듯 우리 마음도 성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행은 이중투각 백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행이 미술관 2층에 올랐다가 상설 전시된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의 산수화에 넋을 놓았다. 벽면 하나를 완전히 장악해버린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 이 산수화의 크기는 높이 6.8미터, 길이 48미터로 현존하는 동양화로는 세계 최대다. 일행들이 마치 산수화 안에 있는 듯 했다. ‘청량대운도’는 봉화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를 모습을 이원좌 화백이 1991년부터 1년여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크거나 작거나 전시되고 있는 이원좌 화백의 산수화에는 모두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봉우리가 있으며 물이 있었다.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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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주왕산 언저리 34번 국도변 청송 야송미술관
    ② 폐교를 이용해 지은 미술관 한 켠에 연꽃이 피었다.
    ③ 무토(撫土) 전성근의 이중투각백자
    ④ 야송(野松) 이원좌화백
    ⑤ 이원좌 화백이 그린 청량대운도와 무릉화운도
    ⑥ 이원좌 화백의 그림에는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산이 있다.


    젊은 시절, 이원좌 화백은 그림이 좋아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아내에게는 남편, 애들에게는 아버지일 텐데 이들을 버려두고 산과 나무, 구름을 따라 물처럼, 바람처럼 흘렀다. 애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입학금이 없다는 아내의 울먹임에 가슴이 먹먹했지만, 돈이 필요할 때면 그림을 알아주는 이름 모를 지인들이 딱 그만큼의 돈을 내놓고 가져가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이원좌 화백은 어쩔 수 없는 그림쟁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보드리야르가 사용, 교환, 기호, 상징이라고 사물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산이 없고 구름이 없고 물이 없으며 바람이 없다. 그래서 사람도 없다. 그의 그림 안에는 산이 있고 구름이 있으며 물이 있었고, 사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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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덕은 물과 산, 그리고 바람의 고장이다. 영덕 옹기전수교육관은 마을과 함께 있고 교육관에 숙박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차로 10여분이면 바닷가에 닿을 수 있어 좋다.




옹기장이 백광훈(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기능보유자)

      영덕은 물과 산, 그리고 바람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물은 대게와 은어를 기르고 산은 송이를 기르며 바람은 전국 최대 크기의 풍력발전기를 돌린다. 산은 흙을 품었고 사람은 흙을 만지며 옹기를 만들었다. 옹기전수관이 있는 경북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는 산과 물이 좋아 예로부터 약 16개의 옹기 공장이 있었고 사람들은 ‘옹기마을’이라고 불렀다.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그 많던 옹기공장이 없어지고 이제 옹기를 만드는 사람이 백광훈 옹기장뿐이지만 올 3월 옹기전수관이 마을 한가운데 들어섰다.

    옹기는 흙을 떠나지 못한다. 흙을 떠나지 못해 전수교육관은 원래 가마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올 3월에 개관한 이 전수관은 1,367㎡의 부지에 연면적 328㎡의 단층 건물로 작업장과 옹기 제작기술 전승보존을 위한 전수교육관, 작품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전통옹기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교육장을 갖추고 있다. 도로를 벗어나 마을과 과수원을 지나야 하지만 그 덕분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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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옹기를 닮은 경북 영덕 옹기전수교육관.
    ② 옹기장이 백광훈(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③ 건조실에서 옹기가 말라가고 있다.
    ④ 영덕은 예로부터 옹기의 고장. 항아리에 <영덕옹기>라는 생산자 표시가 보인다.
    ⑤ 작업실. 옹기 만들기는 무게와 크기의 싸움이다.
    ⑥ 옹기 가마. 13통 가마로 한 번에 약 3천개 정도의 옹기가 들어간다.


    옹기는 흙을 닮아 질박하다. 옹기와 도자 모두 흙에서 나왔지만 옹기가 더 흙과 가깝다. 도자가 세련미를 갖춘 도시적인 느낌이라면 옹기는 질박한 산촌이나 농촌의 느낌이다. 도자가 아기자기하다면 옹기는 넉넉하고, 도자가 작고 가볍다면 옹기는 크고 무겁다. 좁고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도시적인 주거공간이 확대되고 있지만 가볍고 작은 도자보다는 무겁고 투박한 옹기가 더 사용가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덕택에 4대째 옹기를 만들며 살고 있는 옹기장 백광훈은 스스로 ‘돈은 벌 만큼 벌었다’고 대놓고 말했다. 옹기를 만들며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으니 이만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공예품이 사용가치를 잃어가고 있는데 옹기는 아직 사용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사용가치가 있으려면 우수한 도구적 기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에는 유약이 사용되지만 옹기는 나뭇재와 약초를 섞어 비율을 맞춘 잿물을 사용한다. 자기에 사용하는 유약은 구조가 촘촘해 공기가 통과하지 못하는 반면에 옹기는 물 분자를 차단하고 공기 분자를 통과시킬 정도로 성글다. 이 때문에 옹기는 숨을 쉰다. 옹기 안에 음식을 넣으면 잘 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이로울 만큼 잘 숙성되어 김치와 장류 등의 보관용기로는 최적이다. 이 기능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최근에는 과일이나 약초 보관용기로 그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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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체험실. 옹기 체험은 인기가 좋은 편이다.
    ② 교육장. 프레젠테이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③ 체험자들이 만든 작품들. 항아리도 있고 첨성대도 있다.
    ④ 전수교육관 한 켠에서 여름비를 맞고 있는 옹기.
    ⑤ 물레 위에서 말라가고 있는 체험자들의 작품.
    ⑥ 옹기 위에 빗물이 고여 있다.


    질박하고 소박해 편안해 보이는 옹기의 질감도 그 가치를 높이는데 한몫 했다. 옹기의 소박한 형태와 질감은 전통 가옥이나 도시형 구조의 집 어디에 놓아도 어울리는 우리 전통의 미학이다. 이 점에서 특히 옹기장이 백광훈은 영덕의 옹기를 사랑한다. 호남지방의 옹기가 흙을 말라 올리며 붙이는 방식이라면 영남지방의 옹기는 엇갈려 빗는 옹기. 호남지방의 옹기가 아래 부분이 큰 데 비하여 영남지방의 옹기는 세운 달걀의 위부분과 아래 부분을 잘라낸 듯한 이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어 예쁘다.

    투박하고 소박한 질감의 옹기지만 무겁고 크다보니 옹기 제작은 무게와 크기와의 싸움이다. 사용되는 흙의 양이 많아 흙 작업을 할 때면 이웃 주민, 사위와 딸 모두 모여서 작업을 하고, 물레질을 마친 독을 들어낼 때에도 혼자서는 힘들다. 크고 무겁다 보니 엉덩이 살이 헐 정도로 물레를 돌려야 한다. 백광훈 옹기장이 보유하고 있는 가마는 전통식 가마와 개량 가마. 가마 크기도 도자기 가마보다 훨씬 크다. 13통으로 이뤄진 한 가마에 약 3천개 정도의 옹기가 들어가고 불을 넣으면 한 번에 약 보름 동안 불을 때야 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흙일과 물레질을 해 항아리를 만들어 잘 말려두었다가 일 년에 한 번(10월말에서 11월말) 불을 넣는다. 가마는 가마 칸마다 균일하게 온도를 높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불꽃이 적고 숯이 오래가는 참나무보다 일시에 불꽃이 일고 일시에 삭는 소나무가 땔감으로 제격이다. 삶이 불꽃이라면, 소나무처럼 살다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경북 영덕에 있는 옹기전수교육관은 마을과 함께 있고 전수교육관에 숙박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차로 10여분이면 영덕 해맞이공원이나 강구항 등 동해안에 닿을 수 있어 좋다. 마을 전체를 옹기마을로 특화해 옹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전수관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일행은 진주로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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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진양호의 아침. 자리공이 꽃을 피우고 있다.
    ② 모를 생명이 생명을 기른다. 갈대 줄기를 둥글게 말아 만든 곤충의 알집.
    ③ 진양호에서 아침을 맞고 있는 해오라기



장도장1) 임장식 (장도 기능보유 후보자)

    다음날 아침 일찍 일행은 장도장과 두석장을 만나기 위해 진주 전수교육관으로 향했다. 일행이 머물렀던 물사랑 농촌체험농장 옆 진양호는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아직 물안개를 머금고 있다. 새벽녘 걸었던 진양호 언저리에는 이름 모를 생명이 갈대 줄기를 둥글게 말아 알집을 만들어 놓았고 해오라기는 연신 고개를 물 속으로 밀어넣으며 모이를 찾았다. 삶이란 생존을 위해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가. 문화를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체계’라고 했던 인류학자 B.J 매거스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하여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생물을 지배하는 자연선택법칙에 의해 규제된다’고 말했다.

    인간이 자연을 적응하고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는 ‘칼’이었다. 칼은 신체적으로 방어 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이 맹수의 튼튼한 발톱과 이빨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도구. 사용하기 싫지만 사용해야 하는 것. 혹은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용가치로 본다면 칼은 장식될 필요가 없다. 사냥을 위해 사용하는 칼이 아름다우면 어떻고 아름답지 않으면 어떤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칼은 사용가치 중심의 도구인것이다. 그러나 장도(粧刀)는 말 그대로 ‘장식한 칼’. 칼이 장식된다는 것은 기호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칼이 장식되면, 소유한 사람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거나 사회적인 신분을 알려주는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장도의 역사는 길다. 신석기시대부터 석도를 장신구로 차고 다녔고 고구려인들은 주로 신분의 표시로 장도를 패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뿐만 성인에 이른 남녀노소 누구나 장도를 패용해 장도의 사용가치나 기호가치 모두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용가치나 기호가치가 높지 않다. 이미 질 좋고 보기 좋은 현대식 칼이 실생활을 장악하고 있으며 장도를 신분이나 미적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패용하는 사람은 없다. 임장식 장도장 후보는 장도가 조선시대처럼 실생활에서 사용되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장용으로만 구매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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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도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은장도. 임장식 기능보유자 후보는 전통조각기법인 쪼이질 기법을 고집한다. 칼자루와 칼집에 문양을 넣기 위해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린다.


    현대에 와서 장도의 사용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징가치는 높은 편이다. 장도찾는 사람이 많아 만들기 바쁘게 팔려나가고 단기강습생 공고를 내면 하루 만에 마감된다. 그렇다면 장도의 가치는 과거 사용‧기호 중심에서 상징중심으로 성공적으로 이동시킨 전통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주공예전수관에는 전수교육반(매주 수요일과 목요일)과 단기강습반(월요일과 화요일) 4개반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장도 교육은 일대일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교육시킬 수 없고, 전수관도 건축 당시 기능 전수라는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게 지어져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현재 50여명의 교육생을 지도하기에도 공간은 비좁고 전수자는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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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고 임차출 옹의 뒤를 잇고 있는 그의 아들 임장식 기능보유 후보자.
    ② 그가 만들던 은장도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다.
    ③ 화로. 전통 그대로 임장식 기능보유 후보자는 풀무질을 해 도신을 벼른다.
    ④ 손때가 묻은 그의 도구들.
    ⑤ 도가니. 은을 녹여 은괴를 만들고 두드려 얇게 펴낸다.
    ⑥ 모루. 전통 그대로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려 장식을 한다.


    진주의 전수교육관에는 아버지 고 임차출(林且出·76) 옹의 뒤를 이어 아들 임장식 전승자가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고 임차출 옹은 50여년의 세월을 은장도와 함께 살아온 장인으로 장도의 명산지인 울산 병영 출신이다. 형인 장도장 임인출(林仁出) 씨의 공방에서 어릴 때부터 기능을 익힌 임옹은 울산 병영에서 장도를 제작하다가 1969년 진주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장인의 길로 들어섰다. 임차출 옹은 장도의 도신을 벼르는 기법과 전통적인 문양을 은으로 조각하는 솜씨가 뛰어난 장도 기능 전승자였다. 임차출 옹이 타계하고 임차출 옹 곁에서 장도를 배우고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인으로의 길을 걸었던 아들 임장식이 지난 2001년 기능 보유자 후보가 되어 맥을 잇고 있다.

    임장식 후보는 ‘실용가치가 없는 전통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배고픈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40여 종. 하루에 한 개 정도를 만들 수 있지만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것도 있으며 대작은 1년 넘게 걸린다. 기계로 찍어낸다면 몇 분이면 되겠지만 임 후보는 부친으로부터 배운 전통방식 그대로 칼을 만든다. 전통방식인 풀무작업으로 칼날을 세우고 문양 장식도 전통조각기법인 쪼이질 기법을 고집한다. 칼자루와 칼집에 문양을 넣을 때 주로 조각 칼로 파내는 기법을 사용하면 되지만 임 후보는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린다. 사람은 누구나 칼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했던가. 칼이면서도 아름다운 장신구인 은장도를 앞에 두고 일행은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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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석장 정한열(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1호)이 두석 공예. 일행이 만나지는 못 했지만 진주 전수교육관에는 두석장이 입주해 있다. 두석(豆錫)이란 주석(朱錫), 방자 백동(白銅) 등의 합금 금속을 말하며 두석장(豆錫匠)은 두석을 공예품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통영 12공방2)

    진주에서 한 시간여 달려 일행은 한국의 나폴리 통영에 닿았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답게 산과 바다가 가파르게 만나는 풍경이 아름답다. 통영은 소설가 박경리와 시인 유치환, 시인 김춘수, 음악가 윤이상 등 예술인들을 길러낸 예술의 도시이며 조선시대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던 통영 12공방이 있던 전통공예품의 산실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통영에는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 장인의 본거지가 12공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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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 통영(統營)이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답게 풍경이 아름답다. 소설가 박경리와 시인 유치환, 시인 김춘수, 음악가 윤이상 등 예술인들을 길러낸 예술의 도시이며 조선시대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던 통영 12공방이 있던 전통공예품의 산실이기도 하다.


염장3) 조대용(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기능보유자)
 
    통영 전통공예전수관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영시 무전동에 있다. 다른 전수교육관에 비해 시설이 좋지 못하고 주택지에 위치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 전수관은 조대용 염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과 송방웅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두석장 김극천(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과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무형문화재 제55호)가 입주하고 있다.

    염장(簾匠)이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발은 햇볕을 가린다는 점에서 커튼과 비슷하지만 바람이 통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조대용 염장은 아버지에게 배워 발을 엮기 시작했다. 무과 급제 했던 그의 증조부가 손수 발을 엮어 철종 왕에게 진상하여 치하를 받았던 내력이 있을 정도로 대대로 염장일을 해온 집안이다. 지금 조대용 염장은 내년 완성 예정으로 서울 종묘에서 사용할 대발을 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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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통영 전통공예전수교육관. 염장, 나전장, 두석장, 소목장이 입주해 있다.
    ② 염장 조대용(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기능보유자)
    ③ 일행들이 조대용 염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④ 손으로 날줄 하나하나를 일일이 서로 비껴 역어 만드는 통영대발.
    ⑤ 날줄을 교차해 그려내는 귀문(龜文).
    ⑥ 통영대발. 생활공간이 급격하게 서양화되면서 발이 커튼으로 대치되었다.


     통영 대발은 시릿대를 사용한다. 시릿대는 왕대보다 질기고 부러지지 않을 뿐 아니라 마디가 매끈하고 섬유질이 가늘어 발을 엮어 놓고 보면 마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조대용 명장은 변형을 막기 위해 겨울에 시릿대를 채취해 놓았다가 일년내내 사용한다. 통영 대발은 실을 꼬아 문양을 넣는데 문양의 모양에 따라 귀문렴(龜文簾)과 고문렴(苦文簾)으로 나눈다. 이 작업은 날줄 하나하나를 일일이 서로 비껴 엮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발이라고 하더라도 귀문령은 1개월, 고문령은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힘든 일이다.

     발은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오랫동안 발달한 문화였지만 최근 생활공간이 급격하게 서구화되면서 발이 커튼으로 대치되었다. 사용가치가 떨어졌다면 상징가치라도 높아야 할 텐데 발은 아직 그 위상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조대용 염장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만큼 문화가치가 높은 왕릉의 정자각에 분명 발을 걸었던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을 달지 않았다’며 사람들의 무관심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조대용 명장은 전통 명품이 현대적인 디자인과 만나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으로 이뤄낸 성과가 조각보를 이용한 발. 이 발은 조각보를 만드는 침선장과 발을 만드는 염장이 만나 새로운 미학을 만들 수 있다는 모델이 되었고, 전통공예품이 디자인을 만나 기호가치와 상징가치를 획득하고 나아가 사용가치 또한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전통의 발과 전통의 조각보가 만나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발을 보며 일행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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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발의 윗부분. 침선장이 조각보 디자인으로 침선했다.
   ② 조각보를 만드는 침선장과 발을 만드는 염장이 힘을 더해 만든 발.
   ③ 발의 중간부분. 전통적인 통영대발(귀문렴, 龜文簾).


나전장4)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열아홉 청년이 장인이던 아버지의 권유로 나전에 입문하고 10년간 두문불출하며 기술을 연마하고 또 10년간을 전통 나전 작품들을 연구한 끝에 1980년대 이후 한국 최고의 나전칠기 장인으로 자리 잡은 사람, 그가 나전장 송방웅이다. 나전칠기 기법은 자개를 문양대로 통으로 오려내는 ‘줄음질’과 얇게 썰어내어 조각조각 이어서 문양을 완성하는 ‘끊음질’이 있는데 송방웅 나전장은 작업하기 힘든 끊음질 기법만을 고집한다. 이 기법이 전통의 기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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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나전장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② 송방웅 나전장의 설명을 듣는 일행
    ③ 끊음질을 위해 준비된 자개. ‘끊음질’은 자개를 거도(칼)로 짧게 잘라 조각(Chip)을 만들고 이 조각을 문양대로 모자이크하듯 붙여 만든다 .
    ④, ⑤ 끊음질로 만든 나전칠기.


    토태(실톱)가 나전 작업에 등장한 것은 1910년대. 토태가 나오면서 자개를 문양대로 잘라낼 수 있었지만 이전에는 토태가 없었기 때문에 ‘끊음질’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끊음질’은 자개를 거도(칼)로 짧게 잘라 조각(Chip)을 만들고 이 조각을 문양대로 모자이크하듯 붙여 만든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만큼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인지 송방웅 나전장은 나전칠기가 ‘팔려나가면 기쁘기보다 아쉽다’.

     만약 송방웅 나전장이 나전칠기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효율과 경제성이라는 현대적인 생산 원칙에 충실하다면 비교적 작업이 쉬운 ‘줄음질’을 선택했을 것이다. 왜 그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버려두고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않은 ‘끊음질’을 고집하는 것일까.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이 있지만 원칙과 전통을 고수하는 것, 이것은 이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김금철 소목장5) (무형문화재 제55호 전수 조교)

     통영 전통공예전수관에는 효율이라는 경제 원리를 따르지 않는 장인이 또 있다.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다. 소목(小木)이란 대목(大木)에 상대되는 말로 대목장이 건축이나 공정 감리를 하는 데 비해 소목장은 집안에 쓰이는 장롱이나 궤, 책상, 탁자, 문갑 등 각종 목재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전통의 목가구는 못이나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야말로 짜맞추어낸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해가름장맞춤, 갈퀴맞춤, 겹주먹장이음, 나비장이음 등 정교한 이음과 맞춤 작업이 필요하다. 경제적이지 않지만 못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맞추어 놓으면 못을 사용할 때보다 인장강도가 세배나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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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
    ② 나뭇결이 보이는 바탕면을 감싸고 있는 검은 선은 붓으로 그은 것이 아니라, 흑단과 느티나무, 대나무를 얇게 짜맞추어 넣은 것이다.
    ③~⑤ 소복장이 사용하는 각종 공구들.


    또 선 하나를 넣을 때에도 그려 넣지 않고 나무가 갖고 있는 문양과 색깔을 오묘하게 조화시키고 정교하게 짜맞춘다. 느티나무 나뭇결 무늬를 바탕으로 해서 황색은 옻나무로, 흑색은 감나무 흑심을 얇게 잘라내고 붙여 마치 붓으로 선을 그린 듯 정교하게 기물을 만든다. 10년 정도 건조된 나무를 사용하고 대나무, 배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목단 등 나무의 특성을 모두 익혀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목은 우리나라 전통공예 중에서 공정이 까다롭고 어렵기로 손꼽히는 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작업하다보니 아무리 작은 목가구라도 나무 작업에서부터 완성까지 최소 5개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목장에게 정성과 부지런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는 당대 최고 소목장 아래에서 16세부터 소목 일을 배웠다. 톱질을 잘 못했을 때 떨어지는 선생님의 호된 꾸지람이 무섭고 힘들었던 소년이 어느덧 40년 경력 소목장이 되었지만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목리를 살려내는 작품들에 매료되어 아직도 일을 배우던 그때처럼 매일 이른 아침 일을 시작한다.


다시 경계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풀무작업으로 칼날을 세우고 전통조각기법으로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칼을 두드리는 임장식 장도장, 편한 방법을 버려두고 전통을 고집하며 자개를 칼로 짧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모자이크하듯 문양대로 붙여내는 나전장 송방웅,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정교한 이음과 맞춤 작업을 하는 김금철 소목장…. 이들을 뒤로 하고 일행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가치를 중요시하는 현대와 상징을 중요시하는 전통 사이의 경계선. 느림보다는 빠름, 땀과 정성보다는 효율, 작품성보다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용과 교환․기호가치 중심의 이 시대에 왜 이들은 비효율성과 비경제성, 불편함을 인내하고 있을까, 이들의 고집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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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화재청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 컨설팅> 일환으로 무형문화제 전수교육관을 둘러보고 쓴 탐방기입니다.


   

미주 -------

1) 장도장(粧刀匠) :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인 장도의 제작을 담당하던 기능인을 말한다. 장도는 평복에 차는 작은 칼로서, 소도(小刀)·패도(佩刀)·낭도(囊刀)라고도 하는데, 호신과 장신구 겸용으로 사용하는 전통이 오래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손칼로서의 실질적 기능보다는 상징성과 장식성이 강조되어 여인들의 노리개장식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정교하고 화려한 치장의 장도가 다채롭게 제작되었다. 종류는 겉모양에 따라 첨사도·네모도·을자도(乙字刀)·을자맞배기·평맞배기 등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을자도 계통이 가장 일반적이다. 칼자루와 칼집의 표면을 은으로 장식한 것은 은장도, 산호를 이용한 것은 산호장도라 하며, 일반적으로는 먹감나무·대추나무·화류목 등 목재나 쇠뼈를 쓴다. 원래 하나의 장도가 완성되기까지는 소자장(小子匠)·소목장·조각장·백동장(白銅匠) 등으로 분업화된 장인들의 작업을 거쳤는데 현재는 한사람의 장도장이 칼날부터 장식까지 일괄 제작하고 있다.

 2) 통영 12공방 : 통영시의 대표적 12가지 전통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공예품 명칭이 통영 12공방(craft 12)이다. 조선시대 수군 총사령부였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통영에는 통제영에 신발과 망건, 활, 화살촉, 갓, 가구, 금은제품 등 각종 군수품과 공예품을 공급하던 12공방이 있었다. 구한말 통제영은 폐영됐지만 12공방의 맥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나전칠기(송방웅), 두석장(김극천), 소목장(김금철), 대나무발(조대용) 등 명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 염장(簾匠) : 발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발은 여름에는 창문이나 대청에 쳐서 햇볕을 막고 바람을 통하게 하기 위해, 겨울에는 한풍(寒風)을 막기 위해 치는 생활용품이다. 발의 쓰임새는 다양하여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거나 땅에 펴서 농작물을 말리기도 하고, 궁내에서는 수렴청정(垂簾聽政)에 이용될 만큼 독특한 데가 있다. 햇볕을 가리는 데 쓰는 발은 갈대나 대오리를 삼끈이나 실로 엮어 만든다.


 4) 나전장(螺鈿匠) : 옻칠한 기물의 바탕에 자개를 박아 붙여 장식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원래 자개를 박는 나전장과 옻칠을 맡은 칠장이 각기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옻칠의 사용이 점차 적어지자 칠장의 존재는 나전장 기능 속에 흡수되었다.


 5) 소목장(小木匠) : 목제 세간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주로 장롱·궤함·문방구 등 세간들과 가마·수레·농기구 등의 도구류를 만든다. 건축 분야에서는 창호·난간·닫집 등 건물에 부착되는 작은 시설물 제작이 소목장의 역할이었다.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조각장·나전장과 더불어 중상서(中尙署)에 예속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는 일괄하여 목장(木匠)이라 하였는데, 대신 세분화한 수레장[車匠(거장)]·선장(船匠)·통장(桶匠)·표통장(表筒匠)·마조장(磨造匠)·풍물장(風物匠)·안자장(鞍子匠)·목소장(木梳匠)·목영장(木櫻匠)을 따로 두었다. 조선 초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에 쓰이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후기에 들어와서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고 종류도 늘어나 지역적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2010/07/27 16:22 2010/07/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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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를 걷다(1)

- 강원도 원주 나전칠기 공방 · 횡성 도자전수교육관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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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흙과 물, 바람과 나무의 미메시스(mimesis)를 섞어 전혀 경제성이 없는 전통 기법으로 만든 나전칠기가 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우리나라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이고, 그의 기능을 보전하고 전수하기 위해 국가는 전수교육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반인은 전수교육관을 모르고, 기능보유자는 ‘살기 힘들다’. 욕망의 집어등처럼 ‘돈’을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우리에게 무형문화재와 전통공예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일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공예부문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를 위해 길 나서는 일행의 고민이다.


나전장1) 이형만(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강원도 횡성의 도자전수교육관으로 가기 전 들렀던 원주의 이형만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의 공방 역시 ‘생활’의 한가운데 있었다. 일하고 밥 먹고 자는 일상의 한가운데 걸린 ‘전통공예연구소’라는 간판이 설렁하다. 나전칠기를 경제적 가치로만 바라본다면 그는 일을 그만두어야 옳다. 이형만 나전장은 ‘좋은 나전칠기를 만드는데 기쁨을 느껴 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이 안 되니 답답'하다.마음을 바꾸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의 아들은 전수 포기 선언을 하기도 했다. “실생활에 널리 쓰일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일행의 물음에 이형만 나전장은 고개를 젓는다. 생활을 이유로 작품성 없는 상품을 무작정 많이 내놓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생활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나전칠기를 저렴하게 내놓을 수도 없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장인의 정신과 혼이 깃들지 않은 나전이 어떻게 가치를 갖겠냐는 것이다. 이형만 나전장, 이 땅의 많은 예술인들과 장인들이 그렇듯 그도 ‘경계인(境界人)’이다. 그가 가진 기술은 무형(無形)이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것은 나전칠기라는 유형(有形)의 물상이다. 무형의 기술은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유형의 나전제품은‘팔' 수 있지만 시장은 이미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현대적인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경계선에 서서 이 땅의 장인들이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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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이형만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② 일행에게 나전칠기 제작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이형만 나전장
    ③ 그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공구들.
    ④ 나전 도안을 조개껍질에 붙이거나 떼어낼 때 사용하는 인두
    ⑤ 나전을 붙이는 아교가 중탕되어 이형만 나전장 옆에 놓여 있다.
    ⑥ 패각을 다듬는 이형만 나전장의 작업대. 실톱이 가지런하다.



     그의 서재에는 그가 직접 그린 400여점의 문양이 보관되어 있다. 이 문양이 나전일의 출발점이다.  이 문양을 전복껍질 위에 붙이고 문양대로 얇게 썰어내면서 일이 시작된다. 썰어낸 패각을 아교로 원하는 위치에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해 잘 말린 다음, 사포로 옻칠을 걷어내면 마침내 나전이 그 화려한 빛을 드러낸다. 전복껍질을 사들이는 일에서부터 모양을 그리고, 깎고, 다듬고, 칠하는 등 약 45여개 공정을 거쳐야 나전칠기가 나온다. 아무리 작은 나전이라고 하더라도 6개월은 걸린다고 하니 현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경제성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자연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지금은 재료 구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제주와 통영을 중심으로 전복껍질이 나왔지만 예전과 달리 현재 국내산을 거의 사용할 수가 없다. 환경이 오염되고 먹거리로 무차별 채취되다 보니 두께가 얇아 나전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나전을 위한 대부분의 전복은 동남아시아나 뉴질랜드 등에서 들여온다. 이형만 나전장은 국내산보다 빛이 좋지 않아 늘 마음에 걸린다.

     나전칠기는 조개껍질을 다듬어 장식하는 나전과 옻칠을 하는 칠 기술이더해 만들어지는 생활용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집은 인상적이다. 방마다 장롱, 화장대, 장식장 등 나전이 화려한 빛을 자랑하고 있고, 입식의 현대성 주방은 나전과 옻칠이라는 전통기법이 만나 은은한 붉은 빛을 뛴다. 이 주색(朱色)은 강렬하지 않아 불편하지 않고 자연의 색이라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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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패각에 도안을 붙인다
    ② 도안대로 패각을 잘라 나무에 붙이고, 옻칠을 한다.
    ③, ④ 잘 말린 뒤 사포로 문질러 낸다.
    ⑤ 서서히 드러나는 나전의 빛깔
    ⑥ 완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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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② 나전장의 안방에 놓인 나전칠기 화장대과 나전장
    ③, ⑤ 일상적인 생활 소품에도 나전이 화려한 빛을 드러낸다.
    ④ 옻칠을 한 주방,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⑥ 이형만 나전장의 서재.



최종호 교수와 함께한 화두(話頭), ‘가능할까’

     공예부문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만든 유형물인 전통 공예를 시장에서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무형의 전통 기법 보존(conservation)과 계승은 그리 힘들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할까?’ 일행은 이 물음을 앞에 두고 2009년 한국무형문화재 실태 조사를 했던 한국전통문화학교 최종호 교수와 밤늦도록 마주 앉아 있었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의 법적인 문제에서부터 국제 기준 등을 브리핑한 최종호 교수는 세계 무형문화유산 선정의 네 가지 요소인 재질·디자인·기법·장소, 우리나라의 문화재 기준인 역사·학술·예술·경관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우리나라 전수교육관 운영의 문제점을 브리핑했다. 그는 대도시에 위치한 전수교육관과 타 지역에 위치한 전수교육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하고 공예기술 분야의 전수교육의 경우 ‘전수 교육의 활성화’, ‘사회 교육의 활성화’, ‘시설물 관리 활성화’, ‘재정확보 방안 수립’ 등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특히, 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중요무형문화재공예작품 유통센터(가칭)’를 건립하여 유통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행은, 전수교육관 시설물 관리에서부터 보수, 기능 전수자 공예품의 마케팅과 상품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의 기법과 기록 방법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간이라는 시설과 환경, 전수교육관 운영 프로그램, 공예품의 마케팅과 상품화 전략, 그리고 나아가 무형문화재 기능인의 기록을 남기는 일…. 무형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유형의 전통공예품을 대량으로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갑론을박(甲論乙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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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욕망의 집어등처럼 ‘돈’을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한다. ‘돈’에 명멸되어 있는 현대인은 ‘상징’보다는 ‘교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마저 사용가치화해야 하는 우리 모두는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선에서 서성거린다.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

      현대철학자 보드리야르2)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사용가치(use value)’, ‘교환가치(exchange value)’, ‘기호가치(sign value)’, ‘상징가치(symbol value)’를 가지며,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입각하여 정돈됨에 따라 각각 ‘도구’, ‘상품’, ‘기호’, ‘상징’의 지위를 취하게 된다3)고 말했다. 다이아몬드를 예로 보자. ‘도구’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다이아몬드는 가장 견고한 광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부술 때 사용할 수 있고 이때 다이아몬드는 ‘사용가치’를 가진다. ‘상품’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물품과 교환할 수 있는 ‘교환가치’를 가지고, 기호의 가치로 바라보면 다이몬드는 가난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부자들의 신분 표시로 사용될 수 있다. 즉 ‘나’는 상류계층에 속하고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는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결혼 예물로 주어질 때는 ‘사랑’을 의미하는 ‘상징가치'를 가진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사물의 가치 중에서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다. 어떤 사물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질 때, 조금 더 양보해서 기호 가치를 가질 때 그 사물은 현대사회에서 유용성을 획득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장이 만들어내는 전통공예품은 어떨까. 오래전 분명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유용성이 사라졌다. 만약 전통공예품이 과거처럼 실생활 속에 쓰이고(사용가치), 다이아몬드처럼 다른 사물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용이나 교환이라는 유용성을 잃어버린 전통공예품의 가치는 최종호 교수의 브리핑처럼 역사·학술·예술·경관적 가치이며,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전통미와 생활 문화를 함축하는 상징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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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②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장송모 자기장. 이제 그의 나이는 여든 둘이다.
    ③, ④ 손때 묻은 장송모 자기장의 책상
    ⑤  문 틈으로 보이는 빙렬자기
    ⑥ 일행이 장승모 자기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자기장4) 장승모(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기능보유자)


   강원도 횡성에서 도자전수교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장승모 자기장(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기능보유자)은 우리나라 전통공예의 상징가치를 획득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가 만든 자기는 여러 차례 국빈(國賓) 선물용으로 사용되었고, 중국 북경의 청화대학 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smithonian) 자연사 박물관, 일본 북해도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니 이때 그의 공예품은 사용·교환·기호의 가치가 아니라 상징의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가치의 중심에는 장승모 자기장이 평생을 걸쳐 재현해낸 전통 균열자기(均裂瓷器)가 있다. 표면에 잔잔하게 금이 간 ‘균열자기’는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존재했지만 현대에 와서 사라져버린 우리의 전통자기 중의 하나다. 도자를 만드는 태토(도자를 만드는 재료인 흙)는 네 가지의 흙이 사용되고 유약은 10여 가지의 돌가루가 사용된다. 이를 비율에 맞게 잘 섞어야 균열자기를 얻을 수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기술이 바로 도자공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이 균열을 재현하기 위하여 도자공 장송모는 강진과 양구 등 방방곡곡 흙을 찾아 다녔고 옛 가마터를 다니며 사금파리들을 뒤졌다. 그 덕분에 전통 자기를 만드는 전통기법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의 도자 역사 등 관련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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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장송모 자기장과 그의 빙렬백자. 조선시대 사금파리에 그려졌던 초충도가 그려져 있다.
    ②~⑤ 전수교육관 내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장송모 자기장의 작품.


     그는 전수교육관을 찾는 방문객에게 우리나라 도자의 역사는 물론 일본의 도자 역사와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하며 ‘일본이 현대 도자의 메카로 알려졌지만 전통 도자는 우리나라가 최고’며 ‘일본 전역을 다 돌아보아도 청자처럼 깨끗하고 백자처럼 소박한 자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또, ‘여주·이천이 중심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강원도가 원류라는 사실도 잊지 말라’며 지역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약 48년 전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연하게 물레질을 시작했다는 장송모 자기장은 82세. 일제강압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모진 역사를 겪은 그가 그 긴 세월동안 부등켜 안은 것이 자기였다.

     그는 자신이 재현한 균열자기에 ‘빙렬백자(氷裂白磁)’라 이름 붙였다. 이 빙렬백자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했던 도자를 만들던 것처럼 강원도의 백토(白土)와 자목(柴木)을 사용해 무광택에 비취색과 회색, 그리고 흰색의 중간색을 띠고 있다. 도자공 장송모는 백토를 찾다가 발견한 조선시대의 사금파리에서 발견했던 초충도(草蟲圖) 문양을 그려 넣었다. 은은하고 청아(淸雅)한 분위기의 백자와 단아한 그의 초충도는 궁합이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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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자기의 재현을 위하여 도자공 장송모는 강진과 양구 등 방방곡곡 흙을 찾아 다녔고 옛 가마터를 다니며 사금파리들을 모았다.


     그의 도자를 놓고 그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가치나 사용가치, 그리고 고상한 미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기호 가치’로만 인식한다면, 우리의 문화정체성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전통공예품이 ‘도구’, ‘상품’, ‘기호’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 이른바 ‘돈’이 되면 좋겠다는 시선도 있겠지만 상징가치가 없는 상품화는 위험하다. 전통공예품이 ‘도구’, ‘상품’, ‘기호’라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강조되다 보면 그 동안 지켜온 전통성과 작품성, 그리고 예술성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에서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용’과 ‘교환’, ‘기호’이라는 경제적 가치만을 갖는 것일까? 이것은 보드리야르, 피에르 부르디외 등 현대 프랑스 철학가와 사회학자들이 관심 있게 다루어온 화두(話頭)였다. 사실 ‘나’를 비롯한 우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은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돈’에 울고 웃는 현대인이 ‘상징’보다는 ‘교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의 고유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고유성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것이다. 교환가치로 인식하는 차와 집은 교환할 수 있지만, 이동수단이라는 차의 고유성과 거주지라는 집의 고유성만을 놓고 보면 교환할 수 없는 것이다.

    고유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는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5) 소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공예품 또한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생활 문화의 미적인 함축이라는 그 고유성 위에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지, 상품 가치를 위해 고유성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용’과 ‘교환’ 가치가 지배적인 현대사회에서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치를 높이는 방법, 나아가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의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좋은 대표적인 방법이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도구’, ‘상품’, ‘기호’라는 상품가치로 유형의 공예품에 전착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무형의 가치에 시선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아무리 많이 유통된다고 하더라도 전통공예품의 전통성·예술성·작품성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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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소에서 만난 꽃양귀비. 고유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는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 소중한 것이다.



    장송모 도자공이 운영하고 있는 횡성전통도자 전수교육관은 체험 프로그램의 활성화와 투어(tour) 등의 프로그램이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실습실, 강의장이 갖추어져 있고 숙식이 가능한 생활관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건이 좋은 편이다. 여기에 장송모 자기장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약 12,800명(약 320회)이 다녀갔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얻어내는 이익이 전체 운영 경비의 약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수익을 높여 전수교육관 운영경비로 사용한다면 전통공예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더라도 자립적인 전수관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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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④ 건조실. 물레질을 마친 자기들이 잘 말라가고 있다.
    ⑤~⑥ 전통가마. 그 옆에 땔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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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② 전수관내 실습실. 전수관을 방문하는 체험 프로그램 잠가자들이 물레를 돌라며 자기를 만들 수 있다.
    ③~⑥ 체험 프로그램들이 만든 작품. 마르고 나면 가마에 넣어 자기를 완성하고 잘 포장하여 체험자들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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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문화재청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 컨설팅> 일환으로 무형문화제 전수교육관을 둘러보고 쓴 탐방기입니다.





미주 -----------------

1) 나전장(螺鈿匠) : 옻칠한 기물의 바탕에 자개를 박아 붙여 장식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원래 자개를 박는 나전장과 옻칠을 맡은 칠장이 각기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옻칠의 사용이 점차 적어지자 칠장의 존재는 나전장 기능 속에 흡수되었다.

2)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 7. 27일~2007. 3. 6)는 대중과 대중문화 그리고 미디어와 소비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의 이론은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0년 프랑스 남부 딩겐에서 태어났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하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1958년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었으며, 전후에는 알지에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였다. 그 후 파리 대학에서 레이몽 아롱의 조교 생활, 릴 대학에서의 강사를 거쳐, 1964년 30대 전반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교수이자 연구주임으로 취임했으며, 교육문화사회센터(1969년에 유럽사회학센터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름)를 창설하여 소장 연구자들과의 공동 연구를 추진했다. 1975년 학술 연구 잡지인 <사회과학연구학보>를 창간,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예술, 문학, 민족, 언어, 취향, 스포츠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1981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강좌교수에 임명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알제리의 사회학(Sociologie de Algjerie)>(1961), <상속자들(Les Heritiers)>(1964), <중간예술(Un art moyen)>(1965), <예술 애호(L'amour de l'art)>(1966), <재생산(La Reproduction)>(1970),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구별 짓기(La Distinction)>(1979), <실천 감각(Le sens pratique)>(1980),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Questions de sociologie)>, <말하기의 의미(Ce que parler veut dire)>(1982), <국가 귀족(La Noblesse d'Etat)>(1989), <자유교환(Libre-Echange)> (1994), <실천이성(Raisons pratiques)>(1994) 등이 있으며, 이 외에 수많은 논문들이 있다.

 3)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4) 자기장(瓷器匠) : 자기를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자기는 흙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인 도자기(陶瓷器, Porcelain)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1,300℃ 이하의 온도에서 구운 것을 도기(陶器 earthernware/pottery)라고 하며 1,300∼1,500℃에서 구운 것을 자기(磁器, porcelain)라고 한다.

 5)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2010/07/21 18:00 2010/07/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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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중심 문화에서 다양성으로
-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역사의 아침, 2009)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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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역사의 아침, 2009)을 읽었다. <<왕을 위한 변명>>, <<조선의 왕>>,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등의 책을 펴낸 저자는 역사학자답게 ‘사실’에 충실해 원경황후, 정희왕후, 인수대비, 인목황후, 혜경궁 홍씨, 명성황후 등 일곱 왕비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냈다. 왕비가 되기 전의 어린 시절, 성장 환경, 친정의 가문 배경까지 다뤄 왕비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의 일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7년 5월 초판을 발행하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13쇄를 찍었다.

      사실, 실록(實錄)이란 한 임금의 재위 기간 동안 그 사적을 기록한 것이라 왕비의 삶이 자세하게 담길 수 없다. 실록은 국가 통치자의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보니 이권이 개입될 수 있으며 자칫하면 사화(士禍)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민감해 철저하게 사실만을 기록한다는 원칙에 의해 편찬되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하여 국가의 각종 회의나 모임에 참석한 사관들이 사초를 기록하고, 이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임금이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실록을 편찬한 뒤에는 사관들이 썼던 사초는 세초(洗草)라고 하여 모두 물로 씻어 없애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이렇게 철저한 보안 속에 조선시대 임금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의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처럼 자신의 의견을 더하지 않고 일곱 왕비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써내려 갔다. 조선 왕비들이 주인공이니 ‘조선왕비’, 사관처럼 사실만을 기록했으니 ‘실록’이라 이름 붙여 ‘조선왕비실록’이라는 표제를 달았다. <<조선왕비실록>>은 역사 속에 잘 드러나지 않는 원경황후, 정희왕후, 인수대비, 인목황후, 혜경궁 홍씨, 명성황후 등의 어린 시절과 그녀들을 둘러 싼 사람들의 관계 등을 행록과 행장, 묘지명 등 여러 사료를 고증해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그려내고 있다. ‘조선시대 왕비들의 삶과 당시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진실되고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머리글은 의도를 배제하고 사실만을 말하겠다는 역사학자로서의 신념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사서의 기록이 반드시 그 사실만을 기록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선왕조실록>>조차 사실을 기록한 사초를 바탕 삼지만 왕이 죽은 다음해 춘추관(春秋館)에서 좌/우의정을 총재관으로 하여 편찬되기 때문에 그 편찬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고 비틀려질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의 일화에서처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연과학도 비틀려지는데, 인문학에 속하는 사학(史學)이 온전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서라고 해서 과거 일어났던 수많은 모든 사건들, 존재했던 유?무명의 모든 사람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다. 어떤 사실은 버려지고 어떤 사실은 선택되어 기록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사실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의도적으로 특정 사실만을 나열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계열화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 1892-1982)는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왜곡될 수밖에 없으며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이라고 말하고, 심지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 자체가 불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역사는 가치를 가진다. 한 번 정리되고 기록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시 재구성되면서 역사는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가 신명호가 조선시대 왕비의 삶을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을 뿐인 이 책 또한 의도하지 않더라도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책 <<조선공주실록>>(역사의 아침, 2009), <<궁궐의 꽃, 궁녀>>(시공사, 2004), <<조선의 궁궐에서 일했던 사람들, 궁>>(고래실, 2006)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명호가 그 동안 우리나라 역사의 주인공(master)이었던 임금이나 중요 관료들이 아니라 조연(supporter)에 속에는 공주, 궁녀, 일하던 사람들에 주목한다는 것은 지배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메이어(major)에서 마이너러티(minority)로, 단일화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나가는 우리 시대의 방향을 짐작케 한다.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저자의 역사서에서 그 대상이 왕에서 왕비로, 궁녀로 바뀌고 그 책이 대중들로부터 관심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시대정신이 단일화된 지배중심 문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가진 문화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며, 이 시대정신이 저자에게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정의 사실이 집중적으로 나열되고 계열화되면 동시대인에게 봉상스(bon sens, 양식)를 형성하고, 이 약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다시 계열화하며 한 시대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 좋은 예가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의 반응이다. 혹자는 이 책을 두고 남성 중심의 역사와 여성 중심의 역사라는 시각으로 리뷰를 쓰고, 심지어 출판사 서평초차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거의 모든 공은 남성에게 귀속되었고, 그것은 왕비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에서 왕비는 분명 존재했음에도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라고 쓰며 과거 봉상스로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오해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인의 역사 인식도 포함된다. 그 오해의 진원지는 대부분은 과거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역사서에 의지해 단편적으로 바라보거나, 과거의 역사를 당시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으로 임의적으로 조립하고 양식화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과거 우리의 사회를 두고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양식화하는 것이다. 이 일반화는 남북분단 상황, 그리고 산업화를 앞세우던 6,7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가부장적 지배논리를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충효사상(忠孝思想)이 강조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양식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주역은 지배층 중심의 역사 교육이었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에는 과거 조선시대 지배 논리로 이용되었던 유학(儒學)이 놓여 있다.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하고, 열녀비를 세우면서 불사이부(不事二夫)가 강조되었다는 등의 교육을 받고, 당시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양식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도리어 그 반대일 수가 많다. 합목적적 질서체계(合目的的 秩序體系, 법규나 규칙, 규정 등)는 어떤 성향들이 사회 질서를 해칠 정도로 많이 나타날 때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하고 불사이부의 정신이 강조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많은 여성들이 재혼을 하고 비정상적인 사랑이 성행해 사회 질서를 해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신윤복의 그림 중 가장 빼어난 수작으로 꼽히는 ‘단오풍정(端午風情)’에는 가슴을 드러내 놓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여인들 너머 이를 바라보는 남정네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기다림>이라는 그림에는 뒤뜰에서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사대부집 여인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그림뿐만 아니라 이런 사실은 현재 남아 전하는 대부분의 고대가요, 향가, 속요, 별곡에 나타나고 심지어  주류 정통 역사서에도 많이 보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고려사에는 재상인 조석견을 방문한 강윤충을 유혹하는 조석정의 처 장씨 이야기가 나오고 주로 여성들이 먼저 강윤충을 유혹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정한 기준(제사)에 따라 아들이나 딸에게 모두 공평하게 재산을 상속하고, 거의 태반의 남성들이 ‘장가 가서’ 아예 처가에서 생활하던 역사적 사실을 버려두고 당시 지배논리에 맞는 사실만이 나열되면서 과거 우리의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라고 계열화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 철학자 슬로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우리는 모두 이데올로그’이며 또한 ‘이데올로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일곱 왕비의 삶을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스스로 사초를 기록하던 사관처럼 철저한 고증에 의해 객관적인 사실만을 써내려 갔다. 그러나 잘 반추해 본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이 역사서를 읽는 재미다. 아 참, 잠깐. ‘모든 사람이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는 저자의 첫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2010/07/09 01:58 2010/07/0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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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이 생략한 ‘마지막 문장’

- 정이현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문학동네, 2010)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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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 정이현이 <<달콤한 나의 도시>>(2006)에 이어 2009년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를 발간했다. 작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작가는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이전 작품에 미치지 못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한강에 남자 시체가 한 구가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라가고 있지만 추리소설다운 서스펜스(suspense)와 스릴(thrill)이 없고 이전 작품에서 보이던 감수성도 드러내지 못했다. 추리소설 형식이라는 이유이겠지만 문장이 밋밋하고 이전 단편소설에서 보이던 탄탄한 구성력도 사라져 헐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주목받는 것은 가족 이야기를 통하여 현대사회 인간관계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소설 속 가족 구성원은 가장 김상호, 화교인 새 어머니 진옥영과 그들의 딸 김유지, 그리고 김상호가 진옥영과 재혼하기 전 부인 미숙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김은성과 아들 김혜성이다. 조용하게만 보이는 이 가족은 소설의 제목처럼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가족들은 얼굴을 마주할 뿐 이야기하지 않으며, 서로 피하지는 않지만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말썽은커녕 걱정스러울 만한 일을 일으켜본 적이 없는 유지의 ‘실종’으로 서로를 ‘알’게 된다.

    장기 밀매라는 불법적인 일로 가정을 꾸려가는 아버지와 ‘유지’를 임신했기 때문에 결혼했지만 주기적으로 예전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새 어머니 진옥영, 이런 가족이 싫어 따로 살면서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딸 김은성과 무심한 척 가족의 일원이 되어 살지만 ‘묻지마’ 방화를 일삼는 아들 김혜성,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늘 외로워하지만 표현하지 않는 김유지…. 이들의 가족 관계는 단적으로 말해 불구(不具)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불구’라는 말 그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가족이라 규정할 수 있는 ‘사랑’과 ‘화목’, 그리고 ‘연대감’이 없다.

    소설가 정이현은 작가적인 감각으로 가족이란 이 불구의 관계망을 드러냄으로써 구부러지고 일그러진, 심지어 깨져버린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망을 캐치(catch)하고 풀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드러내서 어쩌라고? 정작 정이현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작가 정이현은 이 시대 불구의 증후를 찾아냈지만 그 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거나 혹은 밝히지 못했다. 아버지 김상호를 재판정으로 보내고, 딸 김혜성이 자주 방배동 집에 들러 유지를 돌본다는 것으로, 새엄마 진옥영이 씩씩해졌다는 김혜성의 독백으로 소설을 따뜻하게 끝냈지만, 정작 중요한 ‘이들이 왜 이런 불구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독자에게로 밀쳤다. 그래서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이라는 쉼보르스카 여사의 말을 인용하여 작가의 말을 쓴 것일까. 대체 정이현이 5백여 페이지 분량으로 구구절절 이야기하고도 생략해 버렸던 ‘마지막 문장’은 뭘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아포리즘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킬로만자로의 표범’같처럼 혼자 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가혹한 법칙이 작동하는 밀림 속에서도, 사람들의 관계마저 거래되는 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관계망의 기초인 ‘가족’이란 테제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흔히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이야기하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도리어 이 말은 곧 욕망의 집어등처럼 명멸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서 ‘건강한 가족관계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증후는 이미 있었다. 19세기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팽창이 사적인 연대를 손상시키며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현대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은 서양 근대화시기에는 가정이 자본주의를 확립하는 수단이었으며 현대는 자본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생산과 소비의 최소 단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된 <<친밀성의 거래(The Purchase of Intimacy)>>(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09)의 저자 ‘비비아나 A. 젤라이저’는 친밀성이라는 테제로 사회사를 돌아보고 친밀성(가족)과 거래(시장)의 영역이 그렇게 명확히 분리된 것도 대립적인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친밀성과 거래는 구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로 교차되고 연관되면서 삶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매춘이라는 친밀성의 거래는 어느 시대나 있어 왔으며, 룸살롱, 대딸방, 키스방, 아빠방 등 최근 새로운 친밀성 거래 방식이 생겨나는 것은 거래의 영역과 친밀성의 영역이 분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속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다. 가족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관계망 또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젤라이저’식으로 바라본다면, 가족이란 관계 또한 친밀성을 거래하는 하나의 시장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 가문과 가문이 혼맥을 맺어왔으며 최근에는 ‘재벌가계도’란 이름으로 재벌들간의 주고받기식 혼맥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가족의 일원이 친밀성을 거래하면서 얻는 대가는 ‘보호와 보장’ 그리고 ‘기호’다. 소설에서 아버지 김상호가 얻고 싶은 것은 가정이라는 기호(sign)다.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김상호에게 가정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게 해주는 단초(斷礎, 깨어져서 조각이 난 주춧돌)로 작동하고, 온전한 가정을 꾸려가는 성실한 사람임을 표시하는 ‘기호’다. 임신을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를 배반하고 김상호와 결혼한 진옥영이 얻고 싶은 것은 한국 국적 취득과 안정된 생활이며, 딸 김은성과 김혜성이 얻고 싶은 것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의 ‘지원(돈)’이며,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유지가 바이올린에 몰두하는 것은 부모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그것을 서로 잘 알고 있지만 이외의 것은 개별적인 것인 것으로 간주하고 서로 묵인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처럼 ‘너를 모른다’.

    작가 정이현은 ‘사랑과 결혼은 다른 것이다’를 외치며 경제적 능력과 경제적 조건을 찾아 이합집산하는 우리, ‘꽃’ 대신 ‘보석’이나 ‘자동차’를 을 외치는 이 시대의 사랑법과 그 사랑법이 낳은 불구의 관계, 거래라는 시장 영역이 전혀 시장적이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마지막 문장에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이현은 그 마지막 문장을 생략하면서 이 가족을 묵인했다. 사실을 직시한다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불편하지만, 거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주부나 고객의 화대로 생활을 유지하는 매춘 여성이나 다르지 않다. 고객을 웃음과 미소로 대해야 하는 직종군의 일을 두고 최근 ‘감정 노동’이란 말이 생겨났으니 이 웃음과 미소 또한 친밀성의 거래이며, 상대가 기분 좋으라고 남발하는 ‘칭찬’이나 ‘Yes’도 개념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가. 우리도 정이현이 그려내고 있는 이 불구의 가족을 용인(容認)한다. 휘어지고 비틀려 있지만 이해하고 묵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안에서 우리도 모두 공범이기 때문이다.




 

2010/07/05 18:21 2010/07/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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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통섭’
- 지식의 대통합 통섭 / 에드워드 윌슨 저 / 최재천, 장대익 옮김 / 사이언북스 2009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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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학문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도 생명은 홀로 충분히 가치있고 소중하다(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남이섬 )


      기어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국가 ‘리브리아’에서는 모든 투쟁과 대립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자연과학적, 생물학적, 사화과학적인 ‘통섭’이 시작되고, 투쟁과 대립은 결국 ‘인간의 감정’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래서, 그리하여, 마침내, 기어코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이라는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한다는 법률을 만들고 만다! 리브리아의 국민들은 이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없애는 효과를 가진 이 약을 통해서 인간은 일체의 감정, 개성, 다양함을 상실한 대신 균형과 안정, 평화를 이루게 된다. 이 안정과 균형, 평화의 이름은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뭐,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이쯤되면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라 ‘커트 위머’ 감독의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이퀼리브리엄’은 '균형' 내지 '안정'이라는 뜻이다. 이 안정과 균형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 그래서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을 정기 복용하도록 하고, 책, 예술, 음악 등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금지시킨다. 만약, 이 약을 복용하지 않거나 감정을 느낀다면? 화형에 처해진다.

      그래서 국가 ‘리브리아’의 국민들은 행복할까? 아니, 행/불행을 떠나서 그들의 삶이 풍요로울까? 오늘날 생물학의 석학으로 불리는 ‘에드워드 윌슨’은 책 <<지식의 대통합 통섭>>(사이언북스, 2009)에서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왜?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우며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더 나아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미국 국가과학메달, 국제생물학상, 크래포드상을 수상한 생물학의 석학 에드워드 윌슨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생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심지어 인문학까지 모두 ‘통섭’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통섭의 주체는 생물학이다.

      통섭(Consilience)이란, ‘지식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월리엄 휴얼의 개념이다. 이 통섭은 그저 단순한 각 분야의 동반자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체계의 기초를 다지는 통합을 의미한다. 통섭을 주장하는 석학답게 그의 방대한 지식은 전공인 생물학에만 머물지 않고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과 예술, 사회과학까지 넘나든다. 이오니아의 마법,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계몽사상, 자연과학,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마음,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인간 본성의 적응도, 사회 과학, 예술과 그 해석, 윤리와 종교 등 이 책의 11개의 섹션은 그의 통섭을 증거하고 있다. 그 방대한 지식으로 이 책을 읽은 어느 독자는 ‘종.합.선.물.세.트’라는 여섯 자로 읽은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생물학을 ‘문화’와 통섭시키고, ‘경제’와 통섭시키며 심지어 '마음', ‘도덕과 윤리’를 생물학으로 통섭시킨다. 그리고 예술까지….  윌슨이 넘나들지 않는 영역은 없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윌슨은 계몽주의를 부활시키고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부활하며 시대를 역주행한다.

    물론, 본래 삶이란 것이 자연과학, 사회과학, 문화 예술, 경제 등이 나눠지지 않고 한 덩어리이듯, 학문 또한 각기 따로 존재하면서 독자적인 영역만을 고집하며 대립할 필요는 없다. 또, ‘이제 우리가 진리의 행보를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옮김이 최재천의 서문에도 찬성하다. 그러나 윌슨이 말하는 이 통섭은, 위험하다! 이 통섭은, 개별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하자는 ‘모자이크’나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개별의 존재를 뜨거운 도가니에 넣어 가열하고 휘저어서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멜팅 포트(Melting pot)’이기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의 ‘리브리아’라면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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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안정을 위해 인간의 모든 감정을 없앤다는 내용의 영화 <이퀼리브리엄>(커트 위머 감독/ 크리스찬 베일, 에밀리 왓슨, 숀 빈, 테이 딕스 주연). 안정과 균형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을 정기 복용하도록 하고, 책, 예술, 음악, 술, 동반견(애완견) 등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금지시키는 가상 국가 '리브리아'가 배경이다.



    “... 철학, 즉 모르는 것에 관한 숙고는 그 통치권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우리의 공동목표 중 하나는 철학을 과학으로 최대한 빨리 전환시키는 것이다. 세계가 정말 지식의 통섭을 장려하게끔 작동한다면 나는 문화의 영역도 결국에는 과학, 즉 자연과학과 인문학 특히 창조적 예술로 전환될 것이라고 믿는다. (중략) 철학, 역사학, 윤리학, 비교종교학, 미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은 과학에 접근할 것이고 부분적으로 과학과 융합할 것이다. (중략) 미국 의회에 계류 중인 법률의 절반 정도는 중요한 과학 기술적 요소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이 쟁점들 중 대부분, 예컨대 인종 갈등, 무기 경쟁, 인구 과잉, 낙태, 환경, 가난 등은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 통합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 ”(45p, 제2장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이것이, 왜 통섭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다. 통섭한다면, 무기 경쟁, 인구 과잉, 낙태, 환경, 가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의 해결은 좋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섬뜩하다.

   “ ... 유전규칙을 해독함으로써 인간 두뇌가 터득할 수 있는 모든 의미와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 그리고 즐기고 싶은 모든 모험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것이고 감정은 무제한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거짓과 참이 가려질 것이며 우리는 서로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종의 일원이며 생물학적으로 유사한 두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96p, 제3장 계몽사상)

    이것은, 생물학이 통섭한 철학과 인문/사회과학의 모습이다. 유전규칙에 따라 감정과 의미 구조를 밝힐 수 있으며, 심지어 거짓과 참마저 밝힐 수 있다. 사회 안정을 위하여 감정과 의미가 통제된다면 바로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세계다.

    “...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험을 쳐서 그 점수에 해당되는 교육 기관에 들어가게 되고 자신들의 천부적 재능에 가장 적합한 직업을 갖게끔 되어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이 멋진 신세계에서는 환경변이가 증가할 것이고 선천적 능력은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 만일 시험 점수와 그에 상응하는 환경이 유전자를 반영한다면 유전도 자체는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쓰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그 사회에서는 결과의 균일성이 최고의 덕목이 될 것이다. 예컨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오히려 홀대받고 지체아들이 개별적으로 집중 받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아이들을 능력과 성취 면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함이다...” (225p, 제7장 유전자와 문화까지)

    이건, 생물학이 통섭한 문화와 사회학의 모습이다. 아이들의 유전적인 성향을 분석해 천부적 재능에 적합한 직업을 갖게끔 해줄 수 있다. 물론, 때로는 강제되거나 장려될 수도 있다.

    “... 인간의 행동을 평가할 때 행동유전자를 고려하는 일은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사회생물학은 인간 본성의 생물학적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한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중략) 인간사회생물학의 주요 연구전략은 가장 높은 진화적 적응도를 안겨주는 사회 행동이 무엇인지를 예측하기 위해 집단유전학과 생식생물학의 기본 원리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일이다. 이 예측들은 세심하게 설계된 현장 연구의 결과 분만 아니라 민속 기록과 역사 기록에서 얻은 자료들과 비교/평가된다 ... (297p, 인간 본성의 적응도)

   “... 인간의 협동 성향과 배신 성향이 유전되는 것이라 상정해 보자. 즉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더 협동적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경향이 덜하다고 가정하자.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덕적 소질은 지금까지 연구되어온 다른 모든 정신적 특성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중략) 인간 본성의 윤리적 차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충분히 탐색되기 시작하면 도덕 논증의 선천적인 후성 규칙들이 결속, 협동성, 이타성과 같은 단순 본능들로 그저 한데 모아 놓은 형태가 아님이 판명될 것이다. ... (437p, 제11장 윤리와 종교)

    이것은 생물학이 통섭한 ‘인간 본성’과 ‘윤리’, 그리고 ‘종교’다. 생물학적으로 협동 성향과 배신 성향 등을 밝힐 수 있다. ‘내’가 협동 성향이 강하다면 좋겠지만, 배신 성향이 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한마디로 ‘낭패’다. 때로, 사회 안전과 발전, 성장을 위하여 구금되거나 사회적인 '왕따'를 당할 수 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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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윌슨 저 <<지식의 대통합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북스 2009)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생물학과 자연과학, 인문과학이 통섭한 상황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과 거짓을 확인할 수 있으며, 천부적 재능을 알 수 있으며, 협동성, 이타성, 심지어 도덕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사회에 접목한다면?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세계는 균형감 있고 안정되고 평화로운 ‘신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 좋고, 윌슨의 말처럼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구축'할 수 있으니 좋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는 자민족이 원래부터 신성하다고 하는 혈통우월론을 폈다. 그 입증을 위하여 인체실험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로 실제로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혈통적 또는 우생학적 우월함을 과학적으로까지 증명하기도 했다. 혈통 우수민족과 열등민족을 구분하는 이 관념은 ‘열등민족’인 유대인 박해와 주변국에 대한 정복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등한 인류는 남기고, 열등한 인류는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인류가 발전할 수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망상은 실패했지만, 당시에 행해졌던 인체 실험의 결과는 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내었고, 현재도 구해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혈통우월론과 전쟁을 긍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윌슨 자신도 통섭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사회, 즉 ‘파우스트의 유황냄새’가 나는 섬뜩한 사회는 ‘전체주의적인 색채를 띠기 때문에 추구할 수는 없다’고 경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유전 연구가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하면서 이 세계를 그리고 있다. 딱히 예로 들 다른 상황이 없었던 것일까.

     만나지 않아야 할 것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그렇고 도토리와 감, 당근과 오이가 그렇다.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다 다른 차와 만나지 않는 것이 좋고, 횡단보도의 사람과 주행하는 차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디 삶이 그런가. 만나지 않아야 할 것이 만나고 문제가 생긴다. 피해보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건 의지나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느닷없이 사랑이 오고 느닷없이 만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만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섬뜩한’ 생물학을 만나야 한다. 윌슨의 생물학 중심 <<통섭>>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미 그 징후는 뚜렷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앞으로의 세계는 ‘생물학과 우주공학 기술을 갖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제4의 물결을 이야기했고, 인간유전자(Genom)도 이미 그 지도(Map)가 그려졌다. 윌슨의 말처럼, '이제 유전자들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밝혀야 하는 단계'만 남아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부모 모두 선천적인 당뇨병을 가지고 있으니 갓 태어난 자신들의 아기에게 당뇨발병을 억제하는 유전자 조작을 허락 해달라는 청원을 법정에 제출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애를 많이 낳자고 하면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참, 변덕도 심하다. 언제는 낳지 말자고 하더니! 이제 윌슨의 <<통섭>>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생물학을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지칭한다. 뚜껑을 여는 순간,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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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Entfremdung)는 생산관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활동에 의한 산물--생산물이나 사회관계, 두뇌활동에 의한 관념과 사상, 과학, 예술 등-- 그 자체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활동하며 독자적인 힘을 가지게 되어, 인간을 도리어 지배해버리는 힘이 될 때 소외는 나타난다.(Canon EOS D60 / 경기도 양평 / Tamron 17-35mm )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유전자 지도가 완료되고 그 기능이 확인되었고 의도에 따라 조작이 가능해졌다. 상자를 열면 희망이 있다. 암이 정복되고 불치병이 치유된다. 아픈 사람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공유화된 것이 아니라 재산 증식이 목적인 사유재산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상자에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 더 많다. 부자는 아픈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가난한 자는 아파야 할 것이며, 부자는 머리 좋고 튼튼한 아이를 가질 것이며 가난한 자는 머리 나쁘고 허약한 아이를 가질 것이다. 이것을 정치학이나 경제학, 또 사회학과 통섭시켜 보자. 그 길을 따라가면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의 ‘리브리아’에 닿는다. 너무 시니컬하다고? 긍정의 힘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에서 안정과 균형, 평화를 이루었다는 ‘리브리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을 복용해 안정과 균형, 평화를 이루었던 이 나라는, 감정 없는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군에 의해 전복된다. 왜? 안정과 균형, 평화, 여기에 더해 발전과 성장이라는 이상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감정, 개성, 다양함과 같은 생명의 본질을 억압해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생명이라는 것은 기계가 아니어서 표준화, 규격화할 수 없는 것이다.

     소외(Entfremdung)는 생산관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활동에 의한 산물--생산물이나 사회관계, 두뇌활동에 의한 관념과 사상, 과학, 예술 등-- 그 자체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활동하며 독자적인 힘을 가지게 되어, 인간을 도리어 지배해버리는 힘이 될 때 소외는 나타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른 것은 몰라도 윌슨의 <<지식의 대통합 통섭>>은 적어도 두 가지를 알려주는 것에는 성공한 것 같다. 생물학이 다른 학문과 통섭되었을 때는 위험하다는 사실, 그리고 통섭이라 하더라도 생물학 중심의 통섭은 섬뜩하다는 사실!




2010/05/20 02:19 2010/05/20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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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오페라의 유령
- 가스통 르루 저 / 성귀수 역 / 문학세계사, 2001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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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시대부터 우리와 함께 존재해온 가면. 가면!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 되어보고 싶다는 갈망’일지 모른다(형일초등학교 학생들의 탐춤 공연 /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경북 구미 )



     인류가 만들어낸 물건 중에 수천 년 동안 원형을 간직한 것 중의 하나가 ‘가면’입니다. 원시시대부터 우리와 함께 존재해온 가면은, 얼굴을 가리거나 초자연적인 존재를 표현하거나, 혹은 전쟁에서 용맹함을 과시하거나 또 자신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말뚝이는 가면의 힘으로 양반들에게 저항하고, 복면 달호는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면서 성공을 꿈꿉니다. 나뭇잎이나 나무에서 종이, 철, 플라스틱 등으로 만드는 재료가 변했고, 6세기 신라시대의 가면처럼 옻칠을 하거나 하회탈처럼 나무를 깎고 형형색색의 색을 칠을 하기도 했지만 수천 년 동안 그 원형을 지켜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가면은 지금도 유용합니다. 가면무도회라는 이름으로 대놓고 ‘내’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고, ‘베트맨’, ‘마스크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이 시대의 영웅들이 가면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가면!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 되어보고 싶다는 우리의 ‘이룰 수 없는 갈망’일지 모릅니다.

     당대 최고의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였던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1868∼1927)가 쓴 <오페라의 유령>에서 ‘에릭’은 사랑을 위해 가면을 쓰고, 사랑을 위해 가면을 벗어던집니다. 원래 에릭에게 있어 가면은 자신의 흉측한 외모를 가리기 위한 위장용이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오페라를 보기 위해 2층 5번 박스석에 앉을 때, 지상의 정상적인 사람과 만날 가능성이 있을 때 가면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흉측하지만 가면을 쓰지 않고서도 에릭은 오페락 극장의 지하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수치심이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혼자 있을 때에는 다 벗고 있더라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습니다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을 때에 비로소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하 세계에 있을 때 에릭은 가면이 필요 없습니다. 유령이 아니라 정상인으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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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추리 소설 <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르루 저, 성귀수 역, 문학세계사, 2001)



     그러나 에릭이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순간, 절망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세상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늪이 되어 버립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위험한 것입니다!(대부분의 경우 남자들은 생산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능력이 있는 남자이든, 약한 남자이든 남자들은 생산욕을 극대화하고 자원을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에릭은 ‘음악의 천사’입니다. 그의 지하 생활에서 음악은 그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존립 근거였습니다. 그가 세상에 올라오는 날은 오페라가 있는 날이고 음악은 그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합니다. 그 정도면 ‘해피’했을 텐데 그 음악이 크리스틴을 만나게 하니 음악이 그를 살게도 죽게도 합니다. 영화 <배트맨>의 ‘펭귄’은 흉측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만, 에릭은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가면을 벗은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기만을 원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에 ‘음악의 천사’ 에릭이 있다면, 우리 시대에는 ‘팝의 천재’ 마이클 잭슨이 있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마이클 잭슨이 꿈꾸었던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흑인이라는 차별은 그로 하여금 세상에 나오기보다는 차별이 없는 음악을 선택하게 했을 것이며 잭슨은 음악에 차별 없는 음악에 심취했을 것입니다. ‘빌리 진’, ‘비트 잇’ 등 잭슨의 팝은 세상을 열광시켰습니다. 음악이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어가자 잭슨은 숨겨 놓았던 아픔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 되고 싶다는 숨겨진 열망! 그는 마침내 생물학적인 가면을 착용합니다.

     이것을 ‘타자의 내면화’라고 합니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흑인인 그가 남들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백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하고 과감하게 실천하게 하는 것. 그것이 타자의 내면화입니다. 에릭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에릭은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해 가면을 쓰고 지하로 숨어듭니다.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울마저 모두 없애버립니다.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입니다. 이 내면화의 결과는 비참합니다. 잭슨은 쉰이라는 나이에 죽었고 에릭은 유령이 되어 살아갑니다. 이처럼 시선이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간파한 미셀 푸코는 ‘시선은 권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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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은 시선과 시선의 마주침이 없다. 그래서 편안해진다(퓨전밴드 '훌'의 '세상울림 콘서트'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남이섬)



    ‘아름다운’ 크리스틴은 ‘흉측한’ 에릭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시선이란 권력적이어서 이를 벗어나려고 하면 ‘초인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향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크리스틴이 가면을 벗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흉측한’ 자신에게 키스해 주었을 때, 즉 크리스틴에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크리스틴을 떠나보냅니다. 에릭이 시선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크리스틴이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크리스틴의 고통이 되리라는 것을 에릭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줄 준비가 된 ‘아름다운’ 크리스틴을 떠나보냅니다. 이처럼 ‘나’의 시선이 자신의 것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간편하고 편한 차림새를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날이 더운데도 불구하고 와이셔츠를 입고 긴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거기에 윗도리까지 입고 출근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늘 그것이 ‘예의’이며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루마리를 입었을 것이고,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살고 있었다면 간신히 몸만 가리거나 아예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나’는 없고 타자의 시선이 존재할 뿐입니다. 추워서 입는 옷이 아니라면 ‘옷’도 가면의 한 형태입니다. 에릭의 망토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에릭이 썼던 가면을 의류라는 형태로 변형해 착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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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인형. 팔을 들고 있거나 피리를 불거나 하트를 그리더라도, 저 포즈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자의 의지다.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남이섬)


     시선이 고착화된 형태로 나타날 때 그 시선은 또 하나의 권력입니다. 그래서 미셀 푸코는 ‘시선은 권력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나’는 나’라고 외칠 때 그 '나'는 에릭이 되어버립니다. 무엇이 그 시선을 만드는 것일까요? 영화 <복면 달호>에서 왜 ‘달호’가 가면을 써야 했을까요? 이 문제는 나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고 계십니까? ‘저 사람은 가난하구나’, ‘저 사람은 명품 가방을 들고 있네’, ‘왜 저렇게 입고 다닐까’ 이렇게…. 아니면, ‘이렇게 하고 나가면 남이 어떻게 볼까’, ‘부끄러워서 못 나가겠어’, 또 ‘남들은 저렇게 좋은 집에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권력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고 ‘나’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에릭처럼 늘 가면을 써야 하거나 반대로 에릭을 오페라 극장 지하에 가두게 될 것입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영화 <복면 달호>의 결말처럼, 가면을 벗고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0/05/17 15:43 2010/05/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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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파토스(Pathos)1)

- 김애란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 2008)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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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낙산성곽


     채플린이 달리고 있다. 깃발을 흘리고 간 자동차를 보게 된 채플린이 그 깃발을 주워 돌려주려고 뛰고 있는 것이다. 뒤뚱뒤뚱 우스꽝스러운 오리걸음에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다 우연히 시위대와 마주친 찰리 채플린. 경찰은 깃발 든 그를 시위 주동자로 체포한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웃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채플린의 생뚱맞은 표정에 나는 또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다.

    이 집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다. 수수깡으로 얼기설기 지은 집에 자식은 아홉이다. 집에서 자면 담장 밖으로 발이 튀어나오고, 일어서면 지붕으로 머리가 튀어나온다. 옷을 해 입히지 못해 커다란 천을 하나 가져다 머릿수대로 구멍만 내서는 함께 두르고 다닌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 웃긴다. 이건, <흥부전>이다.

    아버지가 ‘분홍색 야광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로’ ‘십수년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고, ‘나’는 상상한다. 아버지는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르네오 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간 것이고,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까지 한 파렴치한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십수년 만에 ‘낯선 억양의 인사를 건네며’ 부고(訃告) 한 장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그날 술에 취해 들어와 ‘나’에게 묻는다. “잘 썩고 있을까?” 절대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온다. 이건, 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다. 우스꽝스러운 걸음새와 생뚱맞은 표정의 찰리 채플린에게 웃듯, 아홉 명의 흥부 자식들이 커다란 천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에 웃듯, 이번엔 김애란의 생뚱맞은 문장에 웃는다.


    ...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나를 낳았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나를 낳았을 때도 뛰어오지 않은 사람이었다. (중략)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렇게 느렸던 아버지가 단 한번, 세상에 온힘을 다해 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아버지는 어머니가 올라온 그날부터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피에 좋아하는 처녀와 한방에서 떨어져 잤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버지의 애원과 짜증과 허세는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아버지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날만은 ‘평생 이 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허락했다. 단, 지금 당장 피임약을 사와야만 한 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고. / 아버지가 뛴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향해 뛰었다. ...

 (<달려라 아비>, 소설집 p12~p13)

    ... 어둠 속,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어머니한테 얼핏 담배냄새가 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골이 나서 ‘아주 나쁜 엄마군!’이라고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주 긴 고요가, 어머니의 숨소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작게 움츠러든 몸을 더욱 안으로 말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무엇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잘 썩고 있을까?” ...

 (<달려라 아비>, 소설집 p27~p28)


     누군가 이 웃음과 재미를 만들어내는 김애란을 두고 ‘긍정의 힘’을 가졌다거나 ‘낙천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혹자는 ‘부정의 긍정’이라는 조금 어려운 말로도 설명하고, 심지어 ‘화해’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김애란을 두고 부정적이나 긍정적이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 더 가깝게 서있다고 하겠다. 김애란이 소설을 통해 만들어내는 웃음과 재미는 ‘파토스(phtaos)’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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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서울 낙산



    문학에서 파토스적인 웃음은 약자가 고통을 겪으면서 발생한다. 모던 타임즈의 챨리 채플린이나 흥부와 그의 가족들, 혹은 <달려라 아비>의 ‘나’와 ‘어머니’나 모두 강자가 아니라 약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김애란의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 또한 택시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홀어머니와 그 딸(달려라 아비), 옥탑방에 사는 가족(스카이콩콩), 불만증에 시달리는 ‘그녀’(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공원에 버려진 아이(사랑의 인사), 홀아버지와 사는 가난한 소년(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혼자 사는 여자(나는 편의점에 간다), 월세 쪽방에 사는 여자(노크하지 않는 집) 등으로 모두 약자, 혹은 소외 계층에 속한다. <모던 타임즈>의 챨리 채플린이 세상과 화해한 것이 아니듯, <흥부>가 낙천적인 것이 아니듯, 김애란 또한 긍정적이라거나 혹은 낙천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애란은 다만 그들을 어떤 형식을 통해서든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소외계층 주인공들이 (소설 속에서)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소외를 만들어내는 환경이나 적대 세력과 투쟁하기(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파토스적 효과를 연출하며 우회하기(김려령 소설 <<완득이>>) (3)소외를 만들어내는 환경과 세력에 야합하기(전광용의 단편소설 <꺼삐딴리>). (1)의 경우 소설은 이른바 ‘비극’을 연출하며 ‘눈물’을, (2)의 경우 ‘재미’를, (3)의 경우 풍자(諷刺, satire)2)를 만들어내게 된다. 김애란의 소설은? 맞다. (2)에 해당한다. 김애란은 소외의 고통을 파토스적인 웃음과 재미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재미있다.


    ... 미아보호소 안은 훌쩍이고 칭얼대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우는 아이들 사이를 가까스로 헤쳐나간 끝에 나는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여직원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최대한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헛기침을 한 뒤 한번 더 정중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

 (<사랑의 인사>, 소설집 p146)

    ... “비싼 거다. 많이 먹어라.” / 냄비를 비울 때까지 우리는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려가며 복어를 뜯었다. (중략) “복어는 말이다.” / 아버지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 “.......” / “ 그 독은 굉장히 무서운데 가열하거나 햇볕을 쬐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복어를 먹으면 짧게는 몇 초, 길게는 하루 만에 죽을 수 있다.” / 나는 후식으로 나온 야쿠르트 꽁무니를 빨며 아버지를 멀뚱 쳐다봤다. / “그래서요?” / 아버지가 말했다. / “너는 오늘밤 자면 안 된다. 자면 죽는다.” / 짧은 정적이 흘렀다. / “뭐라구요?” / “죽는다고.” /  나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요?” / “나는 어른이라 괜찮다.” / 나는 몸을 꼰 채 식탁 위에 수줍게 서 있는 아버지의 야쿠르트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주방에 커피를 시켰다. / “근데 왜 나한테 이걸 먹였어요?” / 아버지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 “네가.....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어릴 때 이걸 먹고 견뎌서 살아남았다.” / “정말이요?” / “그럼.” / 아버지는 덧붙여 말했다. / “옆집 준구네 삼촌도 ......이걸 먹고 죽었다.” (중략) “아버지, 전 이제 어떡하죠?” / 아버지가 말했다. / “너는 오늘밤 자면 안 된다. 자면 죽는다.”  ...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소설집 p167)


     왜, 김애란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재미있게’ 말하는가? 즉, 왜 (1), (3)의 형식이 아니라 (2)인가?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체념인가, 아니면 자조인가. 혹은 문제를 현상 그대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것인가. 문제에 대항할 상대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몰라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건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며 설령 안다고 해도 의미 없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김애란은 파토스적인 웃음과 재미를 만들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이든 (2)든, 혹은 (3)의 형식을 취하든 어느 쪽이든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문학은, 조짐과 징후를 포착해 전하는 의사소통이자 한 시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지 진단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

(황지우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31p)



각주)-----------------

1) 파토스(pathos)는 '일시적인 격정이나 열정, 또는 예술에 있어서의 주관적/감정적 요소'를 뜻한다. 사전적 어의로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말하며, 애상감, 비애감의 뜻을 가지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특정한 시대·지역·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적 원칙이나 도덕적 규범을 지칭하는 에토스(ethos)와 대립하는 말이다.

 2) 풍자(諷刺, satire)는 개인·사회·정치 등의 악덕·모순·부조리·허세 등을 비판적 또는 조소적으로 빈정대는 표현기법이다. 어원은 일반적으로 <가득히 담긴 접시>라는 뜻의 라틴어 lanx satura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뒤에<혼합물>,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조롱하기 위해 각각 다른 주제를 잡다하게 다룬 것>을 뜻하게 되었다. 풍자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비평적 태도를 취하므로 아이러니와 비슷하지만 아이러니보다는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 의도를 지닌다. 또한 대상의 약점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직접적인 공격을 피하고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2010/05/15 01:33 2010/05/1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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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고독한 연대기 

- 하진1)의 소설 <기다림(Wating)>(시공사, 1999)과 <광인(The Crazed)>(시공사, 2007) -


이우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하진의 소설, <광인(The Crazed)>(시공사, 2007)과 <기다림(Wating)>(시공사, 1999)



기다림 뒤에 ‘더는 없다’_ <기다림>(시공사, 1999)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강변역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 사랑이 버스를 타고 도착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하진은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균형감각과 예술성과 절제미, 서정성까지 갖춘 필체로 ‘아니다’라고 말한다. 혹은 니체가 ‘행위자란 행위에 덧붙여진 단순한 상상적 허구일 뿐이며, 행위가 전부인 것이다’ 2)라고 했듯 ‘삶의 의미는 현재형이니 미래를 꿈꾸지 마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혹은, ‘사랑보다는 편안함을 택하겠다’는 린의 말처럼 그저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왜 그렇게 ‘목 메어 우는가’3)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미국 문단에서 ‘이 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Realist)’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작가 하진이다. 리얼리스트. 스토리에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실재하는 그대로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 리얼리스트가 '있는 그대로’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서술해 나간 <기다림>의 줄거리는 단 석 자, ‘기다림’이다. 작가 하진의 뛰어난 문체를 빼고 보면 이 소설은 끝날 것 같지 않은 기다림만 남는다. 소설의 주인공 ‘린’이나 그의 아내 ‘수위’, 유부남 린을 사랑하는 골드 미스 ‘만나’ 모두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심지어 소설이 끝나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기다림을 계속할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들이 하는 일이란 게 마냥 기다리는 일이라니!

     기다림은 이렇다. (1)도시의 골드미스 ‘만나’를 사랑하는 유부남 ‘린’은 촌스럽고 못생긴 그의 아내 ‘수위’와의 이혼을 기다린다. 이혼하기 위해 그는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고향을 방문하고, 해마다 법원에 가지만 늘 실패한다. (2)‘만나’가 기다리는 것은 린이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는 것이다. ‘린’이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이혼에 성공했는지 늘 궁금해 한다. (3)린의 촌스럽고 못생긴 아내 수위는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을 드러내지 않는다. 수위의 기다림은 침묵이다. 원해서 한 결혼은 아니지만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셨고 딸 ‘화’를 잘 기른다.

     아내 수위와의 이혼을 위해 몇 번이나 집을 찾지만 그때마다 에피소드를 만들며 실패했던 린이 중국 법에 따라 별거 후 17년이 지난 후에야 수위와 이혼하고 만나와 결혼하면서 그 모든 기다림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니었다! 기다림은 다시 반복하고 변조된다. (4)린과 결혼하고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는 만나는 심장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녀는 이제 죽음을 기다린다. (5)만나의 요청으로 전처 수위를 만난 린은 울면서 수위에게 돌아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린은 이제 수위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6)돌아오겠다는 린을 반갑게 맞이하는 수위는 다시 린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는데 작가 하진은 소설을 끝낸다. 린이 수위에게 돌아가지 않은 채, 만나가 죽지 않은 채 이야기가 끝나고 주인공들은 그 상태로 소설 안에 갇힌다. 게다가 하진은 또 다른 기다림을 배치한다. (7)린과 만나의 딸 ‘화’는 애인과의 결혼을 기다린다. 딸 ‘화’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겠지만 앞선 세대 린과 만나처럼 연애와 결혼, 환상과 현실의 격차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다시 무엇인가를 기다릴 것이다. 앞선 세대와 같은 모양새로 사랑하고 기다리진 않겠지만 다른 이유, 다른 모양으로….

     ‘역사는 반복한다.’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사>를 쓴 투키디데스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후 가라타니 고진 또한 설령 ‘종언(終焉)’을 선언한다 하더라도 ‘종언이란 역사에 있어 반복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4)고 냉정하게 말했고, 현대철학의 거봉 마르크스도 역사는 반복하지만 변조한다고 말했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거쳐 양(量)에서 질(質)로 변형되며 변화를 산출한다. 정의 모순은 반을 산출하고 동일화되고, 부정은 다시 부정되어 또 다른 질의 변화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고 변조하면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삶을 영위해 왔다. 만약 이야기를 이어간다고 해도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다시 기다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하진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소설 속 인물들의 기다림을 종언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리얼(real)이다. 대체 리얼(real)이란 무엇인가. 리얼(real)을 ‘실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대체 무엇이 실재하고 어떤 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 참 리얼하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있는 것인가, 혹은 없는 것인가? 이미 눈치 챘겠지만 <기다림>은 삼각구도다. 얼마 전 종영된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김수현 극본, 정을영 연출)에 대입한다면, 세련되고 럭셔리한 외모의 ‘이화영(김희애 역)’은 ‘만나’, 착하고 천사 같은 아내 ‘김지수(배종옥 역)’는 ‘수위’, 궤도를 벗어나 두 여자 사이를 방황하는 ‘홍준표(김상종 역)’는 ‘린’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소설 <기다림>의 인물들과는 다르게 미워하고 분노하고 갈등한다. 이 삼각구도에서 절제와 기다림이 리얼인가, 아니면 갈등과 분노가 리얼인가. 혹은 소설 <기다림>이 리얼한가, 드마라 <내 남자의 여자>가 리얼한가.

    리얼리스트 작가 하진은 착했다. 착한 하진은 분노와 갈등과 배신이라는 극적인 요소를 빼고 위트와 해학이라는 다른 장치들을 스토리 속에 숨겼다. 이 장치는 자못 심각해질 수 있는 삼각구도를 갈등 없이 해결해 버리는 마력을 발휘했고 미움과 분노, 갈등라는 감정의 조울(躁鬱) 없이도 그의 소설은 재미있게 읽힌다.

     그런데, 읽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 인생이 뭐 별 것 있는가. 먹고(eat), 생존하고(survive), 재생산(re-produce)하는 것! 하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면 뒤에 더는 없다’는 니체의 말처럼 하진의 소설도 ‘기다림 뒤에도 더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리얼리스트는 ‘삶에 뭔가 있다’라는 망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여. 그게 다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아포리즘. 그렇게 마침내 리얼리즘은 니힐리즘(nihilist)5)과 만나고, 리얼리스트는 니힐리스트(nihilist)와 조우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뒷맛은 갑갑하다. <기다림(The Waiting)>은 저녁 거리의 한 모퉁이 앉아 ‘뭐, 그게 인생이지’를 중얼거리며 술 한 잔을 마시게 하거나 김행숙의 싯구처럼 “네 개의 발을 모두 들고 헬리콥터처럼 공중6)”에 뜨고 싶게 만든다. 정말 ‘그저 그런 것’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그런 것’이라는 사실(real)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가끔 미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Cogito ergo B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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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하회탈춤_중탈



무엇이 그를 미치게 하는가_ <광인(The Crazed)>(시공사, 2007)


    이 착한 리얼리스트가 세상에 쓴소리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그의 소설은 문예사조로 치면 ‘리얼리즘(realism)’이다. 실물(實物)을 뜻하는 라틴어 'realis'에 생각이나 관념의 뭉치를 뜻하는 ‘-ism’이라는 꼬리표를 단 것이다. 관념이나 상상에 대립되는 ‘리얼’로 그는 세상에 관념의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 그것도 1989년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났던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사태라는 참극을 이야기해야 하니 조심스러울 밖에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묘사하는 현실주의적인 문예사조인 리얼리즘으로, 관념적인 유형보다 구체성을 중시하며, 이상주의와 같이 선택적/수사적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를 추구하는 리얼리즘으로 ‘관념’을 이야기해야 하는 난감함이다. 하진은 그 이야기를 ‘광인’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다. 소설 <광인(The Crazed)>이다.

     소설 <기다림(The Waiting)>의 주인공들이 ‘사랑’에 몰입한다면 <광인(The Crazed)>의 주인공들은 <지적인 자유>에 몰입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 것도 없기는! 여기 사색과 문학의 즐거움이 있다.’ 적어도 샨닝 대학 중문학부의 ‘양 교수’에게는 그렇다. 그에게 있어 삶의 가치는 ‘먹고, 생존하고, 재생산’하는 것이라기보다 문학을 통해 삶을 조명하고 해석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돈이나 권력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는 무관심하지만 문학이란 범주 안에서만은 자유롭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자다.

     문제는 그런 그에게도 정치와 권력이라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는 ‘미쳤다’. ‘자유로운 문학은 없다. 단지 정치와 권력에 끌려 다니는 종에 불과하다’는 양 교수의 진술은 그를 미치게 했던 이유의 함축이자 이 소설의 핵심이고, 하진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정치와 권력에 끌려 다니는 종’으로서의 지식이라면 그것은 ‘지식 권력(savoir pouvoir)’7)이며 이를 거부하는 양 교수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란 뇌졸중이라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성을 이용하여 스스로 광인이 되는 것이었다. 양 교수가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천천히 알아 가는 양 교수의 제자 ‘완지안’. 그는 미치는 대신 어디론가 떠난다. 혹은 잠적한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쓰면서 ‘미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 자체도 하나의 광기일지도 모른다’는 파스칼의 말로 시작한다. 학생 식당의 ‘광인’은 권력 쪽에 썼다가 희생된 광인이며, 양 교수는 미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광인이다. 양 교수를 이용하는 권력의 하수인 ‘펭’은 권력의 기제 편에 선 광인이며 돈과 권력을 찾아 떠난 완지안의 애인 ‘메이메이’는 권력 기제를 받아들이는 자발적이고 소극적인 광인이다. <베이징 텐안먼 광장 인민운동>에 참가한 학생들은 권력 기제를 거부하는 적극적인 광인들이다.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광인, 하지 않더라도 광인이라면 이 세계에서는 온전하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이것도 ‘리얼’이다.

    그래서 마침내 하진이라는 리얼리스트는 푸코와 조우한다. 무엇이 그들을 미치게 하는가? 미셀 푸코식으로 말하면 그들이 정말 미친 것이 아니라 ‘권력이 미친 것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그의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이른바 ‘광인’의 역사와 사회체제를 정리하고 ‘생산적 권력’, ‘생체권력’, ‘지식권력’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인은 정상인과 구별되어 감금되거나 병자 취급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정상인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거리의 부랑자들은 예전에는 나병환자를 가두던 수용소에 감금되기 시작했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그들은 감금에서 해방되지만, 사회적 질서를 따르겠다는 전제하에서 풀러난다는 것이다. 양 교수처럼 책임지길 거부하는 자는 감금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쳐 한때는 인간의 내면에 들어 있는 어떤 특징으로 간주되던 유별난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광기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둬두어야 할 대상, 치료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의사’로부터 치료받아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 광인과 정상인을 가르는 구분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고, 그렇게 병정신리학자와 권력은 밀착되어진다. 결국 지식과 권력이 뗄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 푸코는 이와 같이 권력에 봉사하는 지식을 ‘지식 권력(savoir pouvoir)'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미셀 푸코가 말하는 권력이란 국가권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인과 정상,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선을 만들고 유지하는 힘’을 말하는 것으로 ‘리얼’하게 표현하자면 ‘권위’라는 개념에 가깝다. 양 교수에게 어떤 모종의 권력에 순종하라고 음모를 꾸미는 ‘펭’은 하나의 권력이다. 펭의 권력은 국가권력(미국 출장비 문제)이기도 하고 지위(地位)를 이용한 개인 권력(추천서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권력은 우리 삶의 곳곳에 흩어져 배치되어 있다. 감옥은 물론이고 병원, 학교, 가정, 직장, 군대, 심지어 마켓 등 모든 근대적인 사회 체제에서 영역은 모두 권력이며 관습이나 고착화된 관념 또한 권력이다. 학교가 진정한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지식 상업을 통하여 사회 유지에 공헌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학교 교육의 목적이 사회화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나 권력 기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슬라보에 지젝은 화장실에서조차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선언했다.8)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정치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념과 관습에 가까운 개념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러므로, 그래서 누구나 이데올로기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하진은 양 교수를 병사(病死)케 하고 완지안을 이름 모를 곳으로 떠나보내며 소설을 끝낸다. 독자에게 생각해 보라는 배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완지안의 이야기를 이어가봤자 결론은 같을 것이라는 하진식 ‘리얼’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소설 <기다림>에서 주인공들이 기다림을 반복하듯이 떠난 완지안은 ‘지식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해묵은 담론과 만나고 스승 양 교수의 절망감을 다시 반복하고 변조할 것이다.

     동일자가 알지 못하도록 변장하고――머리를 깎고 옷을 바꿔 입고――어디론가 떠나는 타자(他者) 완지안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결국 하진식 반복과 변조의 끝, 그 결론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완지안은, 아니 우리는 이 담론의 해결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인가, 혹은 짜라투스트라처럼 체념이라는 깊은 절망을 안고 이 시대를 떠돌게 될 것인가?



각주)-----------------

1)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소설가. 본명은 진쉐페이(金雪飛)이며 하진은 필명 진하(金哈)의 영어 표기다. 1956년 2월 21일에 중국의 헤이룽장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그도 문화 혁명기인 1969년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헤이룽장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를, 산둥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미국에서 톈안먼 사태를 접한 그는 미국에 남기로 결심하고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96년 <Oceans of Words>로 펜 헤밍웨이 문학상을, 1997년 <Under the Red Flag>로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문학상을 받아 미국문학의 흐름에 당당히 합류하였고, 1999년에 출간된 <기다림 Waiting>으로 그해 전미 도서상과 2000년 펜 포크너 문학상을 수상,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르며 미국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2004년에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War Trash》로 펜 포크너 문학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3)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중에서

4)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도서출판비, 2008)

5) 니힐리즘(Nihilism, 虛無主義)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음산한 허무(니힐)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사상적 입장이다. 우주·인생의 진실을 무(無)에서 보려고 하는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나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사상과 닿아 있다. 니힐리즘에서 니힐(nihil) 즉 무(無)가 뜻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더는 없는 것’이다.

6) 김행숙 시집 <<이별의 능력>>(문학과 지성사, 2007) 중 시 <착한 개> 중에서

7) 푸코(Michel Foucault, 1926-84)가 정립한 개념.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을 통하여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선을 유지하려는 힘을 ‘권력’이라 해석하고, 지식이 그 경계선 유지에 사용되면 ‘지식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정신병리학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과학적인 준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냐, 없느냐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식과 권력이 뗄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라는 의미에서 푸코는 ‘지식권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8)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



 

2010/04/29 18:47 2010/04/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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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진전 <꿈꾸는 카메라 in Zambia>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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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에 설치된 <꿈의 나무>에 걸린 잠비아 아이들의 사진. (Canon EOS D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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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카메라 in Zambia 사진전>은 잠비아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환경>, <편견>, <꿈>의 세 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Canon EOS 5D)



    미셀 푸코는 ‘시선(視線)은 타자와의 관계이고, 시선은 권력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푸코에게 권력은 정치 혹은 경제적 권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권력 관계이기도 하면서 개인적 사이의 관계망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푸코에게 있어 바라보는 자는 바라봄을 당하는 자보다 더 권력적이다. 운전자에게 있어 도로에 설치된 속도위반 감시 카메라는 권력적이며, 수험생들의 등 뒤에서 서서 바라보는 수험관의 시선은 권력적이다.

    사진은 어떨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피사체를 바라보고 주체를 대상화하는 일이다.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사이에는 시선의 마주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시선의 흐름만이 존재한다. 카메라를 가진 자는 찍고, 대상은 찍힌다. 만약 찍는 자가 어떤 의도를 만들기 위하여 대상을 포착한다면 대상은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찍는 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

     전쟁 사진이라 하더라도 찍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승리의 환희가 담기도 하고 폭력이 담기기도 하며, 때로 사랑과 아픔이 담기기도 한다. 이라크 전쟁 때 CNN이 전하는 사진과 알지자리 방송이 전하는 사진은 판이하게 달랐다. 사회의 이념이 아니라 개인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자는 냉혹하게, 어떤 자는 따뜻하게.... 사진 작가는 같은 순간이라고 해도 의도에 따라 실제보다 밝고 화사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실제보다 더 어둡게 포착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사진 작가는 갖가지 효과를 갖는 필터와 여러 장비를 사용한다. 좋은 의도이든 나쁜 의도이든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설령, 어떤 의도를 갖고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진에는 대상의 시선이 아니라 촬영자의 시선이 담기기 마련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모든 사람은 이데올로그’라고 선언했다. 이데올로기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행위로 실천되며 어느 누구나 자기가 속한 영역의 이데올로기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이 푸코가 말한 ‘권력’을 담고 싶은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진에는 대상의 시선이 아니라 촬영자의 시선이 담기며, 그 시선에는 어떤 이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 또한 권력적일 수 있다.

     만약, ‘찍하는 자’에게 사진기를 넘기면 어떨까. 그런 이색 사진전이 열렸다. 2010년 4월 7일에서 13일까지 평화화랑에서 열렸던 <꿈꾸는 카메라 in Zambia 사진전>이다. 2009년 10월 차풍 신부(의정부교구 5·6지구 청소년사목 전담)와 사진가 김영중 씨 등 8명이 잠비아 ‘솔웨지 메하바’로 가 잠비아의 아이들에게 후원자들이 모아준 일회용 사진기 2,000대를 선물했고, 잠비아 아이들이 일회용 사진기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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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카메라 in Zambia 사진전

▲ <꿈꾸는 카메라 in Zambia 사진전>은 잠비아 아이들이 일회용 카메라로 직접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이 시선은 맑고 밝다.



    카메라를 받은 아이들은 그들의 시선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가족 사진부터 자연 풍경까지 2,000명 아이들의 시선이 담긴 카메라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5만장으로 인화되었다. <꿈꾸는 카메라 in Zambia>는 이렇게 인화된 잠비아 아이들의 사진을 모아 마련한 사진전시회다.

     ‘솔웨지 메하바’는 30년 전 UN이 조성한 난민 거주지역이다. 콩고, 르완다, 짐바브웨 등 잠비아 주변국에서 내전을 피해 옮겨온 난민들이 모여 산다. 제대로 된 학교 시설은 물론 전기, 도로, 상하수도 시설도 거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전시실에서 만났던 김영중 사진가는 ‘그들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부족할 뿐이다’라는 말로 사진을 소개했다. 환하게 웃는 사진을 가리키며 '부족하다고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라'는 말은 이번 사진전의 주제가 왜 <환경>, <편견>, <꿈>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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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도 400 27컷 필름. 잠비아 아이들이 사용했던 일회용 사진기를 인화하고 그 필름을 모아 두었다.(Canon EOS 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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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에서 만난 김영중 사진가. 관람객들에게 잠비아 아이들의 사진을 설명해 주고 있다.(Canon EOS 5D)



     감도 400의 굵은 입자가 만들어 내는 아이들의 시선은 밝고 맑았다. 이 시선은 전혀 ‘권력적’이지 않다. 이 시선은 추한 것을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것을 추하게 만들지 않았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웃음을 슬픔으로, 슬픔을 웃음으로 가리려고 하지 않았고 행복과 불행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 시선 앞에서 누가 더 행복하다고, 혹은 누가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 꿈꾸는 카메라 im Zambia 웹 사이트 : http://www.cumca.co.kr







2010/04/12 06:58 2010/04/1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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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책을 읽고, 슬퍼하다
- 전체주의 Vs 허드 -
- 한나 아렌트 Vs 마크 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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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로부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마크 얼스 저, 강유리 옮김, 쌤앤파커스 2009)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1) 지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1906년 출생한 독일인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친위대의 중간 관리자였으며 유태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2)의 집행자였다. 나치 정권 하에서 승진하여 1941년 게슈타포의 유태인 문제 담당부서인 IV B4의 책임자로 임명되고, 1942년에는 사망자가 4백만에서 6백만으로 추정되는 <유태인 절멸 계획>의 수송 담당 책임자가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첩보부에 의해 1961년 5월 11일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 섰다. 그는 1961년 12월 15일 금요일 아침 9시에 사형 선고를 받고 1962년 5월 31일 자정에 교수형 당한다.

    여자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정치철학자’로 불리는 유대인 출신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 나치의 유대인 학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전격 체포돼 이스라엘에서 전범재판을 받게 되자 아렌트는 예정된 대학 강의도 취소하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법정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만났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그는 63년 2월부터 5차례 기사를 연재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그 기사들을 엮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르헨티나로 피신해 1945년에서 1946년까지 있었던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피한 아이히만이 1961년 이스라엘 첩보부에 의해 체포되어 자신이 학살했던 유대인의 땅 한복판에서 재판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이 ‘희대의 악마’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기자들은 앞 다투어 이 ‘악마’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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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로부터) 홀로코스트,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재판정의 아이히만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기자들은 모두 흥미를 잃고 돌아섰다. 그에겐 어떤 특징적인 면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당의 강령도 알지 못했고 히틀러의 <나의 전쟁>도 읽지 않았다. 아이와 아내가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고,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군인이었다. 그저 명령 받은 대로 유대인을 수용소에 분배하는 일을 착실히 수행했다. 그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꿈을 위하여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독일인이었지만 그는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 운동인 시온주의(Zionism)3)에 열렬히 공감했다.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실천했다는 점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이히만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양심은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정확히 행동에 옮’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피고석에서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아렌트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양심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여건에 제약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히만은 난데없이 나타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규칙과 명령, ‘주어진 이상’에 맞추려고 노력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하여 ‘악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악의 평범성’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 당시 독일 상황에서 충실한 가장으로, 그리고 독일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 결과는 유대인 6백만여 명을 학살하는 반인륜적인 악행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당시 아렌트 기사의 파장은 엄청났다.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을 학살한 ‘악마’를 변호하는 듯한 내용을 보고 유대인들은 ‘한나 아렌트’를 ‘반역자’라고 칭하기도 했으며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렌트는 책을 발간하고 난 후에는 숨어살면서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이히만과 학살 현장에서 핍박을 받던 유대인 한나 아렌트 모두가 유대인이 ‘적’이 되었고, 한나 아렌트는 당시 독일에서는 나치를 피해 살아야 했듯 책을 발간하고 난 후 같은 동족인 유대인을 피해 살아야 했다.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평범’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자 ‘희대의 악마’로 만들고, 한나 아렌트를 ‘동족의 배반자’로 만든 ‘사회적 여건’ 중 가장 유효한 사회적 여건을 들라고 한다면 ‘전체주의’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 of Totalitarianism)>(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에서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가장 극단적이고도 집단적인 형태가 전체주의’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유대인으로 나치 전체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에 대해 가장 먼저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던 저자의 첫 저서이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희대의 악마’로 만든 ‘사회적 여건’을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당시 ‘나치즘’, 그 아이히만을 이해했던 아렌트를 동족을 등진 ‘배반자’로 만든 것은 ‘시오니즘’이다.

     전체주의란 ‘국가가 개인에 대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를 말한다. 20세기 전체주의에 나타난 전체주의는 그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따라 우익(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좌익(스탈린주의 등)으로 양분할 수 있는데, 전체주의는 결국 인간 자유의 완전한 폐지를 욕망한다. 봉건적 계급사회의 붕괴와 신분 해방으로 탄생한 ‘대중’, 개성을 상실한 대중 집단, 정치 집단에 의해 도구화ㆍ조직화하면서 탄생하는 ‘폭민’,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생기는 경제권력도 전체주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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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팽창과 결집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서울 명동)


     ... 전체주의국가에서 선전과 폭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상보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 졌고 계속 주장되어 왔다. 선전 없는 폭력이 아무런 심리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듯이 폭력 없는 선전 또한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중략) 폭력이 단순한 외적 영향력이 아닌 내적 영향력까지 행사하고자 한다면, 즉 정부가 단순한 권력 이상을 원할 경우 폭력은 선전을 필요로 한다. (중략)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쓸만한 거짓말을 계속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폭력은 그 이상 중요한 요소이다. 전체주의 정부의 심리적 목표를 달성하고 난 이후에도 폭력은 계속 사용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처럼 폭력이 글에 달하면 선전은 사라진다. 나치 정권하에서의 독일에서도 선전은 허용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선전은 비전체주의적 세계를 다루기 위한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면, 폭력은 전체주의 정부의 본질 그 자체이다. ...

(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중에서 )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하는 전체주의 망령에 대항하는 부적, 다시 말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며 ‘개성’이다. 개인을 부정하고 전체라는 단위로 획일화시키는 것은 물리적이든 비물리적이든 폭력일 수밖에 없다. 한나 아렌트는 제레미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다수의 원칙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힘에 의하여 소수가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소수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마크 얼스 저, 강유리 옮김, 쌤앤파커스 2009)

   이 책을 엿보고 나는 ‘가축의 무리’가 되었다. 허드(Herd)는 가축의 떼나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마크 얼스의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강유리 옮김, 쌤앤파커스 2009)이란 이 책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사회적인 동물로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들과 상호작용하며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대중적인 행동이 어떻게 비즈니스와 연관되어 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자못 멋있는 말로 ‘선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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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무리(Herd)일 수 밖에 없는가? 비즈니스, 마케팅, 심지어 공공정책까지 무리(Herd)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서울 명동 )



   ... 인간은 하나의 군집, 즉 ‘허드(herd)’일 때 비로소 의미 있으며, 시장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 또한 제품이나 브랜드, 또는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무명씨들로 구성된 ‘허드’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허드 이론(herd theory)’은 뒷받침할 만한 증거 없이 대충 둘러대는 무책임한 주장이 결코 아니다. 의학과 행동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군집적 속성에 대한 심원한 진리가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비교적 새로운 학문에 해당하는 현대의 신경과학·경제물리학·진화심리학·네트워크 기하학을 통해, 우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 군집 동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즉 우리는 천성적으로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 능력을 타고났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의 결과가 오늘의 세상을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통찰이 대중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희망은 엄청나다. 비즈니스, 마케팅, 공공 정책… 그 어디에서든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우리 안에 잠재돼 있는 인간본성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면 ...

( 마크 얼스의 <허드,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 프롤로그 중에서 )



     가축 떼와 같이 군집을 이루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은 하나의 군집, 즉 허드(herd)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이 명제와 ‘인간의 군집적 속성에 대한 심원한 진리가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는 단언 앞에서 슬펐다. 자아와 비아로 무장한, ‘자연과학이 인류를 구출했다’고 말하는 듯한, 근대성이 풍부한 이 명제에 책을 덮었고 읽지 못했다. 전체가 아니라 개별성에 주목하는 한나 아렌트와 개별성을 무리(Herd)로 묶으려는 마크 얼스…. 마크 얼스의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우리 안에 잠재돼 있는 인간본성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문장과 아렌트의 ‘선전은 비전체주의적 세계를 다루기 위한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문장이 묘하게 중첩되고 있었다.

     아, ‘나’는 가축 무리(herd)일 수밖에 없는가?






    -----------------
 
     1)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 1906년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유대인 철학사상가이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체주의에 대해 체계적으로 비판했다. 아렌트는 실존주의 철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의 개념에 대한 논문으로 192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1933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군에 체포되었다가 탈출하여 1933년 프랑스 파리로,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다. 이것이 아렌트가 순수 철학자에서 정치철학자로 변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아렌트는 나치에 대해 연구하여 1951년에 간행한 ‘전체주의 기원(The Origin of Totalitarianism)'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2) 홀로코스트(Holocaust) :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3) 시온주의(Zionism) :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운동. 유대 국가는 헤스, 핀스커, 헤르즐에 의해 구상되었고 그 꿈은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독일 사회주의자였던 헤스(Moses Hess 1812-1875)는 ‘로마와 예루살렘'(Rome and Jerusalem 1862)이라는 책에서 유대 국가의 정치적인 회복을 표명하였다. 그가 바란 유대 국가는 모세의 법과 사회주의가 조화된 형태였다.

      핀스커(Leo Pinsker 1821-1891)는 헤스의 책을 읽고 그의 견해와 동조했으나 훨씬 극단적이었다.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데 이방인으로부터의 도움 받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시온주의의 본격적인 활동은 헤르즐(Theodor Herzl 1860-1904)에 의해 서서히 막이 오르게 된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종교적인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민족 의식은 없었다. 비엔나 신문사의 기자로 파리의 특파원이 된 헤르즐은 파리에 거주하면서 프랑스의 반 유대주의를 접하면서 유대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박애,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의 국가였던 프랑스에는 반 유대주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헤스의 책을 알지 못했던 헤르즐은 '유대 국가'(Der Judenstaat 1896)를 저술한다.

     유대인 문제는 오직 유대 국가 건설만으로 해결된다는 이 소책자는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제안으로 전 유럽의 유대인 대표가 참가한 제 1회 시온주의 총회가 1897년 바젤에서 개최되었다. 이 총회에는 모두 2백여 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는데 헤르즐의 지도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회 시온주의 총회에서는 '국제법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건설을 시온주의의 목표'로 결정하였다. 헤르즐은 정치적인 외교 활동을 통하여 유대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고 터키와 영국을 대상으로 한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러한 방침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와 유럽의 유대인이 겪는 고난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 주기 위하여 영국이 제안한 '우간다에 유대 국가 건설'안을 받아들여, 제 5회 시온주의 총회에 제출했으나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 1904년 그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그리고 며칠 후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897년 1회 시온주의 총회가 끝난 뒤 9월의 그의 일기에는 "나는 여기에 유대 국가를 세웠다. 만일 내가 이 사실을 크게 소리친다면 모든 세상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5년 적어도 50년 안에 모든 이들이 확인하게 될 것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2010/02/10 22:52 2010/02/10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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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전통문화 탐방 ]


 

나무, 그리고 바람의 은유
                     도예/옹기    한지/한지공예/목공예                      판소리/가야금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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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rt is but imitation of nature
 - Lucius Annaeus Seneca -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라는 말은 라틴어 ‘아르스(Ars)’와 그리스어 ‘테크네(Teche)’에서 유래했다. ‘아르스’는 예술이나 학술을 뜻했고, ‘테크네’는 기술, 즉 물건이나 집, 선박 따위를 만드는 기술 또는 땅을 측량하거나 청중을 사로잡는 기술을 뜻한다. 이 개념은 로마 시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의 여명인 르네상스 때까지 이어졌다. 오랫동안 가하학자의 공식이 화가의 그림과 동등한 예술적 가치로 연결되었고 건축가가 곧 예술가였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詩)가 기술(Techne, 테크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뮤즈(음악의 신)의 영감에서 나온다 하여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고대 소피스트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상상력만 갖고 하는 일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서양 근대철학이 생성되기 이전의 예술(Art)은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서양식 역사 구분의 ‘근대’는 인간이 자연에서 독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주체를 대상과 독립시키고, 자아와 비아, 과학과 예술을 각각의 영역으로 독립시킨 근대철학이 만들어낸 인식의 결과였다. 이른바 과학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근대적 인식은 마침내 몸과 정신, 과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을 제각기 독자 영역으로 독립시켰고 여기에 경제 시스템이 접목되어 사람들의 삶을 콘베어벨트화했다. 삶이 행복한가, 혹은 행복하지 않은가의 의심 없이 진행된 이 ‘홈 패인 공간1)’ 속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립되는 개별성으로 남았고, 예술은 예술로, 기술은 기술로만 남았다.


우리 모두 꽃이다


     탐방단은 화가 남천 송수남2)이 선물로 내어준 자신의 저서 <<우리는 모두 행복한 꽃이다>>(이야기꽃, 2009)를 읽으며 길을 떠났다. ‘우리 모두 꽃을 닮았다’가 아니라 ‘꽃이다’라고 확정해 놓고 송수남 화백은 시치미를 떼듯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졸고 있다. 버스 안에는 작은 꽃, 큰 꽃, 파란 꽃, 노란 꽃…. 꽃들로 가득하다. 꽃들은 책을 읽거나 졸고 있거나, 혹은 김 서린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거나 각양각색으로 피어 있다. 한 차례 폭설이 지나간 후라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앞 도로에는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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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눈길을 걸어 경기도 이천 백사면의 남용호 작가를 만나러 가는 탐방단. (우) 일행과 함께한 송수남 화백. 툭툭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그의 말을 뒤집어 보면 여러 가지 의미들이 숨어 있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Tokina 80-200mm )


      사람을 두고 ‘꽃’이라니! 이것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탈근대적 예술 원리로서의 ‘미메시스(mimesis)’다. 얼마 전 영화배우 박중훈이 방송에 나와 미국의 연기학교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파도'를 연기하라는 과제를 냈고, 박중훈은 손을 움직여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그렸다. 어떤 학생은 앞으로 달려 나오더니 이리저리 벽에 부딪히고 넘어졌다. 그 학생은 직접 파도가 되어 몸 전체로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연기했던 것이다. 손을 흔들며 파도를 그린 것을 근대미학에서 말하는 재현으로서의 ‘모방(이미테이토, imitatio)’이라면, 온 몸으로 파도를 연기하며 자신이 파도가 된 것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탈근대적 예술 원리로서의 ‘미메시스(mimesis)’다. 흔히 미메시스를 '모방'이라고 번역하지만 미메시스 개념은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표상하기' 혹은 '인식론적 재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카멜레온이 주위 환경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닮기'다. 근대의 회화에서 말하는 주체에 의한 객체의 묘사가 아니라,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없는 존재론적 연결을 말하고 있다.

     오늘 탐방단이 찾아가는 우리 전통문화가 ‘자연의 미메시스(mimesis)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는 자연의 원리를 재현하면서도 현대의 기술문명처럼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연과 가까워지고 닮아간다. 자연에서는 돌이 바람에 으스러져 흙이 되고, 흙이 나무를 기르고,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도공은 흙을 구워서 돌로 되돌리고, 한지장은 나무를 쪼개 흙으로 되돌리고, 악기공은 나무를 깎고, 소리꾼은 성대(聲帶)에 공기를 넣고 빼며 소리를 낸다. 자연의 순리(順理)를 거스르는 역리(逆理)지만 도공은 흙을 닮아가고, 한지장과 악공은 나무를, 소리꾼은 바람을 닮는다. 나(주체)와 너(대상), 자아와 비아,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예술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닮아가면서 통합된다. 오늘 탐방단이 찾아가는 것이 이것이다. ‘흙’과 ‘나무’, 그리고 ‘바람’의 ‘미메시스(mimesis)….



흙_ 도예가 남용호 공방3)


     일행이 눈길을 걸어가 만난 남용호 작가가 불쑥 던진 말 또한 ‘내가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가 나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바람을 흔든다는 역리(逆理)이자, 기막힌 미메시스(mimesis)다. 돌이 바람에 흩어져 흙이 되었는데, 그 흙을 반죽하고 구워내어 다시 돌로 되돌리겠다는 도예는 자연의 순리(順理)를 거슬러 보겠다는 것이어서 역리(逆理)이고, 그렇게 만든 돌이 도리어 자신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존재론적 닮아가기, 즉 ‘미메시스’다.

     흙을 반죽하고 물레 위에 올려 형태를 만들고, 가마로 구워내 다시 돌로 되돌리겠다는 도예, 그것도 천년 세월이 지나도 색을 잃지 않는 청자나 백자처럼 그릇 하나로 자연을 거슬러 보겠다는 역리인 만큼 그 일이 편하지 않다. 작업의 시작은 흙을 구하고 그 흙을 반죽하는 것. ‘요즘은 기계로 반죽하니 많이 편해졌지만 흙을 밟을 때는 허벅지가 씨름꾼 못지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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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자신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가 나를 만든다'는 남용호 작가는 흙을 닮아가고 있었다. (우) 작업장에 말라가고 있는 남용호 작가의 도예 작품.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물레를 돌리며 ‘물레일은 중심을 맞추는데서 시작하고 중심에서 끝난다’며 쉬운 척하던 그가 그릇의 두께가 고르지 않다며 탐방단 앞에서 채 마르지 않은 그릇을 반으로 잘라버리는 바람에 탐방단은 연신 ‘아까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까워하지 말라’며 웃던 작가는 옆에 놓인 반쯤 마른 그릇을 엎어 놓고 굽을 만들기 시작했다. 굽은 서양의 그릇에는 없는 극히 동양적인 형태. 작가는 굽을 만들며 그릇을 두들기고, 그릇은 바람을 흔들며 소리를 들려준다. 이 소리는 그릇의 두께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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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삶이 그렇듯 ‘중심만 맞추면 되는 일’이라며 일행 앞에서 물레일을 보여주는 남용호 작가. (우) ‘굽이 두터우면 무게가 달라진다’며 탐방단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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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그릇을 잘라버린 남용호 작가. 탐방단은 ‘아까워’ 소리를 질렀다. (우) 공방 2층에 마련된 전시실. 작가의 표정이 따뜻하고 아늑한 흙을 닮아 있다.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흙을 다시 돌로 되돌리는 이 역리자(逆理者)에게 있어 흙은 노동의 원인이자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가 도자기를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삶을 완성하니 작가는 자연스럽게 흙을 닮아간다. 봄이면 노란 산수유가 지천이라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그의 집 앞에는 어른 허리께 정도 오는 연못이 눈에 덮여 있다. 직접 판 이 연못에 6월에서 9월 사이 목련이 피어나면 배를 띄워 논다는 남용호 작가. 흙일을 하며 자연을 역리하는 그에게 물은 순리를 가르쳐주는 편안함인가보다. 가마에 불을 넣을 때 찾아와 장작 하나씩을 넣어달라던 그의 얼굴은 편안하고 따뜻한 흙과 닮아 있다.



나무_ 여주 한지체험학교4)


      종이를 만든다는 것은 나무를 쪼개어 얇게 펴는 일이다. 흙은 나무를 기르고 나무는 쓰러져 흙이 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자연의 시간을 거꾸로 함축한 역리가 종이(紙)다. 역리니 종이를 만드는 일 또한 편치 않다. 그것도 우리 전통의 공법대로 한지를 만드는 일이다 보니 일일이 수작업 할 수밖에 없고 닥나무를 고집해야 한다. 낫 한 자루를 들고 닥나무를 베면서 노동이 시작되어 찌고 벗기고, 죽을 만들고, 종이를 뜨고 말리며 장인은 늙어간다. 닥나무 찌기, 껍질 벗기기, 말리고 흑피 벗기기, 잿물 내리기, 닥죽 만들기, 흐르는 물에 씻기, 티 고르고 두들기기, 황촉규(풀) 혼합하기, 종이 뜨기, 물 빼기, 말리기, 다듬기 등 그 과정만 해도 길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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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경기도 여주 한지체험학교를 방문한 탐방단이 한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우) 한지장 이근성이 우리 전통의 외발뜨기로 한지를 뜨고 있다. 이렇게 뜬 얇은 한지는 달빛처럼 맑고 투명하지만 천년을 갈 정도로 질기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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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한지체험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삼지 닥나무. 눈 위에 맺은 꽃봉오리가 인상적이다. (우) 한지 제작 공정을 체험하고 있는 탐방단.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Tamron 17-35mm )


     그래서인가. 50여년을 우리 전통의 외발뜨기로 살아온 한지장 이근성의 종이 뜨는 모습은 흡사 세월을 뜨고 있는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이 한지 이야기를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박중훈/강수연 주연)로 만들며, 종이 뜨는 모습을 ‘달빛을 길어 올린다’고 했으니 한지장은 정말 달빛을 얇게 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종이가 하루에 300여장. 실용을 기준 삼는 현대에서 이 나무의 역리는 효율적이지 않다. 천년을 가는 한지라 하더라도 가격에서 기계식 종이를 따를 수 없으니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최근 조선왕조실록을 복원할 계획으로 실록을 기록할 종이로 한지를 선택했으나 정부가 줄 수 있는 비용은 한지업체로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이것이 전통과 현대의 간격이고 고민거리다.

      한지는 닥나무의 미메시스다. 그래서 이 곳 여주한지체험학교의 흙은 닥나무를 키운다. 이미 3년 전부터 닥나무 및 삼지닥나무 재배단지를 조성했고 그 중 일부 수십만 그루를 이곳 체험학교에 분재해 놓았다. 엄동설한 눈 위에서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는 어린 삼지닥나무가 인상 깊다. 삼지닥나무는, 줄기와 가지의 인피섬유(靭皮纖維)가 강인하고 탄력성이 크며, 광택이 나 고급지의 원료가 된다. 가을에 가지를 베어내어 삶아 껍질을 벗기고 이것을 두들겨서 섬유를 풀어 종이를 뜨는 원료로 사용한다. 섬유의 길이가 일반 닥나무보다 짧아 가공이 쉽고, 종이는 질이 좋고 튼튼하며 충해(蟲害)도 잘 받지 않아 고급 용지로 사용된다고 한다.

     닥나무는 바람을 맞아야 살 수 있다. 바람의 온도차가 클수록 더욱 좋다. 한 여름 뜨거운 바람에 흔들리다가 겨울 찬 바람을 맞아야 질기고 튼튼한 섬유를 얻을 수 있고 그 나무로 만든 종이라야 천년 간다는 한지를 만들 수 있다. ‘땅은 우리에게 준 하늘의 선물. 사계절이 뚜렷하다 보니 섬유가 질기고 그 위에 한지공의 노동이 더해져 세계 최고의 종이가 만들어진다’는 설명에 바람에 흔들리듯 꽃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_ 남도 명창 왕기석5)


     판소리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의 미메시스다. 삼합, 가양주 등 전주 한식상을 앞에 둔 일행에게 예정에도 없던 바람 소리가 들렸다. 대숲에 바람 불듯 성대(聲帶)에 바람을 넣고 빼며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벼락 치는 남도명창 왕기석의 소리 <사철가>, <사랑가>, <심청가>는 북 장단에 휘몰아치다가 늘어지고 늘어지다가 잠겼다.

     “...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綠陰芳草) 승화시(勝花時)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寒露霜風)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黃菊丹楓)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 오면 낙목한천(落木寒天)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설백(月白雪白) 천지백(天地白)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 (후략) ...”

( 단가 <사철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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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갑자기 벌어진 소리판. 왕기석 명창이 심청가를 창하고 있다. (우) 사철가로 명창의 소리에 답하고 있는 탐방단 김지은.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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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행이 머물렀던 전주한옥마을 세화관. 그 한켠에 잊혀져가는 전통 생활용품들이 걸려 있어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심청가를 부르다가 목이 마른 명창이 은근슬쩍 ‘심봉사 물을 벌컥 마시며’라는 아니리(판소리에서 이야기하듯 소리하는 부분)를 넣고 발림(몸짓)하듯 실제 물을 마시는 그 현장성은 판소리의 특징이다. 최근 우리 가요계에 소개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랩(Rap)은 우리 판소리와 닮아 있다. 랩의 본류는 자메이카. 자메이카의 흑인들이 힙합 리듬과 비트에 춤을 추고 노래나 시를 읊조린 것이 랩이다. 랩은 목적은 ‘내가 남에게 무엇인가 전하고 표현하는 것’이어서 규정된 형식이나 룰이 없고 판소리처럼 현장성이 강하다. 랩은 하층민이나 빈민 흑인들이 주로 불렀고 판소리 또한 마당이나 길에서 모여 판을 부르며 부르던 서민의 노래였다. 서양의 판소리가 랩이며, 랩의 한국판이 판소리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랩은 알지만, 판소리는 모른다. ‘소리가 판을 만나면 판소리고, 놀이가 판을 만나면 놀이판이 되는 것인데, 무대가 아니라 지금처럼 열린 자리에서 함께 소리하는 것이 바로 판소리’라며 ‘자꾸 그 판이 없어져 안타깝다’는 왕기석 명창의 말에는 아쉬움이 가득 들어 있다. ‘판’은 현대 공연의 무대처럼 닫혀 있지 않다. 관객과 공연자가 구분되지 않고 함께 섞여 판이 벌어진다. 분명 공연을 하는 자와 관람을 하는 자가 따로 존재하지만, 굳이 공연자와 관람객을 나누지 않는다. 판소리의 특징 중 하나인 ‘아니리’도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하는 사람이 목이 마르면 슬쩍 아니리를 끼워 넣고 물을 마신다. 노래라는 장르와 노래 부르는 자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판소리나 <사철가>와 같은 단가는 지역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이본들이 존재한다. 같은 바람이지만 대나무 숲에 부는 바람과 자작나무 숲에 부는 바람, 한옥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다르듯….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토막으로 끊어 <사랑가>를 따라 부르던 일행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감격에 휩싸였다. 스피커로 재현한 소리와 판에서 직접 듣는 소리의 깊이가 이렇게 다르다니! 명창 왕기석의 소리에 탐방객은 연신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넣었다. 명창의 소리에 탐방단 김지은이 다시 사철가로 답했다. 시김새(목청을 떨거나 음을 꺾는 소리)가 둔하지만 이 바람 소리 또한 시쳇말로 ‘엣지’ 있다. 판소리는 잘 부르거나 못 부르거나에 상관없이 누구나 멋을 살릴 수 있는 건드러진 바람소리였다.



다시 바람_ 무형문화재 악기공 고수환6)


    전주한옥마을에서 문풍지 흔드는 바람 소리를 판소리 듣듯 들으며 얼핏 잠이 들었던 탐방단이 아침에 만난 것은 또 다른 바람의 미메시스, 무형문화재 소리명인 고수환이 만든 국악기 가야금의 바람 소리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지만, 가야금이나 거문고처럼 악기공의 손길이 닿은 나무는 도리어 바람을 흔든다. 12줄의 현이 공기를 흔들어 바람을 만들고 앞판인 오동나무와 뒷판인 밤나무 사이를 맴돌다가 달과 해, 그리고 구름을 의미하는 공명통을 통해 나오는 가야금의 바람 소리는 깊었다. 가야금 소리에 반해 평생을 가야금을 만들었던 고수환 명인의 말처럼, 그 소리는 사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나의 줄에서 튱겨 나온 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 또 다른 음들이 선율을 타며 뒤따른다. 전자적으로 재현(모방, imitatio)된 가야금 소리만 듣던 탐방단은 그 깊은 소리(미메시스, mimesis)에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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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전통 국악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고수환 명장. (우) 그가 만든 가야금과 거문고.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Tokina 80-20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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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일행들에게 가야금 연주를 들려주는 악기공 고수환. 실제 듣는 가야금 소리는 전자적으로 재현된 소리와 다르게 매우 깊고 넓다.  (우) 가야금과 해금, 그리고 거문고. 나무는 악기공을 만나 도리어 바람을 흔든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Tokina 80-200mm )


     가야금 또한 전통과 현대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으로 12줄이었던 가야금은 현대 음악이 들어오면서 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장인들에 의하여 18줄, 25줄로 음역을 넓혔다고 한다. 25줄은 마치 서양의 하프와 같이 서양의 12음계를 정확하게 재현해 낼 수 있어 배우기는 쉽지만 전통적인 가야금 소리와는 음색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12줄 가야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연주자들이 줄을 누르는 판기술이 중요한 데 비하여 25줄은 판기술을 익히지 않아도 연주가 가능해 학생들이 선호하게 되고, 그러면서 소리의 깊이와 음색이 자꾸 얕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가야금 연주는 ‘접금(경첩을 사용하여 가운데 접을 수 있도록 한 가야금)’이라 하여 줄을 분리하고 가야금을 접어서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연주했는데, 현재는 12현, 18현, 25현 등 4~5개의 가야금을 자동차에 싣고 다니면서도 과거에 비해 훨씬 바빠졌으니 과연 현대를 사는 우리는 행복한 것인가”라는 명인의 이야기가 골목을 빠져나오는 일행의 가슴에 남았다.



다시 나무 _ 목공예가 김종연7)과 한지공예가 김혜미자8)


     일행은 다시 나무의 미메시스 목공예가 김종연과 한지공예가 김혜미자를 만났다. 나무는 가야금이나 거문고처럼 홈이 패여 바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신을 깍아 형태의 미학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 삶고 풀어졌다가 얇게 뭉친 나무(종이)는 한지공예가의 손에서 쌈지와 보석함, 조명 등의 생활용품이 되어 다시 사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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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일행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목공예가 김종연. (우) 그의 작품 <허수아비>. 허수아비는 새를 쫓기 위해 서 있지만 새가 없다면 허수아비도 존재하지 못한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전주한옥마을에서 목우헌이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목공예가 김종연 작가는 나뭇결을 아는 나무꾼이며, 그 안에 삶의 의미를 숨겨 놓을 줄 아는 장인이다. 그는 나무의 심재의 색깔과 결, 나이테를 맞추어 오목하게, 혹은 볼록하게 따로 파내어 짝을 맞추었고,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었다. 그의 작품 ‘새를 사랑한 허수아비’는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허수아비의 임무(미션, Mission)은 새를 쫓아내기 위한 것. 그러나 새가 없다면 존재하지 못하는 순리와 역리의 중간에 허수아비가 있다. 그의 이 존재론적 생각은, 팔을 벌린 허수아비의 가슴을 파고 그 안에 새를 조각해 넣은 이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새를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허수아비, 어쩌면 그것이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거슬러야 하는 우리 삶의 은유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닥나무를 쪼개고 헤쳐서 만든 한지를 접어 다시 나무로 되돌리는 것이 한지공예다. 일행이 좁은 골목을 돌아 만난 한지공예가 김혜미자. 이 작가의 삶 또한 역리의 힘듦 속에 있었다. 한지함을 만들려면 한지를 여러 장 합지해 두꺼운 종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단순해 보이는 과정마저 쉬운 일이 아니다. 풀을 많지도 적지도 않게 먹여 얇은 한지를 한장 한장 배접하고 종려나무 뿌리로 두들기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겹쳐 붙이고 다시 두들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최소 50여장을 붙여야 함이나 상자를 만들 수 있는 제법 두툼한 종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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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정취 있는 골목을 돌아 한지공예가 김혜미자를 찾아가는 일행. (우) 한지공예가로서의 삶 이야기와 한지공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한지공예가 김혜미자.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그녀는 망궁이붓(타솔)로 30번 두드리고, 접착에 사용하는 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찹쌀을 정성스럽게 가루를 만들고 거기에 물을 붓고 8개월을 보관해 풀을 만든다. 풀의 농도는 한 컵에 한 수저를 규칙으로 삼는다. 한 장이 제대로 안착될 때까지 3시간을 기다려 다시 작업해야 하니 작업이 걸리면 긴 잠을 자지 못하고 집을 비울 수조차 없다 완벽하게 건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지를 붙이면 후에 탁이 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접한 한지는 매우 질기고 단단하다. 그 위에 옻칠을 하게 되면 물에 닳아도 훼손되지 않아 음식 그릇이나 찻그릇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나무가 한지장에 의해서 물에 풀어져 종이가 되었는데, 그 종이는 한지공예가의 손이 닿아 다시 딱딱한 나무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역리를 위하여 작가는 70여년의 삶을 보냈다.



흙으로 돌아오다_ 옹기장 이현배9)


     흙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바람의 미메시스를 만났던 탐방단은 옹기장 이현배를 만나며 다시 흙의 미메시스로 돌아왔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 사는 옹기쟁이 이현배는 ‘옹관(甕棺)’에 흠뻑 빠져 있었다. 옹관이라면 옹(甕)으로 만든 관. 즉 흙으로 만든 관,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릇이다. 옹관이라니! 기가 막힌 일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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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탐방단에게 옹관을 설명하고 있는 옹기공 이현배. 요즘 그는 옹관에 빠져 있다. (우) 공방 마당에 아무렇게 놓아둔 옹기들. 전시장에 정렬된 작품과는 다른 색다른 풍취를 느낄 수 있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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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옹기장 이현배가 만든 옹기들이 잘 말라 가고 있다 (우) 패이고 비뚤어진 옹기가 마당 한켠에 놓여 있다. 질서화하지 않은 투박함에서 일탈의 맛이 느껴진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얼마 전 영산강 유역에서 옹관을 구웠다고 믿어지는 가마가 발견되고, 가마 크기가 예상보다 작아 옹관을 굽던 가마가 맞다, 아니다 말들이 많았다. 옹기쟁이 이현배는 그 확인을 위해 실증작업에 나섰다가 옹관에 빠져버렸다. 그의 마당에는 방치된 듯한 옹기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누군가 옹기의 값을 묻자 값을 모르겠다며 난감해 하던 이현배 작가…. ‘옹관은 영산강 유역에서만 사용되던 관’이었다고 말을 시작한 이 옹기공은 ‘그 모양이 둥근 알을 닮았으니 인간이 알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卵生神話)’라며 ‘당시 사람들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믿었으니, 알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옹관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양화가 송수남이 ‘왜 옹기쟁이가 옹기는 안 만들고 연구를 하느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지만, 옹기장은 그 말에 아랑 곳 없이 ‘문화체계로 본다면 대형토기는 옹기로 이어지고, 소형 토기는 자기로 이어졌다. 옹관은 옹기 중에서 가장 크다’며 옹관 사랑을 그대로 드러냈다.

     2008년 옹관 가마를 재현한 그는 지금 옹기 가마와 옹관 가마의 함수 관계 연구에 빠져 있다. 자기 가마는 가마 안에 열을 보관하기 위해 불구멍을 다 막지만, 옹기 가마는 열을 흘려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옹기 가마는 뒤 화구들이 모두 열려 있고 20호의 가마 모두가 열린 채 연결되어 있다. ‘옹기 가마는 가마 안에 최대한 많은 옹기를 넣어야 잘 구워지고 열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옹기는 파손되고 마는데, 옹관은 어떨까’라는 것이 최근 그의 화두다. ‘어떻게 먹고 살려구요?’ 순리자가 물었을 때, 이 역리자는 답하지 못했다.

     옹기가 기본적으로 크고 무거운데, 그보다 더 큰 옹관을 만들고 있으니 그의 역리 또한 만만치 않다.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자기에 비해 옹기는 원래 흙이 잡스럽다’며 ‘남의 일 하듯이 하면 즐겁다’며 웃던 순박한 그의 얼굴이 길을 나서는 일행을 따라왔다.



전통이라는 삶의 메타포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가. 나무가 흔들려 바람이 흔들리는가’. 어느 노스님이 던진 화두에 젊은 스님은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고 했다가 혼쭐이 나고, 다음날 나무가 바람을 흔든다고 했다가 다시 타박 당한다. 바람인가, 나무인가를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젊은 스님을 보며 노스님은 말했다. ‘네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궤변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에는, ‘나무와 바람’으로 대변되는 세상을 바라보는 의미 있는 시각이 숨어 있다. ‘나’라는 주체와 ‘나무’와 ‘바람’이라는 대상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은 주체인 ‘나’지만, ‘나’는 대상인 ‘나무’, ‘바람’과 연결되어 있다. 흙과 나무, 바람의 미메시스를 찾아 떠났던 이 여행에서 우리가 만났던 것은 ‘나’라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외부 사물을 대립시키지 않는 우리의 전통의 생활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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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옹기장 이현배의 옹기 가마. 흙을 돌로 되돌리겠다는 역리(逆理)이지만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삶을 자연스럽게 한다. (우) 옹기공 이현배의 공방을 나서는 탐방단. 처마 끝에 고드름이 달려 있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우리의 전통문화는 나무가 바람을 흔들고,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또 ‘내’가 나무와 바람을 흔드는 ‘존재론적 닮기’다. 서구 근대화 사상이 ‘나’(주체)와 ‘너’(대상), 몸과 정신, 과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예술을 분리시켜 놓고 대립시켰다면, 우리 전통문화는 분리된 영역을 다시 통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역리(逆理)해 이기(利器)를 만들면서도 자연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 이것이 효용과 실리로 무장한 현대에서도 잊으면 안 될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일 것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이 은유(隱喩)는 자아와 비아, 몸과 정신, 과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예술로 독립시키고 분리시켜 바라보는 서구화된 시선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

      1) <홈 패인 공간>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대한 가장 통속적인 오해들 중의 하나>에 나오는 개념이다. 삶에는 기하학적인 공간, 물리적적인 공간, 도시 공간, 논리적 공간 등 많은 공간이 존재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홈 패인 공간>은 공간 종류가 아닌 공간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다. <홈 패인 공간>은 자동차길이나 수로처럼 홈이 파여져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선 오직 주어진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 옆으로 '샐' 수가 없다는 뜻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단일한 방식으로만 행동하게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 질주하거나 아니면 낙오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인 <홈 패인 공간>의 속성이다.

      2) 1938년생. 전통산수화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현대조형성을 추구해온 그는 상업주의, 권위주의가 만연하던 70년대 말 한국화의 위기 상황 앞에서 ‘새로운 환국화의 정립’이라는 기치 아래 한국화의 생명력 회복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수묵화 운동의 주역이다.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 초대 개인전을 비롯하여 30여회의 개인전, 동경국제비엔날레, 상파올루 비엔날레, 국제현대수묵화전 등 여러 단체전을 열었으며,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중앙일보미술대전 심사 및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3) 1958년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고 수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의를 하며 경기도 이천 자신의 공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4) 여주한지체험학교는 40여년을 한지연구 및 우리 종이 살리기만을 고집해온 박성만 대표, 그리고 47년 한지 뜨기로 평생을 살아온 한지장 이근성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직접 기르고 채취한 닥나무를 이용해 전통방식인 외발뜨기는 물론 쌍발뜨기, 타파뜨기 등 일반 한지 공장에서 체험하기 힘든 여러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

     5) 왕기석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남해성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으며, 1980년부터 국립창극단에 몸을 담고, 춘향가의 이도령, 심청가의 심봉사 역 등을 통해서 대표적인 창극배우로 명성을 얻었고, 그 외 80여 편의 창극에서 주역을 맡아왔다. 1984년 국립국악원 전국 국악 경연대회 대상, 1999년 KBS 서울국악대경연 판소리 장원, 2005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명창부 장원을 하였으며, 2004년에는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에서 다섯 시간 동안 심청가를 완창하기도 했다. 현재 국립창극단 지도위원, 목원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에 있으며,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후학양성에도 노력하고 있다.

     6) 무형문화재 제12호. 가야금 소리에 반해 가야금, 거문고, 아쟁과 해금 등 국악기를 만드는 데 평생을 보냈다. 현재 전주시 금암동 전주국악기를 운영하고 있다.

     7) 목공예가. 한국미술대전, 전라북도 미술대전, 춘향미술대전, 전라북도 공예품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공예대전 100인 초대전 등에 참가했고 전라북도 미술대전, 온고을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주한옥마을에서 목공예 공방 목우헌을 운영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8) 한지공예가. 전주기전대학 문화전통과 교수, 전주한지문화축제 조직위원, 익산한국공예공모전 심시위원, 원주한지공옉오모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9) 옹기장. 경희대학교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 힐튼호텔,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근무했지만 흙이 좋아 박나섭 옹기장, 김정옥 사기장 등에게 사사하여 옹기장이가 되었다. 갤러리 마루 등에서 수십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전통예 UN전시회 등 수차례 단체전에 참가했다. 2008년 동아시아 SEAL에서는 그의 작품 ‘달항아리’와 ‘전골 솥’이 유네스코 우수 수공예품 인증을 받았다. 2009년 울산 세계옹기엑스포 조직위원으로 역임했고 (사)민족생활문화연구원, 전라북도 문화관광 비전협의회 운영위원, 천년전주명품 온브랜드 운영위원, 천년전주사랑모임 운영위원이다.


      ...........

     *이우 곽원효 : 소설 <죽>으로 복현문학상, 문학평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복현문화상을 수상하고, 詩 <강변에서>로 제1회 강변시인학교 백일장 장원으로 당선했다. 사사 <<구미공업단지 15년사>>, <<구미상공회의소 10년사>>를 집필했고 저서로 <<언어는 문부시다>>가 있다. 현재 독서경영회사 (주)행복한상상 팀장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  이 원고는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발간 <공예사랑>에 기재되었습니다.

2010/01/24 18:12 2010/01/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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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문학 콘서트(대상도서: 권지예 소설 <붉은 비단보>)에 다녀와서 ]



윤리와 이데올로기의 함정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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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중학교의 국어시험 문제지를 풀어주다가 논쟁이 있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은 조국’이라는 국어선생님의 주장에 화가 나서 정면에서 받아버린 것이다. ‘그럼, 한용운은 조국하고 첫키스를 했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죠!’, ‘무슨 소릴하시는 겁니까? 조국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 연인, 동네 처녀, 이렇게 답했다고 해서 틀렸다니요!’, ‘틀렸지요, 교과서에 조국이라고 나오는 것인데요!’….

     논쟁에서 이겼든 졌든 나는 아직도 ‘님’은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승려 한용운이 여인을 사랑했다니!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겐 ‘님’이 ‘사랑했던 여인’이 되어야 더 아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겐 ‘문학적 진실’이다. 언젠가 ‘문학’은 ‘거짓말이 아닌가’라며 못 박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 ‘허구’라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해서 이야기했던 것이리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쳐다보며 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스토리가 허구라고 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 권지예가 쓴 소설 <붉은 비단보>는 조선시대 세 여자의 이야기다. 눈 내린 대나무 숲을 그리고 싶어 대밭으로 가던 ‘항아’, 뛰어난 자색과 춤 솜씨를 갖춘 ‘초롱’, 그리고 문필 신동이라 불리는 ‘가연’. 그들이 엮어 갔던 ‘좌절된 사랑’의 이야기이며, 시대의 윤리적 잣대 속에서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꿈꾼 조선시대 여인들의 이야기다. 서울로 시집을 간 ‘항아’는 현모양처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붉은 비단보 안에 정인의 흔적들을 고이 간직해두고 고달픈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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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30일 <우리 문학 콘서트>에서 만난 작가 권지예는 소설 속의 ‘항아’가 율곡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알려진 ‘신사임당’이 모티브였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붉은 비단보’ 안에 정인(情人)의 ‘모든 것’을 간직해두고 겉으로는 양반가의 현모양처로 살았던 ‘신사임당’이라니! 그렇다면 ‘향아’의 친구 ‘초롱’은 ‘황진이’, ‘가연’은 ‘허난설헌’, ‘항아’가 사랑했던 ‘초롱’의 오빠 ‘준서’는 ‘허균’이 모티브가 된 것이 분명하다.

     “많이 망설였지요. 이러다가 신사임당의 종친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구요(웃음). 그러나 소설가에게 그런 상상력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내가 왜 소설을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작가답다. 훌륭한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로서의 외부적인 모습보다는 예술가로,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꿈꾸는 여인으로 ‘신사임당’(아니 '항아'인가?)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현모양처인 ‘신사임당’과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신사임당(항아)’.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은 중요치 않다. ‘겉과 속이 다른 여자’라고 욕해도 할 말은 없다.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 만든 것은 ‘라캉’이 말하듯 ‘이상’과 ‘선’을 위한 윤리이고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겐, ‘사람’으로서의 신사임당이 ‘진실’이다.

     “... 라캉의 윤리학이 있다. 일반적으로 윤리학이 추구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이상(Idea)’ 혹은 ‘선(good)’이다. 그러나 그런 윤리학들은 속임수가 아닐까 하고 라캉은 묻는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선한 것들은 과연 ‘언제’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선한 것들은 과연 ‘누구에게’ 선한 것인가 말이다. 라캉은 이상의 윤리학과 선의 윤리학이 유토피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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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우리의 뮤지션 제클린도 소설 <붉은 비단보>에 이렇게 곡을 붙이고 노래했다.


      ♬♪사랑, 내게 없고 늘 있는♬♪

      1.
      가슴을 아무리 꼭 여며도 빼앗길 마음은 빼앗기나요
      파문 이는 호수에 그리움들이 멀리멀리 퍼져만 갔죠

      흐르는 물처럼 끊을 수 없고 안개처럼 가둘 수 없는 이 마음
      잡지도 못하는 바람으로 나의 곁을 맴도는 당신

      마음 문 꼭 닫고 인연의 고리 끊으면
      몹쓸 사랑의 꿈에서 깨어나려나

      하지만 흩어버릴수록 가슴 깊은 데서
      울려오는 당신이란 북소리

      2.
      흐르는 물처럼 끊을 수 없고 안개처럼 가둘 수 없는 이 마음
      잡지도 못하는 바람으로 나의 곁을 맴도는 당신

      마음 문 꼭 닫고 인연의 고리 끊으면
      몹쓸 사랑의 꿈에서 깨어나려나

      내게 없었고 또 내게 늘 있었던 당신
      세상 끝에서라도 기다려줘



     ................
     작가 권지예

     1960년 경주 출생.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근대문학에서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연구로 7년간의 연구 끝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1997년에 <꿈꾸는 마리오네뜨>와 <사라진 마녀>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 무덤>, 장편소설로 <아름다운 지옥 1, 2>가 있다. 그림소설집으로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고흐,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 홀릭> 등이 있다.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꽃게 무덤>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
     우리 문학 콘서트

     (주)행복한상상(www.isangsang.kr)이 주관하고, 강남구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문학과 음악과의 만남 행사.  월 1회 대상 문학 도서의 작가가 초청되어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갖고, 뮤지션 제갈인철(제클린, http://blog.naver.com/icjackal )이 대상 문학 도서에 대해 작사, 작곡을 해 콘서트를 연다. 행사 일정은 (주)행복한상상 웹페이지(www.isangsang.kr)에 공지된다.



2009/07/15 07:31 2009/07/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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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놓고’ 말하며 세계의 징후를 포착하다
-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읽고 -


(c)Copyright by Mudbull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를 읽었다. ‘에티카(ethica)’란, 윤리(倫理)라는 뜻. 윤리(倫理)란, 인륜 ‘륜(倫)’에 다스릴, 이치 ‘리(理)’가 더해진, 풀어 말하면 ‘인륜의 원리’라는 의미다. ‘륜(倫)’을 파자(破字)로 풀어보면 사람 ‘人(인)’에 조리(條理)를 세운다는 ‘侖(륜)’이 합쳐진 것이다, 사람 ‘인(人)’ 대신 '차(車)'를 붙이게 되면 '바퀴 륜(輪)’이 된다. 바퀴가 궤적을 만들며 길을 따라가듯 사람이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인륜 ‘륜(倫)’이다. 이 정도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륜(倫)’이란 자연적이기보다 인위적으로 조직된, 열렸다기보다는 닫혀진 표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윤리(倫理)란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사회적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란 말로 함축된다. 한 마디로 ‘사람’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적이며 자유로워할 삶에 울타리를 치고 테두리를 만드는 규제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법과 질서의 개념이 가시적인 사회적인 규제라고 한다면, 윤리는 개인이 스스로 만들고 받아들이는 비가시적인 규제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평론가 신형철이 문학 평론에 ‘에티카’라는 개념을 가져 오고 여기에 ‘몰락’이라는 말을 붙였으니, ‘Anti-Ethica’쯤 되는 것일까? 이 책이 평론집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몰락의 에티카’는 ‘Anti-Ethica’라는 ‘의지’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보여진다. 우리의 문학이 '반윤리적'으로 되고 있으며 ‘반윤리적’인 것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으로 쉽게 풀이할 수 있다.

     “먼저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있다. (...)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내가 내 변용의 원인이 되는 것이 윤리적인 삶이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필연적으로 기쁨의 윤리학이 될 수밖에 없다. (...) 그리고 레비나스의 윤리학이 있다. ‘기쁨의 윤리학’은 온 세상의 눈물을 닦지 못한다. 눈물이 있는 곳을 향해 ‘나’라는 좁은 세계에서 탈출해야 한다. 빠져나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주체의 자발성이 아니다. (...) 마지막으로 라캉의 윤리학이 있다. 일반적으로 윤리학이 추구한다고 간주되는 것은 ‘이상(ideal)' 혹은 ’선(good)'이다. 그러나 그런 윤리학들은 속임수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대체 ‘언제’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선한 것들은 과연 ‘누구’에게 선한 것인가 말이다. 라캉은 이상의 윤리학과 선의 윤리학이 유토피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한다.” (164~165p)

      만약 평론가 신형철이 윤리학을 가지고 있다면, 마지막 인용구절 라캉의 윤리학일 것이다. 스스로 말하듯 ‘윤리학은 다급한 질문보다는 온화한 정답을, 내면의 부르짖음보다는 외부의 압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앞에서 ‘윤리(倫理)’라는 말을 파자(破字)로 풀어본 의미 또한 라캉의 윤리학과 다르지 않으니 라캉의 주장을 일방적인 것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분명 신형철의 평론적 시각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이나 레비나스의 윤리학이 아니라 라캉의 윤리학에 가깝다. ‘몰락의 에티카’라는 제목에 걸맞게 신형철은 720쪽에 이르는 이 두꺼운 평론집에서 이른바 ‘반윤리’적인 작품들에게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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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밤의 푸른 냉장고는 고장이 났고 나는 거기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어둠으로 불 밝히는 캄캄한 대낮, 갈퀴 달린 내 손톱은 빙산처럼 희게 빛나는 검은 저 삼각주를 박박 긁어대는데 내 음부에서 철철 피 흘렀다. 달콤 쌉싸래한 시럽, 붉은 고 촛농에 젖어 살빛 카스텔라는 곰팡 난 매트리스로 푹 번져가는데 그 위로 삐걱, 삐걱 소리를 내며 꿈틀, 꿈틀거리는 이봐요 고등어 부인 씨...... 그녀는 한창 자위 중이었다.

   대지의 손을 빌려 뜨거운 혀와 같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속속곳 속곳 속에 물살을 일으키는 그녀, 출렁출렁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를 이불처럼 덮어쓰고도 푸들푸들 살 떨어대는 그녀, 그녀가 내게 윙크하는데 새까만 그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 오더니 가속도가 붙은 볼링공처럼 삽시간에 날 쓰러뜨리며 말했다. 너 하고 싶지? 에이 하고 싶으면서 뭘. 아뇨, 나는 아냣. 순간 나는 하이힐 벗어 그녀의 양쪽 뺨을 후려찍고 말았다. 거짓말! 분명 넌 하고 싶은 거야! 이런 씨발, 아니, 아니라잖아. 참다못한 내가 그녀의 알주머니를 싹둑싹둑 가위질하자 김말이 속 당면처럼 빼곡히 들어찬 그녀들이 잘린 입 밖으로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이봐 고등어 부인 씨, 난 단지 갑갑증이 나서 살짝 따고플 뿐이라고!”
(195p)

     신형철이 다루고 있는 김민정 詩 <고등어 부인의 잉크>라는 작품이다. 이를 두고 신형철은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습적인 의미에서 아름다움과도 무관하다. 그녀의 시는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196p)라고 평한다. 이처럼 그의 평론 또한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그의 목적지는 ‘몰락의 에티카’다. 왜 그는 그 곳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문학이란 원래 에티칼(ethical)하지 않다. 문학이 윤리적이라면 상상의 힘을 빌릴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고전 시가가 그랬고 신라 향가가 그랬고, 고려 별곡(別曲)이 그랬다. 열린 세계가 아니라 윤리라는 닫힌 세계, 그 울타리 안에서 문학이, 작가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학은 원래 ‘아름답지도’, ‘윤리적’이지 않지만 어떤 의도를 갖고 바라보거나 창작될 때, 윤리적이 것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일어나고 금서(禁書)가 되고 때론 장려 도서가 되었던 것이다.

     왜 신형철의 평론은 ‘몰락의 에티카’로 나아가는 것인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윤리적이지 않으니 평론 또한 윤리적일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이지 않은 문학을 윤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비뚤어지고 왜곡되어 보인다. 신형철이 당연한 것으로 나아갔으나 세상은 놀랐다. 혹자는 우리 문학의 서정성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탄하기도 했으며 우리 문학의 몰락이라고 평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동안 아무도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 못 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신형철은 평론적 체계를 세워 현상을 이야기했을 뿐 에티카를 몰락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우리 문학 또한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에티카를 몰락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리 문학도 있는 그대로 ‘대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신형철이 있어 평론 또한 있는 그대로 ‘대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세계의 징후를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지 진단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황지우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31p)

2009/07/11 01:49 2009/07/1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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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착하지 않은, <착한 가족>
- <착한 가족>(서하진/문학과 지성사/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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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진 단편소설집, <착한 가족>. 정말 이 가족들은 ‘착한’ 것일까? 답은 ‘No’일 수도 있고 ‘Yes’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답도 가능하다.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그러나 해답은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들 가족을 착하다고 한다면 착하지 않은 가족을 착하다고 말해야 하는 모순이 만들어지고, 이들 가족을 ‘나쁘다’고 이야기 한다면, 우리 시대의 모든 가족이 ‘나쁜 가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궁암에 걸려 죽음의 시점을 확인한 후에야 가족이라는 것을 돌아볼 수 있는 아빠(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 바람피우는 아버지를 미행하고서야 아빠의 사랑과 꿈과 희망을 볼 수 있는 딸(아빠의 사생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빠의 직장 상사를 협박하는 아내(착한 가족),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가족의 가치를 알게 되는 애인을 둔 가장(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일 때문에 아이들과 강아지 ‘미르’를 굶기는 커리어 우먼인 어머니 ‘민자’(인터뷰), 친구의 남편을 사랑하는 H(슈거, 혹은 솔트), 유부남 K를 사랑하는 여자(너는 누구인가), 이익을 위하여 또 다른 가정을 파괴하는 이영주(사소한 일). 이상하게도 <착한 가족>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나쁜 가족’의 이야기다. 그러나 또 한 번 뒤집으면 이 모두가 현대사회 우리 모든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 언젠부턴가 사람들은 가면의 위장술에 능숙한 사람을 ‘가식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유능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가면 뒤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 가면 자체가 멋들어진 사람, 가면을 쉴 새 없이 바꾸는 사람이야말로 이토록 ‘트렌디한’ 현대사회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연기하는 자아’는 현대인에게 더 이상 낯설거나 혐오스럽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의 삶이 철저한 연기임을, 스스로 연기자와 연출자와 감상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능력이야말로 성공적인 삶의 관건임을, 현대인은 매일 매일 새삼 깨달아가고 있지요. ... (296~297p,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해설)

     이처럼 지금 우리의 애매모호한 가족은 결국 지금의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사금파리다. 정말, 우리 시대의 ‘가족’은 이 책의 해설을 쓴 정여울의 말처럼 ‘고통과 행복의 진원지이기도 하면서 타락의 진원지’인 것일까? 혹은 인문학자 고미숙의 말처럼, 우리 시대의 가족은 ‘애국애족을 하게하고, 국가경쟁력의 토대가 되는 산업역군을 만들기 위한 지극히 단자화된 단위’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시대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서하진의 <착한 가족>은 이런 깊숙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단편소설집이다.

- 이 글은 강남구립도서관 발간, <2009 한 도서관 한 책읽기, 워크북>에 실렸습니다.

2009/06/30 18:43 2009/06/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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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 ‘완득이’
- <완득이>(김려령/창비/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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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하 ‘난쏘공)은 19070년대 정상인과 화합하며 살 수 없는 존재인 ‘난장이’를 통해 당시 우리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빈부격차와 대립, 그로 인한 가족의 붕괴를 바라보는 작가의 올곧은 시선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김려령의 장편소설 <완득이>는 주인공이나 소재, 상황적 배경들이 너무나 <난쏘공>과 닮아 있다. 난장이 아버지와 말더듬이 삼촌, 베트남인 어머니가 떠나버린 ‘완득이’. 이들 또한 이 시대가 낳은 이방인들이며, 춤꾼과 행상, 식당 보조로 살아가야 하는 ‘완득이’ 가계 또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 빈곤층이다.

     그러나 <완득이>와 <난쏘공>은 전혀 다르다. <난쏘공>이 저항과 대립을 통해 사회적인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다면, <완득이>는 사회 모순을 자기화하고 받아들이면서 꿈과 희망, 웃음을 이야기한다. 기초수급자 지원을 받는 학생 ‘완득이’, 완득이와 남편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 ‘전철에서 물건을 팔다가 관리원에게 쫓겨나는 아버지와 삼촌. 이 암울한 상황을 웃음과 해학으로 풀어내는 절대적 긍정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작가 김려령은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로맨티스트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깍두기 형들과 싸우며 자라는 완득이, 춤으로 예술을 꿈꾸지만 제비가 되는 삼촌과 아버지, 육두문자를 날리는 ‘담탱이’, 아들을 두고 도망가는 ‘어머니’.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완득이를 몰래 만나러 오는 여학생 ‘정윤하’. 그 누구 하나 부정적인 사람이 없다.

     ... “너도 맨날 맞으면서 또 운동하잖아, 네 꿈을 위해서. 나도 그래. 내 꿈을 위해서 죽어라고 공부하는 거야. 내가 나중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미리 배워두는 거라고.” / “그걸 꼭 대학 가서 배워야 하냐?” / “넌 꼭 체육관에 가서 운동해야 하니?” ... “생각 없이 간판 따러 가는 애들보다 낫잖아.” / “그 애들 꿈이 간판인가 보지. 네 꿈만 중요하고 그 애들 꿈은 안 중요하냐?” ... (186p)

   청소년 소설 <완득이>에 등장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적대감이나 저항, 반항을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심각한 사회적 모순과 문제라고 할지라도, 어떤 결함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완득이> 안에 들어오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웃음’으로 받아들여지고 ‘해학’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작가 김려령은 이들을 긍정의 힘과 웃음의 힘으로 불완전한 이들 모두를 감싸 안는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외인들에게 희망을 싣는다.

- 이 글은 강남구립도서관 발간, <2009 한 도서관 한 책읽기, 워크북>에 실렸습니다.

 

2009/06/30 18:38 2009/06/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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