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ritings/Review'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1/12/08 이우 곽원효 [문학탐방] 김유정문학촌
  2. 2011/06/20 이우 곽원효 [리뷰] 리딩으로 리드하라
  3. 2011/05/17 이우 곽원효 [리뷰] 뮤지컬_ 엄마를 부탁해
  4. 2011/03/04 이우 곽원효 [리뷰] 키치(Kitsch) 디베이트
  5. 2010/11/10 이우 곽원효 [리뷰] 오래된 미래
  6. 2010/10/19 이우 곽원효 [리뷰] 정의란 무엇인가
  7. 2010/09/30 이우 곽원효 [리뷰] 황석영의 중의법
  8. 2010/07/27 이우 곽원효 [리뷰2] 전승공예가 길을 묻다(2)
  9. 2010/07/21 이우 곽원효 [리뷰1] 전승공예가 길을 묻다(1)
  10. 2010/07/09 이우 곽원효 [리뷰] 지배 중심 문화에서 다양성으로
  11. 2010/07/05 이우 곽원효 [리뷰] 정이현이 생략한 '마지막 문장'
  12. 2010/05/20 이우 곽원효 [리뷰] 지식의 대통합 통섭
  13. 2010/05/17 이우 곽원효 [리뷰] 오페라의 유령
  14. 2010/05/15 이우 곽원효 [리뷰] 김애란의 파토스(Pathos)
  15. 2010/04/29 이우 곽원효 [리뷰] 고독한 연대기_ 하진의 <기다림>과 <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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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정문학촌은 강원도 춘천의 실레마을에 있다. 서울에서는 전철 7호선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려가 김유정역에서 내리면 된다. 김유정역에서 3분 정도만 걸으면 김유정문학촌에 닿는다.



  1937년 만29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소설가 김유정을 만났다. 수학시간, 까까머리의 소년이 책상 아래 몰래 국어책을 펴놓고 읽던 소설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의 김유정문학촌에는 동백꽃1)인지, 점순이의 살내음인지 모를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가 배어 있을까. 동백꽃 같은 점순이의 살내음에 아찔했던 것은 소설 속의 ‘나’만 아니었다. 쓸데없이 쓸쓸해지던 사춘기, 수업시간에 몰래 읽으며 소설 속의 ‘점순이’와 함께 동백꽃 아래로 넘어지며 아찔했던 나는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다. 누군가 삶을 바꾼 한 권의 책을 소개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서슴없이 김유정의 ‘동백꽃’을 들었다. 동백꽃의 그 알싸한 살내음이 글을 쓰게 했으니….


   …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 “그럼 어때?“ / 하고 일어나다가, /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 /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 ”그래“ /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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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역(金裕貞驛)은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경춘선의 철도역이다. 이 역은 수도권 전철역 중 유일하게
역 행선판이 궁서체인 역이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이름으로 역 이름이 된 곳이다.
건물은 영월역, 경주역과 동일하게 한옥 형태의 역사로 지어져 있다.
원래의 역명은 ‘신남역'이었으나, 소설가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 12월 1일에 역명을 변경했다.
오른쪽 아래는, 전철복선화가 되기 전의 간이역.



   1930년대의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가 있는 실레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유정문학촌이라 할 수 있다.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3분 정도만 걸으면 ‘김유정 생가’와 ‘김유정 기념 전시관’이 있고 맞은 편 언덕에는 김유정이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던 야학터가 있다. 마을 가운데 잣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실존인물이었던 <봄․봄>의 봉필 영감이 살았던 마름집이 있다. 소설 <봄․봄>에서 점순이와 혼인은 안 시켜주고 일만 부려먹는데 불만을 느낀 ‘나’가 봉필영감과 드잡이를 한다.


  …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싸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


-김유정의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조광, 1936년 5월호)



   봉필영감의 집 옆에는 김유정이 세운 간이학교 ‘금병의숙(金屛義熟)’이 있고, 건물 옆에는 김유정이 기념으로 세운 느티나무가 세월을 이기고 자랐다. 신동면사무소 뒤쪽 김유정이 토다리 찌개로 술을 마셨다는 주막터, 팔미천 건너 산골나그네 '들병이‘가 남편을 숨겨 두었던 물레방앗간 터도 있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금 따는 콩밭>, <산골>, <만무방>, <솥>, <가을> 등 소설 12편이 이곳 실레마을이 무대였으니, 점순이, 덕돌이, 덕만이, 뭉태, 춘호, 근식이 등 작품의 둥장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이 곳 실레마을이다. 김유정역에서 김유정 생가와 김유정기념전시관까지 약 300미터. 실레마을을 돌며 김유정의 소설 속 배경지를 찾아 돌면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1908년 1월 11일 ~ 1937년 3월 29일)은 이곳 실레마을에서 김춘식과 청송 심씨의 2남 6녀중 차남(일곱째)로 태어난다. 김유정은 명성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우명의 후손으로 그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이 김유정의 할아버지다. 아버지 김춘식은 자를 윤주(允周)라 했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해 사마좌임금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를 지냈다. 당시 실레 마을에 있던 50여호는 대부분이 김유정의 할아버지 김도사댁 소작인들이었다. 김유정은 춘천부내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자 세력가였던 김도사댁 귀염둥이 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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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김도사댁의 주소는 춘천부 남내이작면 427번지. 언덕 위 동남향의 30여칸 기와집이 김도사댁이었다.
그 자리에 김유정의 생가와 김유정 기념관이 있다.



  만석지기 지주집안이었고 서울에도 100여 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김유정이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 때는 아버지를 여읜 뒤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더욱이 집안을 책임지고 있던 큰형의 분방한 생활로 말미암아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각별했던 어머니를 잃은 환경에서 김유정은 점차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말더듬이 증상을 보였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이 같은 언어장애 현상 속에 김유정 특유의 표현 의욕이 잠재해 있었을 것”이라며 작가의 심리적 특성을 말하기도 했다.

  김유정은 1929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지만 학교 결석이 잦아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의 잦은 결석은 당대의 명창이었던 ‘박록주2)‘와의 짝사랑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박록주보다 3살 연하였던 김유정은 박록주를 광적으로 짝사랑했지만, 박록주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훗날 김유정은 소설 <두꺼비>와 <생의 반려>에서 박록주와 유사한 주인공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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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았던 작가의 생애와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 김유정기념 전시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사진이김유정이 짝사랑했던 기생이자 명창이었던 박록주의 옛사진이다.
아래에는 시인 박용철의 누이동생 박봉자의 옛 사진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김유정의 간절한 구애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연과 학교에서의 제적…. 김유정은 1930년 학교가 없는 고향 실레마을에 내려와 금병의숙을 짓고 약 2년간 우리글을 가리치며 실연의 아픔을 달랜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온 김유정은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소설 <소낙비>, <중앙일보>에 소설 '노다지'가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구인회3) 회원으로 활동하고 30여 편의 소설을 쓰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지만 1937년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공장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누나에게 얹혀살다가 나이 서른에 세상을 떠났다. 김유정이 빼어난 문학작품을 남겼지만, 결혼도 못하고 29세의 일기로 마친 생애는 불우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유정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박녹주에게 짝사랑을 바치기도 하고, 젖먹이 딸린 들병이를 따라다니는가 하면, 잡지에서 같은 글이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박용철의 누이동생인 박봉자에게 30통이 넘는 편지를 쓰고, 소설가 최정희 씨에게 호의를 느끼며 술과 방황의 날을 보냅니다.  …


  - 유인순 교수(강원대국여교육과)의 <김유정을 찾아가는 길>(23∼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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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전시관에 종이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는 김유정의 소설 <봄․봄>의 주인공 점순이와 나.
소설 <봄․봄>에서 언제 점순이와 혼인시켜 줄 것이냐는 ‘나’의 불만에
장인될 사람은 점순이 키가 자라면 혼인인시켜 줄 것이라는 약속을 한다.
점순이의 키를 가늠하고 있는 소설 속의 '나'.



  이렇듯 그의 생애는 불우했지만, 김유정은 ‘재미있게’ 소설을 써내려 간다. 과장적인 문체, 상소리, 속어, 사투리 등을 동원해 어리석은 듯 하면서도 순박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향토적 아름다움을 풍기면서 주인공의 행동만으로 웃음을 일으킨다. 소설 < 동백꽃>의 '나'와 ‘점순이’ 사이,  <봄봄>의 '나'와 ‘장인’ 사이에 분명히 갈등이 존재하고 있지만 김유정은 이들 사이의 갈등에 개입해 어느 한 쪽에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대립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해학’4)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김유정이 현실의 모순이나 결함까지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춘천 MBC가 김유정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김유정은 명문집안의 자손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대말을 했다고 하니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곱다.


   ... 장인님! 인제 저……" /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 "이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 을 좀 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년이면 삼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 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 (중략)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구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중략)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채루 밭머리에 곱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나기를 기다린다. /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챙기는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없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 "그럼 어떡해?" / 하니까, /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

-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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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생가에서 만났던 문(門). 대립이 많은 시대, 우리가 열고 들어가야 하는 문은,
대상을 항해 조롱하며 공격하는 풍자(諷刺)가 아니라 애정 있고 따뜻한 시선을 더하는 해학(諧謔)일지 모른다.



  경철선을 타고 남춘천역에 내리고, 전철 한 블록 사이 ‘멀면 얼마나 멀까’하고 어림짐작으로 김유정역까지 걸었던 길이 알고 보니 6Km나 되었다. 간혹 뿌리던 겨울비 사이를 2시간여 걸어가며 얻은 것은 어쩌면 김유정의 따뜻한 시선일지 모른다. 대립이 많은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상을 항해 조롱하며 공격하는 풍자(諷刺)가 아니라 애정 있고 따뜻한 시선을 더하는 해학(諧謔)이 아닐까.




註)  ..............................


  1)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꽃은 동백꽃이 아니라 봄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생강나무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꽃을 동백꽃, 혹은 산동백이라고 불렀다. 김유정은 소설에서 붉은 동백꽃과 구별이라도 하려는 듯 ‘노란 동백꽃’이라고 쓰고 있다.

  2) 박록주(朴綠珠, 1905년 2월 28일~1979년 5월 26일)는 소리꾼이다. 본명은 명이(命伊), 호는 춘미(春眉)로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태어났다. 녹주는 예명이다. 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이다. 12세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박기홍에게서 판소리를 배웠고 20여세 때 1900년대 초기의 명창으로 불리던 송만갑에게 사사했다. 협률사(協律社)에서 활약하다가 남원에 내려가 김정문에게 <흥보가>를 배웠고 김창환)에게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배웠다. 정정렬에게서 <춘향가>를 배웠다. 조선성악연구회·조선창극단·대한국악원 등 판소리계의 일선에서 활약하여 왔다. <흥보가>, <춘향가>에 장(長)하고 <춘향가>는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동편제의 꿋꿋한 창법을 간직하고 있다. 판소리 보존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28년부터 음반을 취입하여 판소리 음반을 많이 남겼다. 판소리, 창극 등에 능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판소리 교육과 보존에 힘을 쏟았다. 흥보가 및 춘향가의 판소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서편제가 다수였던 판소리계에서 동편제의 국보적 존재로 많은 제자를 남겼다.

  3) 구인회(九人會)는 1933년 8월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결성된 문학 문인 단체로, 1930년대를 풍미했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항하여 순수 문학 단체였다. 발기인은 이종명, 김유영이 맡았고,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 등 9명이 창단 멤버다. 후에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입회한다. 1935년을 전후하여 유치진, 조용만이 탈퇴하게 되지만, 김유정, 김환태가 가입함으로서 구인회라는 명목에 걸맞게 9명의 회원수를 유지했다. 이들의 대부분이 새로운 감각과 기교를 지닌 예술파·기교파의 작가·시인들이었다. 이효석, 이태준 등은 세련된 문장으로 우수한 단편소설을 다수 발표해 문장 면에서 한국 현대소설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으며, 9인회의 중심인물인 이태준은 일련의 한국적인 애수(哀愁)와 정취가 담긴 단편소설을 발표해 대중의 각광을 받았다. 박태원은 예술파적인 경향의 작가, 이무영은 경향적인 작가로 출발해 농촌을 제재로 한 농촌소설을 썼다. 정지용의 감각적인 순수시, 김기림의 모더니즘시와 주지적인 이론, 이상의 신심리주의적인 작품, 김환태의 예술지상적인 평론, 김유정의 인생파(人生派)적인 소설 등은 모두 이 구인회의 순수문학적인 입장을 대변한 것들이었다.

 
4)  해학(諧謔). 사전적으로는 익살스러우면서 풍자적인 말이나 행동을 의미하지만, 해학과 풍자(諷刺)는 차이가 있다. 해학과 풍자는 모두 웃음과 관련된 미의식(골계미)이지만, 풍자가 대상에 대한 공격성이 있는 웃음이라면 해학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 애정이 어린 웃음이다. <흥부전>에서 작가가 '놀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풍자다. 작가는 '놀부'보다 우월한 입장에 서서 그의 탐욕을 조롱한다. 반면 '흥부'를 바라보는 미의식은 '해학'이다. 작가는 '흥부'의 가난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긍정적이며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문학에 있어서 해학이나 풍자와 같은 골계의 미의식은 1930년대 채만식과 김유정에 의해 발전적으로 계승된다. 채만식은 주로 대상을 비웃는 '풍자'의 방식을, 김유정은 대상의 어리석음에 동정심을 실어 주는 '해학'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김유정문학촌 웹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kimyoujeong.org )



2011/12/08 13:42 2011/12/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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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밴드웨건, 이지성
- <리딩으로 리드하라>(이지성/문학동네/2011)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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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성. 그는 전혀 인문적이지 않다. 책의 부제부터 그렇다.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지배는 피지배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0.1퍼센트가 세상을 지배한다면, 99.9퍼센트는 피지배자다. 그런데 그는 '인문고전을 읽어 세상의 99.9퍼센트를 지배하라' 말하고 있다. 인문학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언어/문학/철학/역사/학예 등 인간과 인류문화에 관한 정신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어원대로 해석하자면 ‘인간다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인간다움’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라고 외치는 이지성은 인간다움을 이용해 가장 인간답지 않은 사회--99.9퍼센트를 지배하는 0.1퍼센트--를 만들려는 것일까.

  이지성. 유행에 따라 책을 쓰고 독자를 현혹하는 밴드웨건*이다.  인문학이 유행한다고 하니 악대차(樂隊車)를 만들었다. <개인, 가문,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인문고전 독서의 힘>,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 <역사 속 초강대국들이 쉬쉬해온 비장의 무기>, <법조인 130명 vs. 전과자 96명>,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는 법>, <런던 빈민가 접시닦이, 세계 금융의 황제가 되다>,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 우리는 잘 안다.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가 되기 위해 인문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고, 설령 인문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마치 상품을 팔기 위해 과장 허위 광고를 일삼는 것처럼 '비장한 무기', '승자', '황제', '지배', '천재' 등의 원색적인 단어를 배열하며 이지성은 호객을 하고 있다.

  밴드웨건답게, 소리만 클 뿐 내용이 없다. 플라톤, 존 스튜어트 밀, 아리스토텔레스, 존 로크, 데카르트, 애덤 스미스, 케인스…. 그가 인문고전이라 떠올리는 것들은 이미 논리적으로 오류라고 판단되었거나 근대철학의 한계점을 드러내며 막을 내린 것들이다. 그는 헤겔과 맑스, 라캉, 나타리와 들뢰즈 등 주옥같은 현대철학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일까? '인문고전'이라고 처음부터 지정하고 이야기했다고 변명을 한다면 또 할 말이 있다. 고전(古典)의 원어는 클래식(classic)이다. 클래식(classic)은 원래 그리스 시대의 계급 중 ‘일등 시민, 혹은 ’최상위 계층‘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고전(古典)이란 단순히 ‘옛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것이라고 하더라도 문학이나 사상이 ‘우수하고’, ‘모범적’이라면 고전이라고 명명된다. 그는 그저 오래된 것만을 고전(古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지성. 그는 모른다. 제1장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에서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이 인문학이라고 한다. 아예 우리 교육에는 인문학이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문학 서적은 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고 고등학교 언어영역 중 비문학 분야는 모두 이것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성적과 진학을 향한 경쟁 체제의 교육 틀 안에서, 그러니까 '세상의 0.1퍼센트'가 되기 위하여 학습자들이 제대로 읽을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지성은 '세상의 0.1퍼센트'가 되기 위하여 인문고전을 읽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에 인문고전이 없다고 한다. 이런! 그는 분명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제2장에서는 <논술을 위한 인문고전 독서는 하지 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읽어보면 논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논술 시험이 왜 생겼으며 그 취지가 뭔지 조사해 보기를 권한다. 원래 취지의 논술시험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왜곡된 이유? 아이러니컬하게도 학생들이 '세상의 0.1퍼센트가 되기 위해' 독서를 했기 때문이다.

  이지성. 그는 아는 체 한다. 제3장 3절에서는 <자본주의는 인문학 전통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문학을 ‘인간과 인류문화에 관한 정신과학을 통틀어 말한다’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일견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맞다면, 자본주의의 상대편에 있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도 인문학 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헤겔과 맑스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연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며 현대철학을 열었던 장본인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더구나 이 세상의 절반 가량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대놓고 자신의 체제를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라고 말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져진 사실이다. 이지성처럼 인문학을 바라본다면 경제체제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까지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오게 된다.

  이지성. 그는 지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지성적이지 못하다. 제3장에서는 ‘최초의 철학자는 최고의 투자가였다‘는 어불성설을 늘어놓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는 법>이라며 ’인문학을 읽어라‘고 하더니, 제4장에서는 ’돈 있는 사람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빈자는 갈수록 더 빈자가 되어가는 우리나라‘를 바꾸기 위하여 인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하고, 먹고살기에도 허덕대는 빈자(貧者)에게 100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지불하고서도 인문학강의를 들으라고 늘어놓는다. 이런! 비논리적이라고 이야기하기에도 싱겁다. 바로 앞 장에서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고 있으니 그는 분명 심각한 건망증을 앓고 있다.

  이 책에는 참 많은 인물들과 인문학고전의 책 제목이 나온다(책 제목만 나오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플라톤, 존 스튜어트 밀, 아리스토텔레스, 존 로크, 데카르트, 애덤 스미스, 케인스….  여기에 <명심보감>, <논어>, <맹자>, 장자의 <장지>, 사마천의 <사기열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 볼테르의 <영국인에 관한 서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루소의 <사회계약론>,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괴테의 <파우스트>,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그러나 그는 이런 책을 읽지 않았거나, 혹은 읽었지만 제대로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책의 대부분은 오늘날의 자본주의와는 상대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는 법>이라고 외친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온고지신(溫故知新)하면 될 것 같지만, 인문고전을 읽어본 사람은 안다. 인문학이란 자연과학의 수학처럼 정교한 논리적 구조로 쨔여 있기 때문에 역지사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놀랍다! 인문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이, 인문고전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모르는 사람이 이런 책을 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가고 이를 극찬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놀랍다. 걱정스럽다. 옛말에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쩌면 선무당 이지성이 이 땅의 인문학을 ‘잡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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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밴드웨건효과(樂隊車效果, band wagon effect) :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뜻하는 경제용어로, 곡예나 퍼레이드의 맨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樂隊車)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효과를 내는 데에서 유래한다.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상으로, 편승효과 또는 밴드웨건(band wagon)효과라고도 한다. 미국의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 1922∼1994)이 1950년에 발표한 트워크효과(network effect)의 일종으로,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 밴드웨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밴드웨건은 악대를 선두에 세우고 다니는 운송수단으로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여 사람들을 모았으며,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몰려갔다. 이러한 현상을 기업에서는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활동으로 활용하고, 정치계에서는 특정 유력 후보를 위한 선전용으로 활용한다. 출판계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선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본질을 왜곡시킨다는 것. 우리나라 출판의 질적인 저하 원인이 이 역마차 밴드웨건이다.








 

2011/06/20 18:53 2011/06/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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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신파’가 필요해
-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연출_구태환 / 주연_김성녀, 김덕환)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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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파극(新派劇)이 권장될 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치하의 국민들이 그 울분을 새로운 물결, 신파(新派)가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신파를 보면서 분노와 격정, 울분을 드러낼 수 없었던 식민지 국민들은 ‘울’면서 저항의 힘을 잃었다.

  원래 신파는 정치선전극이었다. 일본에서 자유민권운동(1870~80) 시기에 전래의 가부키(歌舞伎)연극을 구파(舊派)라 하고 정치선전극을 신파(新派)라 불렀다. 1911년 일본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던 임성구가 조직한 한국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이 일본신파극의 번안작인 <불효천벌(不孝天罰)을 가지고 창립공연을 가지면서 우리나라의 신파는 시작되었다. 서양 멜로드라마를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일본신파극에 한국적 특수성이 가미된 한국적인 멜로드라마, 이것이 신파극(新派劇)이었다. 우연한 사건의 전개, 과도한 정서의 분출, 선악의 이분법.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신파극의 특성은 대체로 패배주의를 구현하고 이를 자학적으로 카타르시스하는 작품구조를 가졌다.

  신파극은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없는 통속적인 줄거리를 가졌지만 작품 속에는 당대의 대중심리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수일와 심순애’로 알려진 <장한몽>, 1930년대에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결함을 지닌 주인공'이라는 구조로 정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함을 지닌 주인공’ 앞에서 식민지 국민은 ‘울었다’. 우리나라 근대 공연예술의 터를 닦았던 최초의 극작가 김우진이 당시 사회비평을 통하여 ‘이광수류의 문학(신파)을 매장하라’고 외치며 식민지 지식인의 울혈(鬱血)을 쏟아낸 것은 신파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멜로로 위장하고 식민지 국민의 분노를 눈물로 대체시킨 신파가 시작된 것이 1911년. 그로부터 딱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신파가 다시 필요했던 모양이다. 2008년, 2009년 150만 이상의 독자들이 선택했다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작년 연극으로 공연되면서 매회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했고, 올해 음악을 만나 악극(樂劇, Musical) <엄마를 부탁해>로 공연되었다.


‘엄마’라는 눈물

  관람석은 메어졌다. 마당놀이와 연극, 뮤지컬을 넘나드는 연기력파 배우 김성녀, 열정으로 부대를 장악하는 관록의 배우 김덕환, 섬세하게 작품을 해석한다는 이계창, 풍부한 감성과 탁월한 곡 해석을 자랑한다는 뮤지컬계의 독보적인 여가수 차지연, 팔색조로라 불리며 시원한 가창력을 가졌다는 김경선 등 30여명의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다층의 조명과 깨끗한 음향, 잘 정돈된 소품만 봐도 이 뮤지컬의 공연 규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배우의 발성은 정확했으며 노래도 아름다웠다. 배우들의 동선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을 만큼 연출도 좋았다.

   그러나 이런 조합이 만들어 낸 것은 ‘눈물’ 뿐이었다. 작가 신경숙이 소설을 쓰고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깨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지만, <해럴드 경제>가 ‘엄마의 모성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 연극들과는 달리 엄마를 한 인간이자 여자로서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는 리뷰를 썼지만, 이 뮤지컬에서의 ‘엄마’는 정말 ‘엄마’였을 뿐이다.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실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은 엄마의 부재를 통해 ‘회한(悔恨)’을 느낀다. <동아일보>는 대놓고 ‘죄책감이 수조 위에 떨어진 한 방울 잉크처럼 객석을 물들인다’고 적었다.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는 효(孝)라는 가치 속에서 괴로워 하는 현대인들, 특히 불효(不孝)라는 ‘결함을 지닌’ 40대 이상의 관객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해 ‘자학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형식은 현대화되고 세련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의 신파와 다를 바 없었다. 100년 전 ‘결함을 가진 주인공’이라는 주어가 ‘결함을 가진 ’관객‘이라는 주어로 대치되고, ’식민지인의 울분‘이라는 목적어가 현대의 ’자본‘이라는 목적어로 대치된 것, 그것이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였다.

   정말, 울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희생하는 극 중의 ‘엄마, 즉 ‘결함을 지닌 주인공’ 앞에서 식민지 국민이 울었듯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울었다’. 관객들은 일제강점기 신파극처럼 ‘울면서 자학적으로 카타르시스’해내고 있었다. ‘엄마라는 사람의 한 인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결함을 지닌 사람’을 말하고 있었으며, 관객들은 ‘엄마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반성하면서 자학’했다. 좋은 배우들과 훌륭한 조명, 음향, 소품 담당들. 그 많은 사람이 정성과 땀을 더해 무대에 올린 것이 관객들에게 ‘죄책감’을 들게 하고 울리는 것이라니……. 그것 밖에 없다니!

  뮤지컬을 보았던 어느 지인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신파가 필요해’. 일제강점기 우리에게 신파가 필요했듯 우리 시대에도 신파가 필요했던 것일까. 현대인에게는 ‘울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돌려 말하면 ‘내 영혼’을 ‘카타르시스’할 것이 절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멀게 보자면, 신파라는 것이 원래 당대의 대중심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했으니 울분 가득 했던 일제강점기처럼 뭔가 알 수 없는 울분이 우리 시대에 쌓여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와 아폴로 사이에서

   정작, 문제는 ‘눈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물만 나게 하는 뮤지컬’이라는 것에 있다. 이 정도의 공연물이라면 ‘눈물’ 뒤에 ‘무엇인가’가 있어야 했다. ‘뮤지컬’을 ‘확실한 줄거리에 음악·춤·대사가 있는 감상적이고 오락적 성격을 띠는 연극’이라고 정의하고 그저 감상과 오락만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감상적이고 오락적인 뮤지컬은 뮤지컬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쇠퇴했다.

  니체의 정의에 따른다면, ‘뮤지컬’은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인 ‘음악’과 아폴론적인 예술 ‘극’이 결합한 형태다. 물론 음악 중에는 제례악이나 군악처럼 아폴론적인 것이 있지만 뮤지컬에서 사용하는 음악이 대부분 감성에 기반을 둔 노래이니 디오니소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이 즉시적/감상적/질서 잡히지 않은 미(美)를 향하고 있다면, 아폴론적인 예술은 이성/절제와 균형의 미(美)를 추구한다.

  ‘극’이라는 것이 즉시적이며 감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제와 균형을 잡기 위해 처음부터 기획되기 때문에 극은 대표적인 아폴로 계열의 예술에 속한다. 조명과 음향, 배우들의 시선과 동작 하나 하나도 모두 정확하게 계산된 연출이 필요하다. 잘 계산되어야만 하는 공연물인 뮤지컬이 ‘눈물’만 나게 하고 ‘더 이상의 무엇인가’가 없어 기획의도를 의심해볼 수밖에 없었다.


눈물, 그 너머

  프랑스 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그의 저서 <구별짓기>를 통해 “개인 간 문화 취향의 차이가 형성되는 데는 소속 계층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이 문화 취향의 차이는 학력, 화폐 등과 더불어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데 주요한 권력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현대사회 문화 취향의 차이로 생성되는 권력이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은 문화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능력, 문화의 장에서 행사할 수 있는 상징적 권위, 공공 제도가 부여하는 권력의 행사, 교육과 계급에 의해 축적된 문화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데, 현대 사회의 문화자본은 개인의 취향이 경제 자본을 만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말이 의미하듯 생성된 문화 자본은 자신과 다른 미적 취향을 배제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현대의 대규모 공연 예술이 ‘문화적인 취향을 통해서’, ‘경제적인 이익’만을 위해 생산될 때 예술 영역은 수직계열화되고 독점화될 수밖에 없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수백 억에 거래되면서 문화자본이 될 때 자본화되지 못한 무명의 화가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이중섭의 작품을 모작해 팔 결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 생산자가 대중의 보편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자본을 축적할 의도를 가진다면, 좋은 공연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기획 과정에서 자본 축적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현대의 공연물은 어쩔 수 없이 문화자본 형성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공연 예술인 뮤지컬이 ‘눈물’만 나게 하고 ‘더 이상의 무엇인가’가 없이 ‘자학적인 카타르시스’만을 연출했다면, 연출가는 “예술작품이 윤리나 정치 같은 인식과 의지의 문제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무시함으로써 윤리나 정치 판단에 개입”하게 된다는 대표적인 현대 미학을 몰랐거나, 혹은 무시한 것이 된다.


   … “미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미와 예술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문자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인식과 의지에 기초한다. 즉 지식과 윤리, 정치 등이 예술작품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일정한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사실과 윤리나 정치 같은 인식과 의지의 문제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그것들을 무시함으로써 윤리나 정치 판단에 개입하게 된다. 아름답기 때문에 옳고 맞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은 죄의 흔적을 갖고 있다‘ …

- 자네트 월프 (<<미학과 예술사회학>>(1988/1997 이론과실천) 중에서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울’었다. 정확하게는 울 뻔 했다. 그러나 그것밖에 없었다. 잘 연출된 공연이 주는 것이 ‘눈물’밖에 없을 때, 그 이상이 없을 때 ‘눈물’은 그저 어떤 의도(자본 축적)를 위해 이용하는 ‘도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100년 전의 신파극처럼 ‘자학적인 카타르시스’가 의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만들다보니 ‘눈물’밖에 없는 공연물이 된 것일까.

  이 진퇴양란의 자리에 뮤지컬 <엄마가 필요해>가 서 있다.






2011/05/17 18:38 2011/05/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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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키치(Kitsch) 디베이트
-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케빈 리, 한겨레에듀)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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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 리가 지은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디베이트의 기법과 형식만 다룰 뿐, 디베이트 원론과는 동떨어져 있다.



     케빈 리(한국명 이경훈)가 지은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를 읽었다. 이 책은 ‘키치(Kitsch)’*다. 일부러 어색하게 꾸민 패션이나 복고풍의 유행, 혹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오늘날 예술장르로서의 ‘키치’가 아니라, 19세기말 독일에서 저급한 미술작품을 가리키는 원래 의미의 ‘키치’다. 19세기말 유럽에서는 돈을 벌 만큼 번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귀족들의 문화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예전에 귀족들이 하는 것처럼 그림이나 조각 같은 미술품을 구입해 집안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벌었다고 해서 예술적 심미안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다. 미술품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안목이 없었던 그들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미술품을 마구 사들였다. 이것이 키치문화의 시작이었다. ‘키치’는 저급한 미술품만 아니라 조악한 패션이나 취향을 뜻하는 말이다. ‘세계에 대한 가치관과 신념을 길러준다’는 토론의 본원적인 목적에 충실한 디베이트가 원본이라면, 그의 디베이트는 ‘키치’다.


    그가 말하는 ‘디베이트’는 그의 말대로 ‘종합예술’이다. ‘일주일 걸리던 자료 읽기가 30분이면 완성’되고(36p), ‘디베이트 주제를 일주일에 하나씩 바꾸면 1년이면 약 50개의 주제, 4년이면 200개의 주제’를 다룰 수 있는데 4년 정도하면 ‘모르는 것이 없게’ 되어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35p). 스피치 능력이 향상되고(35p), 듣기 실력도 늘어나는데(37p) 이 대목에서는 ‘청력이 개선된다는 말이 아니’라고 점잖게 설명도 덧붙여준다(37p). 에세이 연습이 되고(38p) 같은 투자, 같은 시간 대비 5배 교육 효과를 올릴 수 있다(39p). 여기에 리더십, 인성, 자원봉사, 시민의식까지 기를 수 있으며(40p~47p), 대학 갈 때도 도움된다(49p~54p)고 한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디베이트’를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한정시켰다고는 하지만, 토론의 원론적인 효과인 ‘지식을 신념화·가치화한다’는 구절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토의(討議, Discussion)’와 ‘토론(討論, Debate)’의 의미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디베이트를 디스커션(Discussion)과 비교해서 설명하곤 했’지만, 디스커션이나 디베이트나 모두 한국말로 번역하면 토론이라 불리기 때문에 그냥 영어로 ‘디베이트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다(26P). 나아가서 타협과 협상을 전제로 상정안을 결정하는 것이 토의, 신념을 토대로 사안을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토론이라는 원론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형식이 있다’, ‘없다’의 문제로 토론과 토의의 차이를 설명하고 만다(26p~27p). 어쩌면 그의 책이 아니라 그 자신이 ‘키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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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의 <서당도>. 우라나라 전통적인 교육은 토론식 수업이었다.


 

    그는 ‘한국사회, 토론의 전통이 없었다(55p)’고 오해도 한다. 초등학생에게 논리적인 오류를 설명할 때 해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설명하기에도 어이가 없다. 가까운 과거 조선시대 성균관 교육이 토론교육이었으며, 기초 교육을 맡았던 서당이 토론수업이었다. 훈몽자회나 동몽선습, 더 나아가 천자문**의 글자 수는 천 자가 되지 않았지만, 그 옛날 서당의 훈장은 1년여에 걸쳐 글자를 가르쳤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의 글자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天)이 왜 검으며(玄), 땅(地)이 왜 누런지(黃)를 설명하고 학동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토론의 전통이 없어진 것은 이른바 개화기 때 ‘신교육’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그는 ‘키치’가 맞다.



     "… 과거의 어학 교육은 어학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은 영어 교과서는 'I am a boy. You are a girl'로 시작되거나 심지어는 ‘I am a dog. I bark'로 시작되는 교과서도 있었지요.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누님들의 영어 교과서를 가져 오라고 해서 그 뜻을 물어보시고는 길게 탄식하셨지요.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천지현황‘과 ’나는 개입니다. 나는 짖습니다‘와의 차이는 큽니다 … "


(신영복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돌베개, 2004년) 중에서)


 

    그래서 그는 디베이트의 원론에 접근하기보다는 형식에 집착하고 순서에 집착한다. ‘자, 이제 다시 디베이트 원론으로 돌아간다. 디베이트에서 디베이트 포맷(Debate Format, 디베이트 형식)이 문제가 된다’(하략, 93p)고 하면서 ‘링컨 다글러스 디베이트’, ‘의회식 디베이트’,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 ‘폴리시 디베이트’, ‘미국 의회식 디베이트 등의 다양한 형식을 소개해 준다. 토론대회를 말하는 것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토론의 형식은 토론이 가지는 원론적인 목적(지식을 가치화하고 신념화시킨다)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토론의 형식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평가를 하고 순위를 정하는 것은 토론대회의 중요한 포맷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일 순 없다.


   그가 실제로 한 디베이트 주제도 ‘키치’다. ‘교복착용(224p)', '남녀공학 찬반’(246p), '체벌‘(157p)' 등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미 10여년 전에 토론한 내용을 리바이벌한다. 이들 주제는 이미 많은 찬성논리와 반대논리가 세워져 있고, 웹 검색 한 번만으로도 엄청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해묵은 주제들이다. 이 주제로 디베이트를 한다면, 토론자의 생각이나 신념,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 조사 여부, 지식의 축적 정도, 논리적인 말하기, 반박하는 법 등의 외면적인 요소만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어 결국 형식, 즉 그가 말하는 '포맷' 중심으로 디베이트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식을 가치화하고 신념화해 세상에 대한 바른 시선을 길러준다는 토론의 원래 의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왜 그는 토론의 원론적인 가치를 버리고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 정도로 토론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래서 그는 ‘키치’일 수밖에 없다. 토론의 원론이나 그 고유한 성향을 고민하고 분석한 것이 아니라 그저 평가나 결과에 치중하는 얄팍한 미국식 토론방식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아, 이 말은 해야겠다. 저자는 <부록4>(290p~295p)>에서 ‘한국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극성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디베이트 발전에 낙관적’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2011년에는 디베이트 붐을 확 일으켜 한국의 대세로 굳히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지식을 신념화하고 가치화하는 ‘토론’이 아니라 교육 방편과 사회적인 성공을 하기 위한 툴(Tool)이 되는 그의 ‘키치 디베이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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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치(Kitsch) : 독일어인 키치는 원래 ‘낡은 가구를 주워모아 새로운 가구를 만든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파생된 verkischen이라는 동사는 ‘은밀히 불량품과 폐품을 속여 판다’, ‘다른 것으로 속여 물건을 강매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키치라는 말 속에는 원래 ‘윤리적으로 옳지 못함’ 또는 ‘진품이 아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단어가 ‘조잡한 물건’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60년 무렵 독일 남부에서였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토산품을 본뜬 전등갓이나 토인의 가면, 토속적인 액세서리 등 모든 조잡한 싸구려 장식품들을 뜻했다. 그러다가 차츰 실물보다 크거나 작은 복제품, 소재를 회반죽이나 플라스틱으로 모조한 것, 형태를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하거나 아니면 어울리지 않게 조합한 것, 값비싼 진품을 모사한 복제품이나 모조품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가령 대학로나 홍대 앞 거리, 동화 속처럼 꾸민 가게 안에 촘촘히 진열된, 조잡스러운 액세서리나 간단한 생활용품들, 진짜 보석은 아니면서 플라스틱이나 수지(樹脂) 같은 것으로 보석을 흉내 낸 가짜 물건들, 예뻐서 사갖고 집에 오면 언제고 버리기 십상인, 그러나 저렴한 가격에 한 순간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물건들, 이것이 바로 키치(Kitsch)다.


     ** 천자문(千字文)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자문>을 천 자의 독립된 한자(漢字)를 모은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낱낱 글자가 아닌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하늘 천(天), 땅(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하듯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인 것이 아니라,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홍황(宇宙洪荒,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하는 식으로 여덟 글자를 한 묶음으로 125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에게 <천자문>은 낱낱 글자를 익히는 교재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신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는 철학서의 하나다.








2011/03/04 20:20 2011/03/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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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이우



  한국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는 천연자원(the most undervalued natural resource)’은 무엇일까.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여성'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 잡지는 한국기업들이 여성을 차별하는 틈새를 이용해 외국기업들이 고학력 한국여성들로 돈을 벌고 있다고 하면서 이를 ‘성(性) 차익 거래(Gender arbitrage)’라고 명했다. 성(性) 차익 거래(Gender arbitrage)란 일자리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보수도 적은 한국여성들이 한국 내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높은 수익성을 내는 자원이 되고, 외국 기업들이 이를 이용해 낮은 임금으로 그 여성들을 고용해 성차별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는 '한국은 성 차익 거래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고 있으며 한국의 직장은 성 차별적이라며 냉소했다'는 미국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조던 시겔 교수의 말도 함께 싣고 있다.(조선일보 2010년 11월 2일자 A26면)

  이 글은 여성을 경제적인 자원(resource)으로 인식하는 ‘물신주의(物神主義 Fetishism)’를 담고 있어 씁쓸하다. 사람을 경제재로 바라보고, 웃음과 슬픔이라는 감정 표현마저 노동으로 만드는(<감정 노동 The Managed Hear. 앨리 러셀 혹실드 저. 이매진 2009),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몸과 우정과 사랑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마저 상품화하고 거래로 만드는(<친밀성의 거래(The Purchase of Intimacy. 비비아나 A 젤라이저 저. 에코리브 2009) 현대의 물신주의적인 시선 앞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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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오래된 미래>를 읽었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어를 연구하기 위하여 1975년 라다크에 갔다가 그곳에 매료된 스웨덴의 언어학자인 ‘헬레나 노리베리’가 16년 동안이나 라다크를 드나들며 그곳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 그러나 다가올 시간’이다. 아직 오지 않았는데 ‘오래 되었다’는 이 역설은 ‘미래의 행복은 오래된 라다크에 있다’는 메타포(metaphor, 은유)를 담고 있다.

   ‘라다크’는 인도 최북단 카라코람과 히말라야 산악에 끼어있는 고원 지대로 지역적으로는 인도에 속해 있지만 문화·종교적으로는 이웃 티베트와 가깝다. ‘라다크’라는 이름이 ‘고갯길이 있는 땅’이라는 티베트의 말에서 나왔듯이 라다크는 커다란 산맥들 사이의 고지대 황무지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은 자연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연환경이 좋은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햇볕에 탈 듯이 뜨겁고,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자연에 감사하며 자급자족하면서 행복하게 산다.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재순환시켰다. 물은 눈을 녹여 사용하였고, 소의 똥은 말려서 집을 지을 때 재료로 이용하고 불을 지피는 연료로 사용한다. 모래로 비벼서 빨래를 하고 가축들이 한 곳의 풀을 많이 뜯어먹지 않게 날마다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라다크에는 오염이 없고 범죄가 없었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나눠먹었으며 자기 어머니만큼 나이든 여자는 ‘어머니’, 자신의 형제뻘이 될 법한 사람들은 ‘형제’라 불렀다. 모든 활동은 아이에서 노인까지 함께 참여했다.

  일 년 중 그들이 실제로 일하는 기간은 4개월. 나머지 기간 동안은 대부분을 잔치와 파티로 보낸다. 그래서일까. ‘질병은 이해의 결핍에서 생긴다’는 라다크의 한 의원의 말처럼 이들은 건강하다. 병이 나도 심각한 경우는 드물었다. 생활 패턴이 느슨하고 편안했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척박한 환경 탓에 초라해 보이는 생활이었으며 서구에 비해 영아사망률이 높았다.

  1975년 인도정부는 라다크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토 분쟁이 일어나자 라다크를 외국인에게 개방한다. 라다크에 관광객들이 밀려왔고, 라다크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 알아갔다. 자급자족 사회는 해체되었으며 개인주의·물질만능 풍토가 자리 잡았기 시작했다. 농사는 돈벌이 산업이 되고, 돈을 벌지 못하는 ‘조’ 농사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웃끼리 협동하는 대신 돈을 주고 인력을 사고 사람들은 편리한 생활, 더 많은 돈을 찾아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갔다. 마침내 라다크 사람들은 현란한 서구문화에 젖어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혐오스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들만의 자급자족을 벗어나 세계경제 체제의 일부로 편입된 라다크는 자신들의 전통 가치를 잃어 갔다.

  이제 라다크에는 폭력, 문명병, 서구적 성인병 등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서구의 도시들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건물, 소똥과 쓰레기가 늘려 있는 지저분한 거리에서 삶을 살아간다. 대신 최신식 의료시설과 교육시설이 들어섰으며 도로가 생겼다.

  개방되기 전까지 라다크에서의 보리 1Kg은 그냥 보리 1Kg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간 지속되어온 보리 1Kg에 대한 라다크 사람들의 인식은 개방하고 불과 12년만에 ‘보리’에서 ‘상품’으로 바뀐다. 호지가 라다크에서 만난 그곳 사람 체오앙 팔조르는 1975년에 “여기에 가난 같은 건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서구식 개발이 한참 진행된 1983년에는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나 가난해요”라고 말했다. 모든 경제활동에서 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을 우선 순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철학자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사물의 가치가 ‘사용’에서 ‘교환·상징·기호’라는 상품가치로 바뀌고 사람들은 상품을 욕망하게 된 것이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년 10월 25일 ~ 1964년 4월 23일)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을 통하여 ‘자본주의가 상품화할 수 없는 것들 또는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상품화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불안정요인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치인 노동능력을 상품화함으로써, 제도와 신뢰의 표시인 화폐를 상품화함으로써, 만인이 공유해야 할 자연을 상품화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불안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며 경제가 사회를 지배할 경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어쩌면 오래 전의 라다크가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개방 이후의 라다크는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한 사회이면서 현재 우리의 모습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호지는  ‘미래의 행복은 오래된 라다크에 있다’며 '행복할 수 없는 현재'를 건너뛰어 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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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조선대학교 독서캠프 <READER & LEADER> 북 브리핑용으로 쓰여졌습니다.






 

2010/11/10 23:34 2010/11/1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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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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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자유민주사회에서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과 이견이 난무하는 이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 책이 ‘명쾌하게 대답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독자는 ‘명쾌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스럽다’. 이 책을 읽어본 대부분의 CEO들은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대학생들은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고 ‘정의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고 말했다.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정의(justice)라면 정의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마이클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등 고대부터 시작해 근대까지의 철학을 토대에 놓고 ‘행복 극대화(전체의 행복의 강조하는 이론), 자유(개인의 권리 존중을 강조하는 이론)’, ‘미덕’을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삼았다. ‘태풍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생활재의 가격폭리처벌법에 대한 찬반 논쟁’, ‘이라크 전에 참전한 군인 중 상이군인 훈장 수여 대상의 자격에 대한 국방부의 선택은 옳았는가에 관한 논란’ ‘구제금융을 둘러싼 논쟁’ 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사례로 들면서 각각 ‘행복 극대화’와 ‘개인의 권리 존중’, ‘미덕’이라는 기준에서 찬반입장을 제법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문제는, 찬반 입장 모두가 정의인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그 어느 것도 정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마이클 샌델이 규정하고자 했던 ‘정의(正義, justice)’는 철학자들에게도 골칫거리였다. 울피아누스는 정의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려주고자 하는 항구적인 의지’라고 했고, 존 롤스는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이 평등’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의를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구분했다. 평균적 정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배분적 정의’는 ‘각자가 개인의 능력이나 사회에 공헌·기여한 정도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분이 되는 평등이라니! ‘정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 책에서처럼, ‘정의’의 개념이 ‘행복 극대화’와 ‘개인의 권리 존중’, ‘미덕’이라는 관점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면 ‘정의’는 있는 것인가, 혹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한 것인가. ‘정의(正義, justice)’란 관계를 전제로 한다. 언어적으로 말한다면 불완전명사(의존명사)다. 명사처럼 완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명사처럼 띄워 쓰지만 홀로 떼어 놓으면 아무런 내용도 갖지 못한다.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는 것, 그것이 ‘정의(Justice)’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지역과 지역 사이, 단체와 단체 사이의 관계를 떼어놓고 ‘정의(正義, justice)’를 말할 수는 없다. ‘그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할 때 ‘정의롭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그 사람과 외부가 관계하면서 생기는 부차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그것이 ‘정의(正義, justice)’다.
 
     그래서, 관계의 양상이 변하면 ‘정의’도 달라진다. A에서 바라보는 정의와 B에서 바라보는 정의는 다르다. 미국이 ‘정의’를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의’로운 행동이겠지만 이라크의 입장에서 보면 ‘정의’롭지 않다. 누아르의 세계에선 의리가 정의이고, 활빈당은 탈취가 정의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이 ‘자유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인 때도 있는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가?’, ‘도덕을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개인의 권리와 공익은 상충하는가?’라는 테제를 논제로 삼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사실,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근대철학이다. ‘진리란 무엇인가’로 시작한 근대철학이 끝내 ‘진리’가 무엇인지 규정하지 못 하고 막을 내렸듯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 공허하다. 근대철학이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테제로 철학을 딜레마로 빠뜨렸을 때 철학자들은 ‘진리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테제로 바꾸면서 현대철학을 열었다. 그럼, 물음을 바꿔보자. ‘정의’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의는 ‘정의’라는 모토를 앞세워 ‘정의롭지 못한 것’을 구분하고 제거하거나, 혹은 어떤 행동을 권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법이나 제도 혹은 제도나 규칙 등 합목적적 질서체계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정의’는 그 ‘목적’에 잘 부합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토는 대부분 지배 원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헤게모니’로 작동한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를 규정하는 기준의 하나인 ‘행복 극대화(전체의 행복의 강조하는 이론)’는 ‘옳고 그름의 척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도덕과 입법의 원리 입문>)이라는 ‘제레미 벤담’의 ‘모토에 따른 것이다. 공리주의로 불리는 이 테제 또한 합목적적 질서체계의 목적에 잘 부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보일 뿐이다.
 
    벤담이 주창한 이 공리주의는 ‘행복을 계량화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벤담이 행복을 수량화하겠다고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생산성’, ‘순수성, 연장선’이란 우스꽝스러운 척도를 만들었지만, 벤담의 사상을 전수받았던 ‘스튜어트 밀’조차 문제점을 깨닫고 개선하려고 했다. 행복을 수량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행복을 수치화하기는커녕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사람이 많은가,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가’라는 문제처럼 단순한 수치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현대철학에서의 공리주의는 '지배 원리로 작동하면서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든 도구로 삼아 사람을 감시하고 교육해, 질서를 만들고 유령처럼 군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의 기준으로 내세운 ‘개인의 권리 존중’이나 ‘미덕’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권리란 무엇인가?, ‘미덕은 무엇인가’라는 테제로 바꿔보자. 이 또한 저마다 해석이 달라진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기준 삼아 ‘정의’를 규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가.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는 가변적인 자로 물건의 길이를 잴 수는 없다.

     이렇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오래 묵은 중.근대의 철학적 담론들 중에서 자유민주사회(자본주의)에 잘 영합하는 부분만을 취하여 현대사회의 사례와 적당히 배열하고 알맞게 버무려 놓은 것이다. ‘행복 극대화, 자유’, ‘미덕’이라는 뭔지 모르는 것들을 기준 삼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에 답하지 못했고, ‘정의’란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 책은 ‘정치철학’이라는 ‘실용주의’ 관점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정의(justice)'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하고 각자의 관점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 버린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아메리카적이다. 이 책은 미국이 세계2차 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일본을 대상으로 첩보 활동을 하고 발간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나 단순히 인간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생물학 중심으로 전 학문을 통합시키자는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책 <지식의 대통합 통섭>을 떠올리게 한다. 철학이나 문화인류학, 심지어 물리학(오펜하이머 사건)과 같은 학문을 어떤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실용주의 냄새가 짙다.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마이클 샌델이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인 ‘행복 극대화, 자유’, ‘미덕’이 권력을 유지하고 영속하기 위한 헤게모니로 이용될까 싶어 걱정스럽다.



 
 
 
2010/10/19 23:13 2010/10/1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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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중의법
- 황석영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2010)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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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2010)은 중의(重意)의 페스티발이다. 중의이란 하나의 말을 가지고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 중의를 함축하고 있는 문장이나 단어는 파생적인 의미나 유사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개념과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중의법의 대표적인 사례가 성삼문의 시조다. 성삼문이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 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난 것가 /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해 났다니’라며 시를 읊었지만 이 때 ‘수양산’은 중국의 '수양산'과 함께 '수양 대군'을 뜻하고, '채미'와 '푸새엣 것'은 직접적으로 고사리와 채소를 의미하지만 이와 함께 '수양대군이 주는 녹'을 뜻한다. 이 시조 때문에, 수양대군이 불편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설 <강남몽>의 중의법은 ‘나’, ‘너’,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


‘강남’

  이 소설의 지역적 배경은 ‘강남’이다. 황석영이 대하소설 <장길산>을 탈고한 8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강남형성사’를 쓰겠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으니 이 소설은 그 결과물. 황석영은 근/현대사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소드들을 모아 서사의 힘과 묘사의 힘으로 생생하게 ‘강남형성사’를 그려냈다. 그러나 말이 형성사이지 사(史)가 아니라 ‘삶’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부를 축적한다. ‘알면서’,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 어둠 속을 질주한다. 일제의 정탐에서 미정보국 요원을 거쳐 기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김진은 영악한 처세와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강남 개발 시기에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기 위해 심남수는 권력과 야합하며, 조직폭력배 홍양태과 강은촌도 그들 세계에서 생명과 맞먹는다는 ‘의리’를 버린다. 시골의 여상을 졸업한 뒤 고급요정과 쌀롱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되는 박선녀 또한 오직 ‘돈’을 향해 달려간다. 그들에게 모럴(moral, 도덕, 윤리)은 의미가 없다. 오직 부를 위해 달리는 군상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며 ‘강남’을 ‘형성’한다.

   ‘강남’은 한강의 남쪽이라는 지역명칭일뿐 아니라 부와 명예, 권력을 욕망하는 이 땅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중의한다. 또 소설가 김훈의 말처럼 강남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만들어낸 지층을 중의하며, 부(富) 축적을 향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우리의 깨진 삶도 함께 중의한다.


‘몽(夢)’


  황석영은 이 지층의 단면에 ‘몽(夢)’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스스로 ‘몽자류(夢字類) 소설’이라고 말했다. 몽자류 소설은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소설 형식의 하나. 고전문학사를 돌아보면, 고려시대 소설은 가전체 소설이, 조선시대 들어와서 마음(心)을 의인화한 천군계(天君系) 소설과 동식물을 의인화한 소설, 그리고 몽자류(夢字類) 소설 등으로 다양화되는 모양새를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 임제의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남영로(南永魯)의〈옥루몽(玉樓夢)〉등이 몽자류 소설이다. 몽자류 소설은 대부분 꿈에 드는 입몽(入夢)과 깨달음을 얻고 꿈에서 깨어나는 각몽(覺夢) 구조로 이루어진다. 꿈에서 깨어날 때 ‘각(覺)’을 얻는다. 꿈에서 깨어보니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바탕의 봄 꿈’이라는 것이다.

   소설 강남몽을 읽으면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에서 찬탄과 반탁으로 분열된 정부수립, 한국전쟁과 군사정변, 반공이라는 매카시즘 시대를 거쳐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불편해진다. 곧고 바른 길이 아니라 흐트러지고 삐뚤어진 길을 걸었다는 자괴감, 그리고 그 역사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잘 살아온 줄 알았는데 기껏해야 삶이란 것이 집어등을 따라 움직이는 오징어떼처럼 ‘돈’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것이 다였다니! 작가는 제목에 ‘몽(夢)’을 붙임으로써 돈과 권력에 따라 명멸(明滅)하는 삶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보여주고 ‘우리 안팍에 도사린 강남의 꿈을 해체’(최원식 문학평론가)한다. 황석영 스스로 작가의 말을 통해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378p, 작가의 말) 것이라 일갈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여, 부자가 되고 싶은가? 권력을 갖고 싶은가? 그러나 무엇이 남는가? 덧없음이라.’ 몽(夢)! 몽(夢)! 몽(夢)! 몽(夢)은 ‘강남의 꿈’, 혹은 지금도 진행형인 ‘강남으로의 꿈’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중의하며, 또 그 욕망 구조에서 탈주하라는 것을 중의한다.


배역(配役)

  일제의 밀정에서 미정보국 요원을 거쳐 대기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김진, 국밥집 딸로 태어나 고급 요정과 살롱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되었다가 무너진 백화점에 묻히는 박선녀, 70년대 강남 개발 시기에 부동산 사기로 돈을 버는 심남수, 그리고 60년대 말 상경해 북창동과 무교동 일대에 터를 잡고 전통적인 주먹에서 사업과 이권을 쫓는 현대적 폭력조직으로 변신해 주먹계를 주름잡는 홍양태와 강은촌…. 이 주인공들의 삶을 드러다보는 일 또한 불편하다. 권력을 따라 다니며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주인공들이 불편하고 이 주인공들이 다시 만들어내는 권력구조도 편하지 않다. 이것이 불편한 이유는 이미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없다는 불편함이며 돈과 권력을 따라 다니는 이들이 지금의 ‘나’와 무관하지 않으며, ‘지금의 나는 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원론적인 문제에 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어이, 너 말이야, 인생을 어드렇게 생각하나? / 김창수의 느닷없는 말에 김진은 피식 웃었다. / 이거 원, 별을 보구 점을 치는 페르시아 왕자도 아니구. / 야야, 사는 게 다 욕이야. 거럼 욕이디 않구……. /김창수가 중얼거렸고 김진은 신중하게 술잔을 내려다 보기만 했다. / 너나 나나 머 하구 싶어 정탐 노릇했나? 배운 것도 없구 개진 것도 없이 살자구 하다보니까 기랬다.  … ” (151p~152p)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욕’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욕망구조와 다른가.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대부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배운 것도 없구 개진 것도 없이 살자구 하다보니까 그리’(152p) 되었고 그래서 ‘사는 게 다 욕’(151p)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돈과 권력을 따라다닌 것처럼 지금의 ‘나’ 또한 그렇게 부와 권력을 쫓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강남으로의 꿈’을 꾸면서….

  황석영은 소설을 구성하면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실제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이름 몇 자만 뒤틀어 배역을 맡겼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실명 그대로 등장시킨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이며, 이건 가공의 사실이 아니라 실제라고 대놓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 배역들은 이 소설이 허구의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중의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금 ‘나’, 그리고 ‘우리’라는 것을 중의한다.


‘여기 사람 있어요’


  너무 불편해서 독자들이 절망하는 순간, 황석영은 무차별적인 개발의 상흔이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지의 참혹한 현장을 겪어온 임판수 부부와, 그의 딸로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다 붕괴 때 묻혔다가 사투를 벌이는 임정아를 배치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 우리 둘이 꼭 살아 나가서 재밌게 지내자구. / 그래요. 사모님. / 앞으로 꼭하구 싶은 게 뭐야? / 돈 벌어서 내 동생 전동휠체어 사줄 거예요. / 그게 비싼가? / 집두 이사가야 해요. 평지에다 공원 근처에 이사 가면 순아를 데리고 나갈 수도 있고… / 그래, 그거 내가 다 해줄 수 있어. (중략) 나 재력 있는 사람야. (중략) / 박선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임정아가 천천히 말했다. / 네 동생 휠체어를 왜 사모님이 사주죠? 그러구 집두요. 저는 임시직인데요. 우리 부모님은 시골서 올라와서 여태껏 일만 죽도록 하구두 산동네를 못 벗어났지요. / 그러니까 앞으로 잘살아야지. / 그렇지만……. / 정아는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진 마세요. …”(337p~338p)

     산동네에서 어렵게 살면서 걷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휠체어를 사주고 싶은 꿈을 가진 임정아이지만 함께 매몰된 박선녀의 ‘휠체어 뿐만 아니라 집까지도 사주겠다’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렇게 소설의 말미에 작가는 부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임정아를 등장시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중의해 전한다. 임정아는 외친다. ‘여기 사람 있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이 말은 임정아가 구출대원에게 하는 말이지만 황석영 작가는 여기에 다른 뜻도 함께 묻었다. 부와 권력이라는 욕망을 추구하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황석영이 제안하는 앞으로 우리 삶의 모습이다. ‘봐라. 사람을 보지 않고 돈과 권력만을 욕망하는 삶이란 무너지고 만다. 일장춘몽. 꿈이다.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봐라. 여기 사람이 있다’. 이것이 ‘여기 사람 있어요’의 중의며 황석영이 ‘강남몽’이라는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보내보내고 싶은 메시지다.



.......................

 * 이 외에도 소설 <강남몽>에는 작가 황석영이 숨겨 놓은 중의가 많다.  ‘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 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 4장 개와 늑대의 시간 / 5장 여기 사람 있어요’(소설의 목차).  생존이 충분하지 않다면 또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든 길을 가면 어느 곳이든 땅이 있는 것인지, 혹은 개와 늑대는 무엇을 중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과거 누군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길을 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또 누군가 다시 길을 갈 것이다. 길 가는 데 땅이 있겠지만, 이제 돈과 권력이 점철되는 욕망의 땅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좋은’ 땅에 닿고 싶다.


 

2010/09/30 02:12 2010/09/30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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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를 걷다(2)

- 영덕 옹기전수관 · 진주 전수교육관 · 통영 공예전수교육관 -


이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원도권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조사를 마친 일행이 두 번째 탐방으로 가는 곳은 경북 영덕과 경남 진주 · 통영에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관이다. 서울을 떠난 지 다섯 시간.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에서 기인을 만났다. 잠시 들른 청송 야송미술관에서 지역출신 한국화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냈던 한국화가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을 만난 것이다.

야송 이원좌 화백을 만나다

     야송미술관은 이원좌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50점, 국내외 유명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 50여점, 미술관련 서적 1만여 점을 기증받아 2005년 청송군에서 지은 군립미술관이다. 미술관 1층 전시장에는 무토(撫土) 전성근 도예가의 이중투각 백자전이 열리고 있었다. 무토(撫土)라면 ‘흙을 어루만진다’는 뜻. 그가 흙을 만지면, 이중투각 백자가 나온다. 이중투각 도예는 속항아리와 겉항아리 두 개를 만들어 붙이고 겉항아리를 조각을 해 속항아리가 보이게 하는 도예기법. 많은 공을 들여 투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마에서 구울 때 수축률이 맞지 않아 터지는 일이 많은 까다로운 기법이다. 장인이 흙이 가지는 미세한 결 특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완성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동백문이중투각호, 칠보이중투각호 등 약 50점의 백자. 투각되어 겉을 둘러싼 항아리가 속항아리를 내비치듯 우리 마음도 성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행은 이중투각 백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행이 미술관 2층에 올랐다가 상설 전시된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의 산수화에 넋을 놓았다. 벽면 하나를 완전히 장악해버린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 이 산수화의 크기는 높이 6.8미터, 길이 48미터로 현존하는 동양화로는 세계 최대다. 일행들이 마치 산수화 안에 있는 듯 했다. ‘청량대운도’는 봉화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를 모습을 이원좌 화백이 1991년부터 1년여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크거나 작거나 전시되고 있는 이원좌 화백의 산수화에는 모두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봉우리가 있으며 물이 있었다.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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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주왕산 언저리 34번 국도변 청송 야송미술관
    ② 폐교를 이용해 지은 미술관 한 켠에 연꽃이 피었다.
    ③ 무토(撫土) 전성근의 이중투각백자
    ④ 야송(野松) 이원좌화백
    ⑤ 이원좌 화백이 그린 청량대운도와 무릉화운도
    ⑥ 이원좌 화백의 그림에는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산이 있다.


    젊은 시절, 이원좌 화백은 그림이 좋아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아내에게는 남편, 애들에게는 아버지일 텐데 이들을 버려두고 산과 나무, 구름을 따라 물처럼, 바람처럼 흘렀다. 애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입학금이 없다는 아내의 울먹임에 가슴이 먹먹했지만, 돈이 필요할 때면 그림을 알아주는 이름 모를 지인들이 딱 그만큼의 돈을 내놓고 가져가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이원좌 화백은 어쩔 수 없는 그림쟁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보드리야르가 사용, 교환, 기호, 상징이라고 사물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산이 없고 구름이 없고 물이 없으며 바람이 없다. 그래서 사람도 없다. 그의 그림 안에는 산이 있고 구름이 있으며 물이 있었고, 사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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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덕은 물과 산, 그리고 바람의 고장이다. 영덕 옹기전수교육관은 마을과 함께 있고 교육관에 숙박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차로 10여분이면 바닷가에 닿을 수 있어 좋다.




옹기장이 백광훈(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기능보유자)

      영덕은 물과 산, 그리고 바람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물은 대게와 은어를 기르고 산은 송이를 기르며 바람은 전국 최대 크기의 풍력발전기를 돌린다. 산은 흙을 품었고 사람은 흙을 만지며 옹기를 만들었다. 옹기전수관이 있는 경북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는 산과 물이 좋아 예로부터 약 16개의 옹기 공장이 있었고 사람들은 ‘옹기마을’이라고 불렀다.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그 많던 옹기공장이 없어지고 이제 옹기를 만드는 사람이 백광훈 옹기장뿐이지만 올 3월 옹기전수관이 마을 한가운데 들어섰다.

    옹기는 흙을 떠나지 못한다. 흙을 떠나지 못해 전수교육관은 원래 가마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올 3월에 개관한 이 전수관은 1,367㎡의 부지에 연면적 328㎡의 단층 건물로 작업장과 옹기 제작기술 전승보존을 위한 전수교육관, 작품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전통옹기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교육장을 갖추고 있다. 도로를 벗어나 마을과 과수원을 지나야 하지만 그 덕분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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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옹기를 닮은 경북 영덕 옹기전수교육관.
    ② 옹기장이 백광훈(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③ 건조실에서 옹기가 말라가고 있다.
    ④ 영덕은 예로부터 옹기의 고장. 항아리에 <영덕옹기>라는 생산자 표시가 보인다.
    ⑤ 작업실. 옹기 만들기는 무게와 크기의 싸움이다.
    ⑥ 옹기 가마. 13통 가마로 한 번에 약 3천개 정도의 옹기가 들어간다.


    옹기는 흙을 닮아 질박하다. 옹기와 도자 모두 흙에서 나왔지만 옹기가 더 흙과 가깝다. 도자가 세련미를 갖춘 도시적인 느낌이라면 옹기는 질박한 산촌이나 농촌의 느낌이다. 도자가 아기자기하다면 옹기는 넉넉하고, 도자가 작고 가볍다면 옹기는 크고 무겁다. 좁고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도시적인 주거공간이 확대되고 있지만 가볍고 작은 도자보다는 무겁고 투박한 옹기가 더 사용가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덕택에 4대째 옹기를 만들며 살고 있는 옹기장 백광훈은 스스로 ‘돈은 벌 만큼 벌었다’고 대놓고 말했다. 옹기를 만들며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으니 이만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공예품이 사용가치를 잃어가고 있는데 옹기는 아직 사용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사용가치가 있으려면 우수한 도구적 기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에는 유약이 사용되지만 옹기는 나뭇재와 약초를 섞어 비율을 맞춘 잿물을 사용한다. 자기에 사용하는 유약은 구조가 촘촘해 공기가 통과하지 못하는 반면에 옹기는 물 분자를 차단하고 공기 분자를 통과시킬 정도로 성글다. 이 때문에 옹기는 숨을 쉰다. 옹기 안에 음식을 넣으면 잘 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이로울 만큼 잘 숙성되어 김치와 장류 등의 보관용기로는 최적이다. 이 기능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최근에는 과일이나 약초 보관용기로 그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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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체험실. 옹기 체험은 인기가 좋은 편이다.
    ② 교육장. 프레젠테이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③ 체험자들이 만든 작품들. 항아리도 있고 첨성대도 있다.
    ④ 전수교육관 한 켠에서 여름비를 맞고 있는 옹기.
    ⑤ 물레 위에서 말라가고 있는 체험자들의 작품.
    ⑥ 옹기 위에 빗물이 고여 있다.


    질박하고 소박해 편안해 보이는 옹기의 질감도 그 가치를 높이는데 한몫 했다. 옹기의 소박한 형태와 질감은 전통 가옥이나 도시형 구조의 집 어디에 놓아도 어울리는 우리 전통의 미학이다. 이 점에서 특히 옹기장이 백광훈은 영덕의 옹기를 사랑한다. 호남지방의 옹기가 흙을 말라 올리며 붙이는 방식이라면 영남지방의 옹기는 엇갈려 빗는 옹기. 호남지방의 옹기가 아래 부분이 큰 데 비하여 영남지방의 옹기는 세운 달걀의 위부분과 아래 부분을 잘라낸 듯한 이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어 예쁘다.

    투박하고 소박한 질감의 옹기지만 무겁고 크다보니 옹기 제작은 무게와 크기와의 싸움이다. 사용되는 흙의 양이 많아 흙 작업을 할 때면 이웃 주민, 사위와 딸 모두 모여서 작업을 하고, 물레질을 마친 독을 들어낼 때에도 혼자서는 힘들다. 크고 무겁다 보니 엉덩이 살이 헐 정도로 물레를 돌려야 한다. 백광훈 옹기장이 보유하고 있는 가마는 전통식 가마와 개량 가마. 가마 크기도 도자기 가마보다 훨씬 크다. 13통으로 이뤄진 한 가마에 약 3천개 정도의 옹기가 들어가고 불을 넣으면 한 번에 약 보름 동안 불을 때야 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흙일과 물레질을 해 항아리를 만들어 잘 말려두었다가 일 년에 한 번(10월말에서 11월말) 불을 넣는다. 가마는 가마 칸마다 균일하게 온도를 높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불꽃이 적고 숯이 오래가는 참나무보다 일시에 불꽃이 일고 일시에 삭는 소나무가 땔감으로 제격이다. 삶이 불꽃이라면, 소나무처럼 살다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경북 영덕에 있는 옹기전수교육관은 마을과 함께 있고 전수교육관에 숙박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차로 10여분이면 영덕 해맞이공원이나 강구항 등 동해안에 닿을 수 있어 좋다. 마을 전체를 옹기마을로 특화해 옹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전수관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일행은 진주로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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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진양호의 아침. 자리공이 꽃을 피우고 있다.
    ② 모를 생명이 생명을 기른다. 갈대 줄기를 둥글게 말아 만든 곤충의 알집.
    ③ 진양호에서 아침을 맞고 있는 해오라기



장도장1) 임장식 (장도 기능보유 후보자)

    다음날 아침 일찍 일행은 장도장과 두석장을 만나기 위해 진주 전수교육관으로 향했다. 일행이 머물렀던 물사랑 농촌체험농장 옆 진양호는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아직 물안개를 머금고 있다. 새벽녘 걸었던 진양호 언저리에는 이름 모를 생명이 갈대 줄기를 둥글게 말아 알집을 만들어 놓았고 해오라기는 연신 고개를 물 속으로 밀어넣으며 모이를 찾았다. 삶이란 생존을 위해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가. 문화를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체계’라고 했던 인류학자 B.J 매거스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하여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생물을 지배하는 자연선택법칙에 의해 규제된다’고 말했다.

    인간이 자연을 적응하고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는 ‘칼’이었다. 칼은 신체적으로 방어 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이 맹수의 튼튼한 발톱과 이빨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도구. 사용하기 싫지만 사용해야 하는 것. 혹은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용가치로 본다면 칼은 장식될 필요가 없다. 사냥을 위해 사용하는 칼이 아름다우면 어떻고 아름답지 않으면 어떤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칼은 사용가치 중심의 도구인것이다. 그러나 장도(粧刀)는 말 그대로 ‘장식한 칼’. 칼이 장식된다는 것은 기호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칼이 장식되면, 소유한 사람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거나 사회적인 신분을 알려주는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장도의 역사는 길다. 신석기시대부터 석도를 장신구로 차고 다녔고 고구려인들은 주로 신분의 표시로 장도를 패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뿐만 성인에 이른 남녀노소 누구나 장도를 패용해 장도의 사용가치나 기호가치 모두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용가치나 기호가치가 높지 않다. 이미 질 좋고 보기 좋은 현대식 칼이 실생활을 장악하고 있으며 장도를 신분이나 미적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패용하는 사람은 없다. 임장식 장도장 후보는 장도가 조선시대처럼 실생활에서 사용되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장용으로만 구매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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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도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은장도. 임장식 기능보유자 후보는 전통조각기법인 쪼이질 기법을 고집한다. 칼자루와 칼집에 문양을 넣기 위해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린다.


    현대에 와서 장도의 사용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징가치는 높은 편이다. 장도찾는 사람이 많아 만들기 바쁘게 팔려나가고 단기강습생 공고를 내면 하루 만에 마감된다. 그렇다면 장도의 가치는 과거 사용‧기호 중심에서 상징중심으로 성공적으로 이동시킨 전통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주공예전수관에는 전수교육반(매주 수요일과 목요일)과 단기강습반(월요일과 화요일) 4개반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장도 교육은 일대일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교육시킬 수 없고, 전수관도 건축 당시 기능 전수라는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게 지어져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현재 50여명의 교육생을 지도하기에도 공간은 비좁고 전수자는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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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고 임차출 옹의 뒤를 잇고 있는 그의 아들 임장식 기능보유 후보자.
    ② 그가 만들던 은장도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다.
    ③ 화로. 전통 그대로 임장식 기능보유 후보자는 풀무질을 해 도신을 벼른다.
    ④ 손때가 묻은 그의 도구들.
    ⑤ 도가니. 은을 녹여 은괴를 만들고 두드려 얇게 펴낸다.
    ⑥ 모루. 전통 그대로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려 장식을 한다.


    진주의 전수교육관에는 아버지 고 임차출(林且出·76) 옹의 뒤를 이어 아들 임장식 전승자가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고 임차출 옹은 50여년의 세월을 은장도와 함께 살아온 장인으로 장도의 명산지인 울산 병영 출신이다. 형인 장도장 임인출(林仁出) 씨의 공방에서 어릴 때부터 기능을 익힌 임옹은 울산 병영에서 장도를 제작하다가 1969년 진주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장인의 길로 들어섰다. 임차출 옹은 장도의 도신을 벼르는 기법과 전통적인 문양을 은으로 조각하는 솜씨가 뛰어난 장도 기능 전승자였다. 임차출 옹이 타계하고 임차출 옹 곁에서 장도를 배우고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인으로의 길을 걸었던 아들 임장식이 지난 2001년 기능 보유자 후보가 되어 맥을 잇고 있다.

    임장식 후보는 ‘실용가치가 없는 전통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배고픈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40여 종. 하루에 한 개 정도를 만들 수 있지만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것도 있으며 대작은 1년 넘게 걸린다. 기계로 찍어낸다면 몇 분이면 되겠지만 임 후보는 부친으로부터 배운 전통방식 그대로 칼을 만든다. 전통방식인 풀무작업으로 칼날을 세우고 문양 장식도 전통조각기법인 쪼이질 기법을 고집한다. 칼자루와 칼집에 문양을 넣을 때 주로 조각 칼로 파내는 기법을 사용하면 되지만 임 후보는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린다. 사람은 누구나 칼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했던가. 칼이면서도 아름다운 장신구인 은장도를 앞에 두고 일행은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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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석장 정한열(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1호)이 두석 공예. 일행이 만나지는 못 했지만 진주 전수교육관에는 두석장이 입주해 있다. 두석(豆錫)이란 주석(朱錫), 방자 백동(白銅) 등의 합금 금속을 말하며 두석장(豆錫匠)은 두석을 공예품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통영 12공방2)

    진주에서 한 시간여 달려 일행은 한국의 나폴리 통영에 닿았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답게 산과 바다가 가파르게 만나는 풍경이 아름답다. 통영은 소설가 박경리와 시인 유치환, 시인 김춘수, 음악가 윤이상 등 예술인들을 길러낸 예술의 도시이며 조선시대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던 통영 12공방이 있던 전통공예품의 산실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통영에는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 장인의 본거지가 12공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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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 통영(統營)이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답게 풍경이 아름답다. 소설가 박경리와 시인 유치환, 시인 김춘수, 음악가 윤이상 등 예술인들을 길러낸 예술의 도시이며 조선시대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던 통영 12공방이 있던 전통공예품의 산실이기도 하다.


염장3) 조대용(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기능보유자)
 
    통영 전통공예전수관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영시 무전동에 있다. 다른 전수교육관에 비해 시설이 좋지 못하고 주택지에 위치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 전수관은 조대용 염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과 송방웅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두석장 김극천(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과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무형문화재 제55호)가 입주하고 있다.

    염장(簾匠)이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발은 햇볕을 가린다는 점에서 커튼과 비슷하지만 바람이 통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조대용 염장은 아버지에게 배워 발을 엮기 시작했다. 무과 급제 했던 그의 증조부가 손수 발을 엮어 철종 왕에게 진상하여 치하를 받았던 내력이 있을 정도로 대대로 염장일을 해온 집안이다. 지금 조대용 염장은 내년 완성 예정으로 서울 종묘에서 사용할 대발을 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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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통영 전통공예전수교육관. 염장, 나전장, 두석장, 소목장이 입주해 있다.
    ② 염장 조대용(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기능보유자)
    ③ 일행들이 조대용 염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④ 손으로 날줄 하나하나를 일일이 서로 비껴 역어 만드는 통영대발.
    ⑤ 날줄을 교차해 그려내는 귀문(龜文).
    ⑥ 통영대발. 생활공간이 급격하게 서양화되면서 발이 커튼으로 대치되었다.


     통영 대발은 시릿대를 사용한다. 시릿대는 왕대보다 질기고 부러지지 않을 뿐 아니라 마디가 매끈하고 섬유질이 가늘어 발을 엮어 놓고 보면 마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조대용 명장은 변형을 막기 위해 겨울에 시릿대를 채취해 놓았다가 일년내내 사용한다. 통영 대발은 실을 꼬아 문양을 넣는데 문양의 모양에 따라 귀문렴(龜文簾)과 고문렴(苦文簾)으로 나눈다. 이 작업은 날줄 하나하나를 일일이 서로 비껴 엮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발이라고 하더라도 귀문령은 1개월, 고문령은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힘든 일이다.

     발은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오랫동안 발달한 문화였지만 최근 생활공간이 급격하게 서구화되면서 발이 커튼으로 대치되었다. 사용가치가 떨어졌다면 상징가치라도 높아야 할 텐데 발은 아직 그 위상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조대용 염장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만큼 문화가치가 높은 왕릉의 정자각에 분명 발을 걸었던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을 달지 않았다’며 사람들의 무관심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조대용 명장은 전통 명품이 현대적인 디자인과 만나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으로 이뤄낸 성과가 조각보를 이용한 발. 이 발은 조각보를 만드는 침선장과 발을 만드는 염장이 만나 새로운 미학을 만들 수 있다는 모델이 되었고, 전통공예품이 디자인을 만나 기호가치와 상징가치를 획득하고 나아가 사용가치 또한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전통의 발과 전통의 조각보가 만나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발을 보며 일행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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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발의 윗부분. 침선장이 조각보 디자인으로 침선했다.
   ② 조각보를 만드는 침선장과 발을 만드는 염장이 힘을 더해 만든 발.
   ③ 발의 중간부분. 전통적인 통영대발(귀문렴, 龜文簾).


나전장4)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열아홉 청년이 장인이던 아버지의 권유로 나전에 입문하고 10년간 두문불출하며 기술을 연마하고 또 10년간을 전통 나전 작품들을 연구한 끝에 1980년대 이후 한국 최고의 나전칠기 장인으로 자리 잡은 사람, 그가 나전장 송방웅이다. 나전칠기 기법은 자개를 문양대로 통으로 오려내는 ‘줄음질’과 얇게 썰어내어 조각조각 이어서 문양을 완성하는 ‘끊음질’이 있는데 송방웅 나전장은 작업하기 힘든 끊음질 기법만을 고집한다. 이 기법이 전통의 기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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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나전장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② 송방웅 나전장의 설명을 듣는 일행
    ③ 끊음질을 위해 준비된 자개. ‘끊음질’은 자개를 거도(칼)로 짧게 잘라 조각(Chip)을 만들고 이 조각을 문양대로 모자이크하듯 붙여 만든다 .
    ④, ⑤ 끊음질로 만든 나전칠기.


    토태(실톱)가 나전 작업에 등장한 것은 1910년대. 토태가 나오면서 자개를 문양대로 잘라낼 수 있었지만 이전에는 토태가 없었기 때문에 ‘끊음질’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끊음질’은 자개를 거도(칼)로 짧게 잘라 조각(Chip)을 만들고 이 조각을 문양대로 모자이크하듯 붙여 만든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만큼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인지 송방웅 나전장은 나전칠기가 ‘팔려나가면 기쁘기보다 아쉽다’.

     만약 송방웅 나전장이 나전칠기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효율과 경제성이라는 현대적인 생산 원칙에 충실하다면 비교적 작업이 쉬운 ‘줄음질’을 선택했을 것이다. 왜 그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버려두고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않은 ‘끊음질’을 고집하는 것일까.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이 있지만 원칙과 전통을 고수하는 것, 이것은 이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김금철 소목장5) (무형문화재 제55호 전수 조교)

     통영 전통공예전수관에는 효율이라는 경제 원리를 따르지 않는 장인이 또 있다.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다. 소목(小木)이란 대목(大木)에 상대되는 말로 대목장이 건축이나 공정 감리를 하는 데 비해 소목장은 집안에 쓰이는 장롱이나 궤, 책상, 탁자, 문갑 등 각종 목재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전통의 목가구는 못이나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야말로 짜맞추어낸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해가름장맞춤, 갈퀴맞춤, 겹주먹장이음, 나비장이음 등 정교한 이음과 맞춤 작업이 필요하다. 경제적이지 않지만 못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맞추어 놓으면 못을 사용할 때보다 인장강도가 세배나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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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
    ② 나뭇결이 보이는 바탕면을 감싸고 있는 검은 선은 붓으로 그은 것이 아니라, 흑단과 느티나무, 대나무를 얇게 짜맞추어 넣은 것이다.
    ③~⑤ 소복장이 사용하는 각종 공구들.


    또 선 하나를 넣을 때에도 그려 넣지 않고 나무가 갖고 있는 문양과 색깔을 오묘하게 조화시키고 정교하게 짜맞춘다. 느티나무 나뭇결 무늬를 바탕으로 해서 황색은 옻나무로, 흑색은 감나무 흑심을 얇게 잘라내고 붙여 마치 붓으로 선을 그린 듯 정교하게 기물을 만든다. 10년 정도 건조된 나무를 사용하고 대나무, 배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목단 등 나무의 특성을 모두 익혀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목은 우리나라 전통공예 중에서 공정이 까다롭고 어렵기로 손꼽히는 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작업하다보니 아무리 작은 목가구라도 나무 작업에서부터 완성까지 최소 5개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목장에게 정성과 부지런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는 당대 최고 소목장 아래에서 16세부터 소목 일을 배웠다. 톱질을 잘 못했을 때 떨어지는 선생님의 호된 꾸지람이 무섭고 힘들었던 소년이 어느덧 40년 경력 소목장이 되었지만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목리를 살려내는 작품들에 매료되어 아직도 일을 배우던 그때처럼 매일 이른 아침 일을 시작한다.


다시 경계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풀무작업으로 칼날을 세우고 전통조각기법으로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칼을 두드리는 임장식 장도장, 편한 방법을 버려두고 전통을 고집하며 자개를 칼로 짧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모자이크하듯 문양대로 붙여내는 나전장 송방웅,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정교한 이음과 맞춤 작업을 하는 김금철 소목장…. 이들을 뒤로 하고 일행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가치를 중요시하는 현대와 상징을 중요시하는 전통 사이의 경계선. 느림보다는 빠름, 땀과 정성보다는 효율, 작품성보다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용과 교환․기호가치 중심의 이 시대에 왜 이들은 비효율성과 비경제성, 불편함을 인내하고 있을까, 이들의 고집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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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화재청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 컨설팅> 일환으로 무형문화제 전수교육관을 둘러보고 쓴 탐방기입니다.


   

미주 -------

1) 장도장(粧刀匠) :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인 장도의 제작을 담당하던 기능인을 말한다. 장도는 평복에 차는 작은 칼로서, 소도(小刀)·패도(佩刀)·낭도(囊刀)라고도 하는데, 호신과 장신구 겸용으로 사용하는 전통이 오래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손칼로서의 실질적 기능보다는 상징성과 장식성이 강조되어 여인들의 노리개장식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정교하고 화려한 치장의 장도가 다채롭게 제작되었다. 종류는 겉모양에 따라 첨사도·네모도·을자도(乙字刀)·을자맞배기·평맞배기 등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을자도 계통이 가장 일반적이다. 칼자루와 칼집의 표면을 은으로 장식한 것은 은장도, 산호를 이용한 것은 산호장도라 하며, 일반적으로는 먹감나무·대추나무·화류목 등 목재나 쇠뼈를 쓴다. 원래 하나의 장도가 완성되기까지는 소자장(小子匠)·소목장·조각장·백동장(白銅匠) 등으로 분업화된 장인들의 작업을 거쳤는데 현재는 한사람의 장도장이 칼날부터 장식까지 일괄 제작하고 있다.

 2) 통영 12공방 : 통영시의 대표적 12가지 전통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공예품 명칭이 통영 12공방(craft 12)이다. 조선시대 수군 총사령부였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통영에는 통제영에 신발과 망건, 활, 화살촉, 갓, 가구, 금은제품 등 각종 군수품과 공예품을 공급하던 12공방이 있었다. 구한말 통제영은 폐영됐지만 12공방의 맥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나전칠기(송방웅), 두석장(김극천), 소목장(김금철), 대나무발(조대용) 등 명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 염장(簾匠) : 발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발은 여름에는 창문이나 대청에 쳐서 햇볕을 막고 바람을 통하게 하기 위해, 겨울에는 한풍(寒風)을 막기 위해 치는 생활용품이다. 발의 쓰임새는 다양하여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거나 땅에 펴서 농작물을 말리기도 하고, 궁내에서는 수렴청정(垂簾聽政)에 이용될 만큼 독특한 데가 있다. 햇볕을 가리는 데 쓰는 발은 갈대나 대오리를 삼끈이나 실로 엮어 만든다.


 4) 나전장(螺鈿匠) : 옻칠한 기물의 바탕에 자개를 박아 붙여 장식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원래 자개를 박는 나전장과 옻칠을 맡은 칠장이 각기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옻칠의 사용이 점차 적어지자 칠장의 존재는 나전장 기능 속에 흡수되었다.


 5) 소목장(小木匠) : 목제 세간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주로 장롱·궤함·문방구 등 세간들과 가마·수레·농기구 등의 도구류를 만든다. 건축 분야에서는 창호·난간·닫집 등 건물에 부착되는 작은 시설물 제작이 소목장의 역할이었다.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조각장·나전장과 더불어 중상서(中尙署)에 예속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는 일괄하여 목장(木匠)이라 하였는데, 대신 세분화한 수레장[車匠(거장)]·선장(船匠)·통장(桶匠)·표통장(表筒匠)·마조장(磨造匠)·풍물장(風物匠)·안자장(鞍子匠)·목소장(木梳匠)·목영장(木櫻匠)을 따로 두었다. 조선 초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에 쓰이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후기에 들어와서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고 종류도 늘어나 지역적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2010/07/27 16:22 2010/07/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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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를 걷다(1)

- 강원도 원주 나전칠기 공방 · 횡성 도자전수교육관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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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흙과 물, 바람과 나무의 미메시스(mimesis)를 섞어 전혀 경제성이 없는 전통 기법으로 만든 나전칠기가 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우리나라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이고, 그의 기능을 보전하고 전수하기 위해 국가는 전수교육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반인은 전수교육관을 모르고, 기능보유자는 ‘살기 힘들다’. 욕망의 집어등처럼 ‘돈’을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우리에게 무형문화재와 전통공예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일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공예부문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를 위해 길 나서는 일행의 고민이다.


나전장1) 이형만(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강원도 횡성의 도자전수교육관으로 가기 전 들렀던 원주의 이형만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의 공방 역시 ‘생활’의 한가운데 있었다. 일하고 밥 먹고 자는 일상의 한가운데 걸린 ‘전통공예연구소’라는 간판이 설렁하다. 나전칠기를 경제적 가치로만 바라본다면 그는 일을 그만두어야 옳다. 이형만 나전장은 ‘좋은 나전칠기를 만드는데 기쁨을 느껴 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이 안 되니 답답'하다.마음을 바꾸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의 아들은 전수 포기 선언을 하기도 했다. “실생활에 널리 쓰일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일행의 물음에 이형만 나전장은 고개를 젓는다. 생활을 이유로 작품성 없는 상품을 무작정 많이 내놓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생활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나전칠기를 저렴하게 내놓을 수도 없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장인의 정신과 혼이 깃들지 않은 나전이 어떻게 가치를 갖겠냐는 것이다. 이형만 나전장, 이 땅의 많은 예술인들과 장인들이 그렇듯 그도 ‘경계인(境界人)’이다. 그가 가진 기술은 무형(無形)이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것은 나전칠기라는 유형(有形)의 물상이다. 무형의 기술은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유형의 나전제품은‘팔' 수 있지만 시장은 이미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현대적인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경계선에 서서 이 땅의 장인들이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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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이형만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② 일행에게 나전칠기 제작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이형만 나전장
    ③ 그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공구들.
    ④ 나전 도안을 조개껍질에 붙이거나 떼어낼 때 사용하는 인두
    ⑤ 나전을 붙이는 아교가 중탕되어 이형만 나전장 옆에 놓여 있다.
    ⑥ 패각을 다듬는 이형만 나전장의 작업대. 실톱이 가지런하다.



     그의 서재에는 그가 직접 그린 400여점의 문양이 보관되어 있다. 이 문양이 나전일의 출발점이다.  이 문양을 전복껍질 위에 붙이고 문양대로 얇게 썰어내면서 일이 시작된다. 썰어낸 패각을 아교로 원하는 위치에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해 잘 말린 다음, 사포로 옻칠을 걷어내면 마침내 나전이 그 화려한 빛을 드러낸다. 전복껍질을 사들이는 일에서부터 모양을 그리고, 깎고, 다듬고, 칠하는 등 약 45여개 공정을 거쳐야 나전칠기가 나온다. 아무리 작은 나전이라고 하더라도 6개월은 걸린다고 하니 현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경제성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자연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지금은 재료 구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제주와 통영을 중심으로 전복껍질이 나왔지만 예전과 달리 현재 국내산을 거의 사용할 수가 없다. 환경이 오염되고 먹거리로 무차별 채취되다 보니 두께가 얇아 나전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나전을 위한 대부분의 전복은 동남아시아나 뉴질랜드 등에서 들여온다. 이형만 나전장은 국내산보다 빛이 좋지 않아 늘 마음에 걸린다.

     나전칠기는 조개껍질을 다듬어 장식하는 나전과 옻칠을 하는 칠 기술이더해 만들어지는 생활용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집은 인상적이다. 방마다 장롱, 화장대, 장식장 등 나전이 화려한 빛을 자랑하고 있고, 입식의 현대성 주방은 나전과 옻칠이라는 전통기법이 만나 은은한 붉은 빛을 뛴다. 이 주색(朱色)은 강렬하지 않아 불편하지 않고 자연의 색이라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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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패각에 도안을 붙인다
    ② 도안대로 패각을 잘라 나무에 붙이고, 옻칠을 한다.
    ③, ④ 잘 말린 뒤 사포로 문질러 낸다.
    ⑤ 서서히 드러나는 나전의 빛깔
    ⑥ 완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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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② 나전장의 안방에 놓인 나전칠기 화장대과 나전장
    ③, ⑤ 일상적인 생활 소품에도 나전이 화려한 빛을 드러낸다.
    ④ 옻칠을 한 주방,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⑥ 이형만 나전장의 서재.



최종호 교수와 함께한 화두(話頭), ‘가능할까’

     공예부문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만든 유형물인 전통 공예를 시장에서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무형의 전통 기법 보존(conservation)과 계승은 그리 힘들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할까?’ 일행은 이 물음을 앞에 두고 2009년 한국무형문화재 실태 조사를 했던 한국전통문화학교 최종호 교수와 밤늦도록 마주 앉아 있었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의 법적인 문제에서부터 국제 기준 등을 브리핑한 최종호 교수는 세계 무형문화유산 선정의 네 가지 요소인 재질·디자인·기법·장소, 우리나라의 문화재 기준인 역사·학술·예술·경관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우리나라 전수교육관 운영의 문제점을 브리핑했다. 그는 대도시에 위치한 전수교육관과 타 지역에 위치한 전수교육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하고 공예기술 분야의 전수교육의 경우 ‘전수 교육의 활성화’, ‘사회 교육의 활성화’, ‘시설물 관리 활성화’, ‘재정확보 방안 수립’ 등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특히, 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중요무형문화재공예작품 유통센터(가칭)’를 건립하여 유통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행은, 전수교육관 시설물 관리에서부터 보수, 기능 전수자 공예품의 마케팅과 상품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의 기법과 기록 방법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간이라는 시설과 환경, 전수교육관 운영 프로그램, 공예품의 마케팅과 상품화 전략, 그리고 나아가 무형문화재 기능인의 기록을 남기는 일…. 무형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유형의 전통공예품을 대량으로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갑론을박(甲論乙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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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욕망의 집어등처럼 ‘돈’을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한다. ‘돈’에 명멸되어 있는 현대인은 ‘상징’보다는 ‘교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마저 사용가치화해야 하는 우리 모두는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선에서 서성거린다.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

      현대철학자 보드리야르2)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사용가치(use value)’, ‘교환가치(exchange value)’, ‘기호가치(sign value)’, ‘상징가치(symbol value)’를 가지며,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입각하여 정돈됨에 따라 각각 ‘도구’, ‘상품’, ‘기호’, ‘상징’의 지위를 취하게 된다3)고 말했다. 다이아몬드를 예로 보자. ‘도구’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다이아몬드는 가장 견고한 광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부술 때 사용할 수 있고 이때 다이아몬드는 ‘사용가치’를 가진다. ‘상품’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물품과 교환할 수 있는 ‘교환가치’를 가지고, 기호의 가치로 바라보면 다이몬드는 가난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부자들의 신분 표시로 사용될 수 있다. 즉 ‘나’는 상류계층에 속하고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는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결혼 예물로 주어질 때는 ‘사랑’을 의미하는 ‘상징가치'를 가진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사물의 가치 중에서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다. 어떤 사물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질 때, 조금 더 양보해서 기호 가치를 가질 때 그 사물은 현대사회에서 유용성을 획득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장이 만들어내는 전통공예품은 어떨까. 오래전 분명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유용성이 사라졌다. 만약 전통공예품이 과거처럼 실생활 속에 쓰이고(사용가치), 다이아몬드처럼 다른 사물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용이나 교환이라는 유용성을 잃어버린 전통공예품의 가치는 최종호 교수의 브리핑처럼 역사·학술·예술·경관적 가치이며,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전통미와 생활 문화를 함축하는 상징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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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②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장송모 자기장. 이제 그의 나이는 여든 둘이다.
    ③, ④ 손때 묻은 장송모 자기장의 책상
    ⑤  문 틈으로 보이는 빙렬자기
    ⑥ 일행이 장승모 자기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자기장4) 장승모(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기능보유자)


   강원도 횡성에서 도자전수교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장승모 자기장(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기능보유자)은 우리나라 전통공예의 상징가치를 획득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가 만든 자기는 여러 차례 국빈(國賓) 선물용으로 사용되었고, 중국 북경의 청화대학 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smithonian) 자연사 박물관, 일본 북해도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니 이때 그의 공예품은 사용·교환·기호의 가치가 아니라 상징의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가치의 중심에는 장승모 자기장이 평생을 걸쳐 재현해낸 전통 균열자기(均裂瓷器)가 있다. 표면에 잔잔하게 금이 간 ‘균열자기’는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존재했지만 현대에 와서 사라져버린 우리의 전통자기 중의 하나다. 도자를 만드는 태토(도자를 만드는 재료인 흙)는 네 가지의 흙이 사용되고 유약은 10여 가지의 돌가루가 사용된다. 이를 비율에 맞게 잘 섞어야 균열자기를 얻을 수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기술이 바로 도자공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이 균열을 재현하기 위하여 도자공 장송모는 강진과 양구 등 방방곡곡 흙을 찾아 다녔고 옛 가마터를 다니며 사금파리들을 뒤졌다. 그 덕분에 전통 자기를 만드는 전통기법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의 도자 역사 등 관련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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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장송모 자기장과 그의 빙렬백자. 조선시대 사금파리에 그려졌던 초충도가 그려져 있다.
    ②~⑤ 전수교육관 내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장송모 자기장의 작품.


     그는 전수교육관을 찾는 방문객에게 우리나라 도자의 역사는 물론 일본의 도자 역사와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하며 ‘일본이 현대 도자의 메카로 알려졌지만 전통 도자는 우리나라가 최고’며 ‘일본 전역을 다 돌아보아도 청자처럼 깨끗하고 백자처럼 소박한 자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또, ‘여주·이천이 중심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강원도가 원류라는 사실도 잊지 말라’며 지역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약 48년 전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연하게 물레질을 시작했다는 장송모 자기장은 82세. 일제강압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모진 역사를 겪은 그가 그 긴 세월동안 부등켜 안은 것이 자기였다.

     그는 자신이 재현한 균열자기에 ‘빙렬백자(氷裂白磁)’라 이름 붙였다. 이 빙렬백자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했던 도자를 만들던 것처럼 강원도의 백토(白土)와 자목(柴木)을 사용해 무광택에 비취색과 회색, 그리고 흰색의 중간색을 띠고 있다. 도자공 장송모는 백토를 찾다가 발견한 조선시대의 사금파리에서 발견했던 초충도(草蟲圖) 문양을 그려 넣었다. 은은하고 청아(淸雅)한 분위기의 백자와 단아한 그의 초충도는 궁합이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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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자기의 재현을 위하여 도자공 장송모는 강진과 양구 등 방방곡곡 흙을 찾아 다녔고 옛 가마터를 다니며 사금파리들을 모았다.


     그의 도자를 놓고 그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가치나 사용가치, 그리고 고상한 미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기호 가치’로만 인식한다면, 우리의 문화정체성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전통공예품이 ‘도구’, ‘상품’, ‘기호’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 이른바 ‘돈’이 되면 좋겠다는 시선도 있겠지만 상징가치가 없는 상품화는 위험하다. 전통공예품이 ‘도구’, ‘상품’, ‘기호’라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강조되다 보면 그 동안 지켜온 전통성과 작품성, 그리고 예술성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에서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용’과 ‘교환’, ‘기호’이라는 경제적 가치만을 갖는 것일까? 이것은 보드리야르, 피에르 부르디외 등 현대 프랑스 철학가와 사회학자들이 관심 있게 다루어온 화두(話頭)였다. 사실 ‘나’를 비롯한 우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은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돈’에 울고 웃는 현대인이 ‘상징’보다는 ‘교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의 고유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고유성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것이다. 교환가치로 인식하는 차와 집은 교환할 수 있지만, 이동수단이라는 차의 고유성과 거주지라는 집의 고유성만을 놓고 보면 교환할 수 없는 것이다.

    고유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는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5) 소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공예품 또한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생활 문화의 미적인 함축이라는 그 고유성 위에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지, 상품 가치를 위해 고유성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용’과 ‘교환’ 가치가 지배적인 현대사회에서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치를 높이는 방법, 나아가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의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좋은 대표적인 방법이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도구’, ‘상품’, ‘기호’라는 상품가치로 유형의 공예품에 전착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무형의 가치에 시선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아무리 많이 유통된다고 하더라도 전통공예품의 전통성·예술성·작품성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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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소에서 만난 꽃양귀비. 고유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는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 소중한 것이다.



    장송모 도자공이 운영하고 있는 횡성전통도자 전수교육관은 체험 프로그램의 활성화와 투어(tour) 등의 프로그램이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실습실, 강의장이 갖추어져 있고 숙식이 가능한 생활관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건이 좋은 편이다. 여기에 장송모 자기장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약 12,800명(약 320회)이 다녀갔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얻어내는 이익이 전체 운영 경비의 약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수익을 높여 전수교육관 운영경비로 사용한다면 전통공예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더라도 자립적인 전수관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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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④ 건조실. 물레질을 마친 자기들이 잘 말라가고 있다.
    ⑤~⑥ 전통가마. 그 옆에 땔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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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② 전수관내 실습실. 전수관을 방문하는 체험 프로그램 잠가자들이 물레를 돌라며 자기를 만들 수 있다.
    ③~⑥ 체험 프로그램들이 만든 작품. 마르고 나면 가마에 넣어 자기를 완성하고 잘 포장하여 체험자들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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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문화재청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 컨설팅> 일환으로 무형문화제 전수교육관을 둘러보고 쓴 탐방기입니다.





미주 -----------------

1) 나전장(螺鈿匠) : 옻칠한 기물의 바탕에 자개를 박아 붙여 장식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원래 자개를 박는 나전장과 옻칠을 맡은 칠장이 각기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옻칠의 사용이 점차 적어지자 칠장의 존재는 나전장 기능 속에 흡수되었다.

2)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 7. 27일~2007. 3. 6)는 대중과 대중문화 그리고 미디어와 소비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의 이론은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0년 프랑스 남부 딩겐에서 태어났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하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1958년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었으며, 전후에는 알지에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였다. 그 후 파리 대학에서 레이몽 아롱의 조교 생활, 릴 대학에서의 강사를 거쳐, 1964년 30대 전반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교수이자 연구주임으로 취임했으며, 교육문화사회센터(1969년에 유럽사회학센터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름)를 창설하여 소장 연구자들과의 공동 연구를 추진했다. 1975년 학술 연구 잡지인 <사회과학연구학보>를 창간,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예술, 문학, 민족, 언어, 취향, 스포츠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1981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강좌교수에 임명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알제리의 사회학(Sociologie de Algjerie)>(1961), <상속자들(Les Heritiers)>(1964), <중간예술(Un art moyen)>(1965), <예술 애호(L'amour de l'art)>(1966), <재생산(La Reproduction)>(1970),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구별 짓기(La Distinction)>(1979), <실천 감각(Le sens pratique)>(1980),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Questions de sociologie)>, <말하기의 의미(Ce que parler veut dire)>(1982), <국가 귀족(La Noblesse d'Etat)>(1989), <자유교환(Libre-Echange)> (1994), <실천이성(Raisons pratiques)>(1994) 등이 있으며, 이 외에 수많은 논문들이 있다.

 3)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4) 자기장(瓷器匠) : 자기를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자기는 흙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인 도자기(陶瓷器, Porcelain)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1,300℃ 이하의 온도에서 구운 것을 도기(陶器 earthernware/pottery)라고 하며 1,300∼1,500℃에서 구운 것을 자기(磁器, porcelain)라고 한다.

 5)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2010/07/21 18:00 2010/07/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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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중심 문화에서 다양성으로
-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역사의 아침, 2009)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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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역사의 아침, 2009)을 읽었다. <<왕을 위한 변명>>, <<조선의 왕>>,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등의 책을 펴낸 저자는 역사학자답게 ‘사실’에 충실해 원경황후, 정희왕후, 인수대비, 인목황후, 혜경궁 홍씨, 명성황후 등 일곱 왕비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냈다. 왕비가 되기 전의 어린 시절, 성장 환경, 친정의 가문 배경까지 다뤄 왕비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의 일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7년 5월 초판을 발행하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13쇄를 찍었다.

      사실, 실록(實錄)이란 한 임금의 재위 기간 동안 그 사적을 기록한 것이라 왕비의 삶이 자세하게 담길 수 없다. 실록은 국가 통치자의 사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보니 이권이 개입될 수 있으며 자칫하면 사화(士禍)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민감해 철저하게 사실만을 기록한다는 원칙에 의해 편찬되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하여 국가의 각종 회의나 모임에 참석한 사관들이 사초를 기록하고, 이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임금이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실록을 편찬한 뒤에는 사관들이 썼던 사초는 세초(洗草)라고 하여 모두 물로 씻어 없애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이렇게 철저한 보안 속에 조선시대 임금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의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처럼 자신의 의견을 더하지 않고 일곱 왕비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써내려 갔다. 조선 왕비들이 주인공이니 ‘조선왕비’, 사관처럼 사실만을 기록했으니 ‘실록’이라 이름 붙여 ‘조선왕비실록’이라는 표제를 달았다. <<조선왕비실록>>은 역사 속에 잘 드러나지 않는 원경황후, 정희왕후, 인수대비, 인목황후, 혜경궁 홍씨, 명성황후 등의 어린 시절과 그녀들을 둘러 싼 사람들의 관계 등을 행록과 행장, 묘지명 등 여러 사료를 고증해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그려내고 있다. ‘조선시대 왕비들의 삶과 당시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진실되고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머리글은 의도를 배제하고 사실만을 말하겠다는 역사학자로서의 신념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사서의 기록이 반드시 그 사실만을 기록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선왕조실록>>조차 사실을 기록한 사초를 바탕 삼지만 왕이 죽은 다음해 춘추관(春秋館)에서 좌/우의정을 총재관으로 하여 편찬되기 때문에 그 편찬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고 비틀려질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의 일화에서처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연과학도 비틀려지는데, 인문학에 속하는 사학(史學)이 온전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서라고 해서 과거 일어났던 수많은 모든 사건들, 존재했던 유?무명의 모든 사람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다. 어떤 사실은 버려지고 어떤 사실은 선택되어 기록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사실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의도적으로 특정 사실만을 나열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계열화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 1892-1982)는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왜곡될 수밖에 없으며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이라고 말하고, 심지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 자체가 불필요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역사는 가치를 가진다. 한 번 정리되고 기록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시 재구성되면서 역사는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가 신명호가 조선시대 왕비의 삶을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을 뿐인 이 책 또한 의도하지 않더라도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책 <<조선공주실록>>(역사의 아침, 2009), <<궁궐의 꽃, 궁녀>>(시공사, 2004), <<조선의 궁궐에서 일했던 사람들, 궁>>(고래실, 2006)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명호가 그 동안 우리나라 역사의 주인공(master)이었던 임금이나 중요 관료들이 아니라 조연(supporter)에 속에는 공주, 궁녀, 일하던 사람들에 주목한다는 것은 지배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메이어(major)에서 마이너러티(minority)로, 단일화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나가는 우리 시대의 방향을 짐작케 한다.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저자의 역사서에서 그 대상이 왕에서 왕비로, 궁녀로 바뀌고 그 책이 대중들로부터 관심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시대정신이 단일화된 지배중심 문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가진 문화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며, 이 시대정신이 저자에게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정의 사실이 집중적으로 나열되고 계열화되면 동시대인에게 봉상스(bon sens, 양식)를 형성하고, 이 약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다시 계열화하며 한 시대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 좋은 예가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의 반응이다. 혹자는 이 책을 두고 남성 중심의 역사와 여성 중심의 역사라는 시각으로 리뷰를 쓰고, 심지어 출판사 서평초차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거의 모든 공은 남성에게 귀속되었고, 그것은 왕비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에서 왕비는 분명 존재했음에도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라고 쓰며 과거 봉상스로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오해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인의 역사 인식도 포함된다. 그 오해의 진원지는 대부분은 과거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역사서에 의지해 단편적으로 바라보거나, 과거의 역사를 당시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으로 임의적으로 조립하고 양식화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과거 우리의 사회를 두고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양식화하는 것이다. 이 일반화는 남북분단 상황, 그리고 산업화를 앞세우던 6,7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가부장적 지배논리를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충효사상(忠孝思想)이 강조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양식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주역은 지배층 중심의 역사 교육이었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에는 과거 조선시대 지배 논리로 이용되었던 유학(儒學)이 놓여 있다.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하고, 열녀비를 세우면서 불사이부(不事二夫)가 강조되었다는 등의 교육을 받고, 당시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다고 양식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도리어 그 반대일 수가 많다. 합목적적 질서체계(合目的的 秩序體系, 법규나 규칙, 규정 등)는 어떤 성향들이 사회 질서를 해칠 정도로 많이 나타날 때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하고 불사이부의 정신이 강조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많은 여성들이 재혼을 하고 비정상적인 사랑이 성행해 사회 질서를 해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신윤복의 그림 중 가장 빼어난 수작으로 꼽히는 ‘단오풍정(端午風情)’에는 가슴을 드러내 놓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여인들 너머 이를 바라보는 남정네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기다림>이라는 그림에는 뒤뜰에서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사대부집 여인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그림뿐만 아니라 이런 사실은 현재 남아 전하는 대부분의 고대가요, 향가, 속요, 별곡에 나타나고 심지어  주류 정통 역사서에도 많이 보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고려사에는 재상인 조석견을 방문한 강윤충을 유혹하는 조석정의 처 장씨 이야기가 나오고 주로 여성들이 먼저 강윤충을 유혹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정한 기준(제사)에 따라 아들이나 딸에게 모두 공평하게 재산을 상속하고, 거의 태반의 남성들이 ‘장가 가서’ 아예 처가에서 생활하던 역사적 사실을 버려두고 당시 지배논리에 맞는 사실만이 나열되면서 과거 우리의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 혹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라고 계열화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 철학자 슬로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우리는 모두 이데올로그’이며 또한 ‘이데올로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일곱 왕비의 삶을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스스로 사초를 기록하던 사관처럼 철저한 고증에 의해 객관적인 사실만을 써내려 갔다. 그러나 잘 반추해 본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이 역사서를 읽는 재미다. 아 참, 잠깐. ‘모든 사람이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는 저자의 첫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2010/07/09 01:58 2010/07/0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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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이 생략한 ‘마지막 문장’

- 정이현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문학동네, 2010)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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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젊은 소설가 정이현이 <<달콤한 나의 도시>>(2006)에 이어 2009년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를 발간했다. 작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작가는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이전 작품에 미치지 못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한강에 남자 시체가 한 구가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라가고 있지만 추리소설다운 서스펜스(suspense)와 스릴(thrill)이 없고 이전 작품에서 보이던 감수성도 드러내지 못했다. 추리소설 형식이라는 이유이겠지만 문장이 밋밋하고 이전 단편소설에서 보이던 탄탄한 구성력도 사라져 헐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주목받는 것은 가족 이야기를 통하여 현대사회 인간관계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소설 속 가족 구성원은 가장 김상호, 화교인 새 어머니 진옥영과 그들의 딸 김유지, 그리고 김상호가 진옥영과 재혼하기 전 부인 미숙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김은성과 아들 김혜성이다. 조용하게만 보이는 이 가족은 소설의 제목처럼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가족들은 얼굴을 마주할 뿐 이야기하지 않으며, 서로 피하지는 않지만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말썽은커녕 걱정스러울 만한 일을 일으켜본 적이 없는 유지의 ‘실종’으로 서로를 ‘알’게 된다.

    장기 밀매라는 불법적인 일로 가정을 꾸려가는 아버지와 ‘유지’를 임신했기 때문에 결혼했지만 주기적으로 예전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새 어머니 진옥영, 이런 가족이 싫어 따로 살면서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딸 김은성과 무심한 척 가족의 일원이 되어 살지만 ‘묻지마’ 방화를 일삼는 아들 김혜성,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늘 외로워하지만 표현하지 않는 김유지…. 이들의 가족 관계는 단적으로 말해 불구(不具)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불구’라는 말 그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가족이라 규정할 수 있는 ‘사랑’과 ‘화목’, 그리고 ‘연대감’이 없다.

    소설가 정이현은 작가적인 감각으로 가족이란 이 불구의 관계망을 드러냄으로써 구부러지고 일그러진, 심지어 깨져버린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망을 캐치(catch)하고 풀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드러내서 어쩌라고? 정작 정이현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작가 정이현은 이 시대 불구의 증후를 찾아냈지만 그 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거나 혹은 밝히지 못했다. 아버지 김상호를 재판정으로 보내고, 딸 김혜성이 자주 방배동 집에 들러 유지를 돌본다는 것으로, 새엄마 진옥영이 씩씩해졌다는 김혜성의 독백으로 소설을 따뜻하게 끝냈지만, 정작 중요한 ‘이들이 왜 이런 불구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독자에게로 밀쳤다. 그래서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이라는 쉼보르스카 여사의 말을 인용하여 작가의 말을 쓴 것일까. 대체 정이현이 5백여 페이지 분량으로 구구절절 이야기하고도 생략해 버렸던 ‘마지막 문장’은 뭘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아포리즘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킬로만자로의 표범’같처럼 혼자 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가혹한 법칙이 작동하는 밀림 속에서도, 사람들의 관계마저 거래되는 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관계망의 기초인 ‘가족’이란 테제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흔히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이야기하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도리어 이 말은 곧 욕망의 집어등처럼 명멸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서 ‘건강한 가족관계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증후는 이미 있었다. 19세기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팽창이 사적인 연대를 손상시키며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현대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은 서양 근대화시기에는 가정이 자본주의를 확립하는 수단이었으며 현대는 자본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생산과 소비의 최소 단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된 <<친밀성의 거래(The Purchase of Intimacy)>>(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09)의 저자 ‘비비아나 A. 젤라이저’는 친밀성이라는 테제로 사회사를 돌아보고 친밀성(가족)과 거래(시장)의 영역이 그렇게 명확히 분리된 것도 대립적인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친밀성과 거래는 구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로 교차되고 연관되면서 삶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매춘이라는 친밀성의 거래는 어느 시대나 있어 왔으며, 룸살롱, 대딸방, 키스방, 아빠방 등 최근 새로운 친밀성 거래 방식이 생겨나는 것은 거래의 영역과 친밀성의 영역이 분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속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다. 가족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관계망 또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젤라이저’식으로 바라본다면, 가족이란 관계 또한 친밀성을 거래하는 하나의 시장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 가문과 가문이 혼맥을 맺어왔으며 최근에는 ‘재벌가계도’란 이름으로 재벌들간의 주고받기식 혼맥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가족의 일원이 친밀성을 거래하면서 얻는 대가는 ‘보호와 보장’ 그리고 ‘기호’다. 소설에서 아버지 김상호가 얻고 싶은 것은 가정이라는 기호(sign)다.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김상호에게 가정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게 해주는 단초(斷礎, 깨어져서 조각이 난 주춧돌)로 작동하고, 온전한 가정을 꾸려가는 성실한 사람임을 표시하는 ‘기호’다. 임신을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를 배반하고 김상호와 결혼한 진옥영이 얻고 싶은 것은 한국 국적 취득과 안정된 생활이며, 딸 김은성과 김혜성이 얻고 싶은 것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의 ‘지원(돈)’이며,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유지가 바이올린에 몰두하는 것은 부모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그것을 서로 잘 알고 있지만 이외의 것은 개별적인 것인 것으로 간주하고 서로 묵인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처럼 ‘너를 모른다’.

    작가 정이현은 ‘사랑과 결혼은 다른 것이다’를 외치며 경제적 능력과 경제적 조건을 찾아 이합집산하는 우리, ‘꽃’ 대신 ‘보석’이나 ‘자동차’를 을 외치는 이 시대의 사랑법과 그 사랑법이 낳은 불구의 관계, 거래라는 시장 영역이 전혀 시장적이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마지막 문장에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이현은 그 마지막 문장을 생략하면서 이 가족을 묵인했다. 사실을 직시한다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불편하지만, 거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주부나 고객의 화대로 생활을 유지하는 매춘 여성이나 다르지 않다. 고객을 웃음과 미소로 대해야 하는 직종군의 일을 두고 최근 ‘감정 노동’이란 말이 생겨났으니 이 웃음과 미소 또한 친밀성의 거래이며, 상대가 기분 좋으라고 남발하는 ‘칭찬’이나 ‘Yes’도 개념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가. 우리도 정이현이 그려내고 있는 이 불구의 가족을 용인(容認)한다. 휘어지고 비틀려 있지만 이해하고 묵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안에서 우리도 모두 공범이기 때문이다.




 

2010/07/05 18:21 2010/07/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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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위험한 ‘통섭’
- 지식의 대통합 통섭 / 에드워드 윌슨 저 / 최재천, 장대익 옮김 / 사이언북스 2009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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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학문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도 생명은 홀로 충분히 가치있고 소중하다(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남이섬 )


      기어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국가 ‘리브리아’에서는 모든 투쟁과 대립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자연과학적, 생물학적, 사화과학적인 ‘통섭’이 시작되고, 투쟁과 대립은 결국 ‘인간의 감정’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래서, 그리하여, 마침내, 기어코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이라는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한다는 법률을 만들고 만다! 리브리아의 국민들은 이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없애는 효과를 가진 이 약을 통해서 인간은 일체의 감정, 개성, 다양함을 상실한 대신 균형과 안정, 평화를 이루게 된다. 이 안정과 균형, 평화의 이름은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뭐,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이쯤되면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라 ‘커트 위머’ 감독의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이퀼리브리엄’은 '균형' 내지 '안정'이라는 뜻이다. 이 안정과 균형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 그래서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을 정기 복용하도록 하고, 책, 예술, 음악 등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금지시킨다. 만약, 이 약을 복용하지 않거나 감정을 느낀다면? 화형에 처해진다.

      그래서 국가 ‘리브리아’의 국민들은 행복할까? 아니, 행/불행을 떠나서 그들의 삶이 풍요로울까? 오늘날 생물학의 석학으로 불리는 ‘에드워드 윌슨’은 책 <<지식의 대통합 통섭>>(사이언북스, 2009)에서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왜?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우며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더 나아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미국 국가과학메달, 국제생물학상, 크래포드상을 수상한 생물학의 석학 에드워드 윌슨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생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심지어 인문학까지 모두 ‘통섭’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통섭의 주체는 생물학이다.

      통섭(Consilience)이란, ‘지식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월리엄 휴얼의 개념이다. 이 통섭은 그저 단순한 각 분야의 동반자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체계의 기초를 다지는 통합을 의미한다. 통섭을 주장하는 석학답게 그의 방대한 지식은 전공인 생물학에만 머물지 않고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과 예술, 사회과학까지 넘나든다. 이오니아의 마법,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계몽사상, 자연과학,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마음,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인간 본성의 적응도, 사회 과학, 예술과 그 해석, 윤리와 종교 등 이 책의 11개의 섹션은 그의 통섭을 증거하고 있다. 그 방대한 지식으로 이 책을 읽은 어느 독자는 ‘종.합.선.물.세.트’라는 여섯 자로 읽은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생물학을 ‘문화’와 통섭시키고, ‘경제’와 통섭시키며 심지어 '마음', ‘도덕과 윤리’를 생물학으로 통섭시킨다. 그리고 예술까지….  윌슨이 넘나들지 않는 영역은 없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윌슨은 계몽주의를 부활시키고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부활하며 시대를 역주행한다.

    물론, 본래 삶이란 것이 자연과학, 사회과학, 문화 예술, 경제 등이 나눠지지 않고 한 덩어리이듯, 학문 또한 각기 따로 존재하면서 독자적인 영역만을 고집하며 대립할 필요는 없다. 또, ‘이제 우리가 진리의 행보를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옮김이 최재천의 서문에도 찬성하다. 그러나 윌슨이 말하는 이 통섭은, 위험하다! 이 통섭은, 개별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하자는 ‘모자이크’나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개별의 존재를 뜨거운 도가니에 넣어 가열하고 휘저어서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멜팅 포트(Melting pot)’이기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의 ‘리브리아’라면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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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안정을 위해 인간의 모든 감정을 없앤다는 내용의 영화 <이퀼리브리엄>(커트 위머 감독/ 크리스찬 베일, 에밀리 왓슨, 숀 빈, 테이 딕스 주연). 안정과 균형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을 정기 복용하도록 하고, 책, 예술, 음악, 술, 동반견(애완견) 등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금지시키는 가상 국가 '리브리아'가 배경이다.



    “... 철학, 즉 모르는 것에 관한 숙고는 그 통치권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우리의 공동목표 중 하나는 철학을 과학으로 최대한 빨리 전환시키는 것이다. 세계가 정말 지식의 통섭을 장려하게끔 작동한다면 나는 문화의 영역도 결국에는 과학, 즉 자연과학과 인문학 특히 창조적 예술로 전환될 것이라고 믿는다. (중략) 철학, 역사학, 윤리학, 비교종교학, 미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은 과학에 접근할 것이고 부분적으로 과학과 융합할 것이다. (중략) 미국 의회에 계류 중인 법률의 절반 정도는 중요한 과학 기술적 요소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이 쟁점들 중 대부분, 예컨대 인종 갈등, 무기 경쟁, 인구 과잉, 낙태, 환경, 가난 등은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 통합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 ”(45p, 제2장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이것이, 왜 통섭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다. 통섭한다면, 무기 경쟁, 인구 과잉, 낙태, 환경, 가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의 해결은 좋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섬뜩하다.

   “ ... 유전규칙을 해독함으로써 인간 두뇌가 터득할 수 있는 모든 의미와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 그리고 즐기고 싶은 모든 모험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것이고 감정은 무제한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거짓과 참이 가려질 것이며 우리는 서로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종의 일원이며 생물학적으로 유사한 두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96p, 제3장 계몽사상)

    이것은, 생물학이 통섭한 철학과 인문/사회과학의 모습이다. 유전규칙에 따라 감정과 의미 구조를 밝힐 수 있으며, 심지어 거짓과 참마저 밝힐 수 있다. 사회 안정을 위하여 감정과 의미가 통제된다면 바로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세계다.

    “...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험을 쳐서 그 점수에 해당되는 교육 기관에 들어가게 되고 자신들의 천부적 재능에 가장 적합한 직업을 갖게끔 되어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이 멋진 신세계에서는 환경변이가 증가할 것이고 선천적 능력은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 만일 시험 점수와 그에 상응하는 환경이 유전자를 반영한다면 유전도 자체는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쓰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그 사회에서는 결과의 균일성이 최고의 덕목이 될 것이다. 예컨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오히려 홀대받고 지체아들이 개별적으로 집중 받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아이들을 능력과 성취 면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함이다...” (225p, 제7장 유전자와 문화까지)

    이건, 생물학이 통섭한 문화와 사회학의 모습이다. 아이들의 유전적인 성향을 분석해 천부적 재능에 적합한 직업을 갖게끔 해줄 수 있다. 물론, 때로는 강제되거나 장려될 수도 있다.

    “... 인간의 행동을 평가할 때 행동유전자를 고려하는 일은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사회생물학은 인간 본성의 생물학적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한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중략) 인간사회생물학의 주요 연구전략은 가장 높은 진화적 적응도를 안겨주는 사회 행동이 무엇인지를 예측하기 위해 집단유전학과 생식생물학의 기본 원리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일이다. 이 예측들은 세심하게 설계된 현장 연구의 결과 분만 아니라 민속 기록과 역사 기록에서 얻은 자료들과 비교/평가된다 ... (297p, 인간 본성의 적응도)

   “... 인간의 협동 성향과 배신 성향이 유전되는 것이라 상정해 보자. 즉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더 협동적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경향이 덜하다고 가정하자.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덕적 소질은 지금까지 연구되어온 다른 모든 정신적 특성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중략) 인간 본성의 윤리적 차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충분히 탐색되기 시작하면 도덕 논증의 선천적인 후성 규칙들이 결속, 협동성, 이타성과 같은 단순 본능들로 그저 한데 모아 놓은 형태가 아님이 판명될 것이다. ... (437p, 제11장 윤리와 종교)

    이것은 생물학이 통섭한 ‘인간 본성’과 ‘윤리’, 그리고 ‘종교’다. 생물학적으로 협동 성향과 배신 성향 등을 밝힐 수 있다. ‘내’가 협동 성향이 강하다면 좋겠지만, 배신 성향이 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한마디로 ‘낭패’다. 때로, 사회 안전과 발전, 성장을 위하여 구금되거나 사회적인 '왕따'를 당할 수 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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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윌슨 저 <<지식의 대통합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북스 2009)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생물학과 자연과학, 인문과학이 통섭한 상황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과 거짓을 확인할 수 있으며, 천부적 재능을 알 수 있으며, 협동성, 이타성, 심지어 도덕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사회에 접목한다면?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이다. 세계는 균형감 있고 안정되고 평화로운 ‘신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 좋고, 윌슨의 말처럼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구축'할 수 있으니 좋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는 자민족이 원래부터 신성하다고 하는 혈통우월론을 폈다. 그 입증을 위하여 인체실험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로 실제로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혈통적 또는 우생학적 우월함을 과학적으로까지 증명하기도 했다. 혈통 우수민족과 열등민족을 구분하는 이 관념은 ‘열등민족’인 유대인 박해와 주변국에 대한 정복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등한 인류는 남기고, 열등한 인류는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인류가 발전할 수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망상은 실패했지만, 당시에 행해졌던 인체 실험의 결과는 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내었고, 현재도 구해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혈통우월론과 전쟁을 긍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윌슨 자신도 통섭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사회, 즉 ‘파우스트의 유황냄새’가 나는 섬뜩한 사회는 ‘전체주의적인 색채를 띠기 때문에 추구할 수는 없다’고 경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유전 연구가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하면서 이 세계를 그리고 있다. 딱히 예로 들 다른 상황이 없었던 것일까.

     만나지 않아야 할 것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그렇고 도토리와 감, 당근과 오이가 그렇다.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다 다른 차와 만나지 않는 것이 좋고, 횡단보도의 사람과 주행하는 차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디 삶이 그런가. 만나지 않아야 할 것이 만나고 문제가 생긴다. 피해보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건 의지나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느닷없이 사랑이 오고 느닷없이 만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만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섬뜩한’ 생물학을 만나야 한다. 윌슨의 생물학 중심 <<통섭>>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미 그 징후는 뚜렷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앞으로의 세계는 ‘생물학과 우주공학 기술을 갖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제4의 물결을 이야기했고, 인간유전자(Genom)도 이미 그 지도(Map)가 그려졌다. 윌슨의 말처럼, '이제 유전자들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밝혀야 하는 단계'만 남아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부모 모두 선천적인 당뇨병을 가지고 있으니 갓 태어난 자신들의 아기에게 당뇨발병을 억제하는 유전자 조작을 허락 해달라는 청원을 법정에 제출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애를 많이 낳자고 하면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참, 변덕도 심하다. 언제는 낳지 말자고 하더니! 이제 윌슨의 <<통섭>>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생물학을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지칭한다. 뚜껑을 여는 순간,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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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Entfremdung)는 생산관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활동에 의한 산물--생산물이나 사회관계, 두뇌활동에 의한 관념과 사상, 과학, 예술 등-- 그 자체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활동하며 독자적인 힘을 가지게 되어, 인간을 도리어 지배해버리는 힘이 될 때 소외는 나타난다.(Canon EOS D60 / 경기도 양평 / Tamron 17-35mm )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유전자 지도가 완료되고 그 기능이 확인되었고 의도에 따라 조작이 가능해졌다. 상자를 열면 희망이 있다. 암이 정복되고 불치병이 치유된다. 아픈 사람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공유화된 것이 아니라 재산 증식이 목적인 사유재산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상자에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 더 많다. 부자는 아픈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가난한 자는 아파야 할 것이며, 부자는 머리 좋고 튼튼한 아이를 가질 것이며 가난한 자는 머리 나쁘고 허약한 아이를 가질 것이다. 이것을 정치학이나 경제학, 또 사회학과 통섭시켜 보자. 그 길을 따라가면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의 ‘리브리아’에 닿는다. 너무 시니컬하다고? 긍정의 힘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에서 안정과 균형, 평화를 이루었다는 ‘리브리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프로지움’을 복용해 안정과 균형, 평화를 이루었던 이 나라는, 감정 없는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군에 의해 전복된다. 왜? 안정과 균형, 평화, 여기에 더해 발전과 성장이라는 이상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감정, 개성, 다양함과 같은 생명의 본질을 억압해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생명이라는 것은 기계가 아니어서 표준화, 규격화할 수 없는 것이다.

     소외(Entfremdung)는 생산관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활동에 의한 산물--생산물이나 사회관계, 두뇌활동에 의한 관념과 사상, 과학, 예술 등-- 그 자체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활동하며 독자적인 힘을 가지게 되어, 인간을 도리어 지배해버리는 힘이 될 때 소외는 나타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른 것은 몰라도 윌슨의 <<지식의 대통합 통섭>>은 적어도 두 가지를 알려주는 것에는 성공한 것 같다. 생물학이 다른 학문과 통섭되었을 때는 위험하다는 사실, 그리고 통섭이라 하더라도 생물학 중심의 통섭은 섬뜩하다는 사실!




2010/05/20 02:19 2010/05/20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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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오페라의 유령
- 가스통 르루 저 / 성귀수 역 / 문학세계사, 2001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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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시대부터 우리와 함께 존재해온 가면. 가면!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 되어보고 싶다는 갈망’일지 모른다(형일초등학교 학생들의 탐춤 공연 /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경북 구미 )



     인류가 만들어낸 물건 중에 수천 년 동안 원형을 간직한 것 중의 하나가 ‘가면’입니다. 원시시대부터 우리와 함께 존재해온 가면은, 얼굴을 가리거나 초자연적인 존재를 표현하거나, 혹은 전쟁에서 용맹함을 과시하거나 또 자신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말뚝이는 가면의 힘으로 양반들에게 저항하고, 복면 달호는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면서 성공을 꿈꿉니다. 나뭇잎이나 나무에서 종이, 철, 플라스틱 등으로 만드는 재료가 변했고, 6세기 신라시대의 가면처럼 옻칠을 하거나 하회탈처럼 나무를 깎고 형형색색의 색을 칠을 하기도 했지만 수천 년 동안 그 원형을 지켜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가면은 지금도 유용합니다. 가면무도회라는 이름으로 대놓고 ‘내’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고, ‘베트맨’, ‘마스크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이 시대의 영웅들이 가면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가면!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 되어보고 싶다는 우리의 ‘이룰 수 없는 갈망’일지 모릅니다.

     당대 최고의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였던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1868∼1927)가 쓴 <오페라의 유령>에서 ‘에릭’은 사랑을 위해 가면을 쓰고, 사랑을 위해 가면을 벗어던집니다. 원래 에릭에게 있어 가면은 자신의 흉측한 외모를 가리기 위한 위장용이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오페라를 보기 위해 2층 5번 박스석에 앉을 때, 지상의 정상적인 사람과 만날 가능성이 있을 때 가면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흉측하지만 가면을 쓰지 않고서도 에릭은 오페락 극장의 지하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수치심이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혼자 있을 때에는 다 벗고 있더라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습니다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을 때에 비로소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하 세계에 있을 때 에릭은 가면이 필요 없습니다. 유령이 아니라 정상인으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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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추리 소설 <오페라의 유령>(가스통 르루 저, 성귀수 역, 문학세계사, 2001)



     그러나 에릭이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순간, 절망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세상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늪이 되어 버립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위험한 것입니다!(대부분의 경우 남자들은 생산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능력이 있는 남자이든, 약한 남자이든 남자들은 생산욕을 극대화하고 자원을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에릭은 ‘음악의 천사’입니다. 그의 지하 생활에서 음악은 그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존립 근거였습니다. 그가 세상에 올라오는 날은 오페라가 있는 날이고 음악은 그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합니다. 그 정도면 ‘해피’했을 텐데 그 음악이 크리스틴을 만나게 하니 음악이 그를 살게도 죽게도 합니다. 영화 <배트맨>의 ‘펭귄’은 흉측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만, 에릭은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가면을 벗은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기만을 원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에 ‘음악의 천사’ 에릭이 있다면, 우리 시대에는 ‘팝의 천재’ 마이클 잭슨이 있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마이클 잭슨이 꿈꾸었던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흑인이라는 차별은 그로 하여금 세상에 나오기보다는 차별이 없는 음악을 선택하게 했을 것이며 잭슨은 음악에 차별 없는 음악에 심취했을 것입니다. ‘빌리 진’, ‘비트 잇’ 등 잭슨의 팝은 세상을 열광시켰습니다. 음악이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어가자 잭슨은 숨겨 놓았던 아픔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 되고 싶다는 숨겨진 열망! 그는 마침내 생물학적인 가면을 착용합니다.

     이것을 ‘타자의 내면화’라고 합니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흑인인 그가 남들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백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하고 과감하게 실천하게 하는 것. 그것이 타자의 내면화입니다. 에릭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에릭은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해 가면을 쓰고 지하로 숨어듭니다.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울마저 모두 없애버립니다.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입니다. 이 내면화의 결과는 비참합니다. 잭슨은 쉰이라는 나이에 죽었고 에릭은 유령이 되어 살아갑니다. 이처럼 시선이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간파한 미셀 푸코는 ‘시선은 권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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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은 시선과 시선의 마주침이 없다. 그래서 편안해진다(퓨전밴드 '훌'의 '세상울림 콘서트'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남이섬)



    ‘아름다운’ 크리스틴은 ‘흉측한’ 에릭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시선이란 권력적이어서 이를 벗어나려고 하면 ‘초인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향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크리스틴이 가면을 벗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흉측한’ 자신에게 키스해 주었을 때, 즉 크리스틴에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크리스틴을 떠나보냅니다. 에릭이 시선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크리스틴이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크리스틴의 고통이 되리라는 것을 에릭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줄 준비가 된 ‘아름다운’ 크리스틴을 떠나보냅니다. 이처럼 ‘나’의 시선이 자신의 것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간편하고 편한 차림새를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날이 더운데도 불구하고 와이셔츠를 입고 긴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거기에 윗도리까지 입고 출근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늘 그것이 ‘예의’이며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루마리를 입었을 것이고,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살고 있었다면 간신히 몸만 가리거나 아예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나’는 없고 타자의 시선이 존재할 뿐입니다. 추워서 입는 옷이 아니라면 ‘옷’도 가면의 한 형태입니다. 에릭의 망토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에릭이 썼던 가면을 의류라는 형태로 변형해 착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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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인형. 팔을 들고 있거나 피리를 불거나 하트를 그리더라도, 저 포즈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자의 의지다.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남이섬)


     시선이 고착화된 형태로 나타날 때 그 시선은 또 하나의 권력입니다. 그래서 미셀 푸코는 ‘시선은 권력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나’는 나’라고 외칠 때 그 '나'는 에릭이 되어버립니다. 무엇이 그 시선을 만드는 것일까요? 영화 <복면 달호>에서 왜 ‘달호’가 가면을 써야 했을까요? 이 문제는 나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고 계십니까? ‘저 사람은 가난하구나’, ‘저 사람은 명품 가방을 들고 있네’, ‘왜 저렇게 입고 다닐까’ 이렇게…. 아니면, ‘이렇게 하고 나가면 남이 어떻게 볼까’, ‘부끄러워서 못 나가겠어’, 또 ‘남들은 저렇게 좋은 집에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권력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고 ‘나’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에릭처럼 늘 가면을 써야 하거나 반대로 에릭을 오페라 극장 지하에 가두게 될 것입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영화 <복면 달호>의 결말처럼, 가면을 벗고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0/05/17 15:43 2010/05/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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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파토스(Pathos)1)

- 김애란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 2008)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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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낙산성곽


     채플린이 달리고 있다. 깃발을 흘리고 간 자동차를 보게 된 채플린이 그 깃발을 주워 돌려주려고 뛰고 있는 것이다. 뒤뚱뒤뚱 우스꽝스러운 오리걸음에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다 우연히 시위대와 마주친 찰리 채플린. 경찰은 깃발 든 그를 시위 주동자로 체포한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웃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채플린의 생뚱맞은 표정에 나는 또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다.

    이 집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다. 수수깡으로 얼기설기 지은 집에 자식은 아홉이다. 집에서 자면 담장 밖으로 발이 튀어나오고, 일어서면 지붕으로 머리가 튀어나온다. 옷을 해 입히지 못해 커다란 천을 하나 가져다 머릿수대로 구멍만 내서는 함께 두르고 다닌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 웃긴다. 이건, <흥부전>이다.

    아버지가 ‘분홍색 야광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로’ ‘십수년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고, ‘나’는 상상한다. 아버지는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르네오 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간 것이고,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까지 한 파렴치한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십수년 만에 ‘낯선 억양의 인사를 건네며’ 부고(訃告) 한 장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그날 술에 취해 들어와 ‘나’에게 묻는다. “잘 썩고 있을까?” 절대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온다. 이건, 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다. 우스꽝스러운 걸음새와 생뚱맞은 표정의 찰리 채플린에게 웃듯, 아홉 명의 흥부 자식들이 커다란 천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에 웃듯, 이번엔 김애란의 생뚱맞은 문장에 웃는다.


    ...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나를 낳았을 때도, 보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나를 낳았을 때도 뛰어오지 않은 사람이었다. (중략)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렇게 느렸던 아버지가 단 한번, 세상에 온힘을 다해 뛴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아버지는 어머니가 올라온 그날부터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피에 좋아하는 처녀와 한방에서 떨어져 잤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버지의 애원과 짜증과 허세는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아버지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날만은 ‘평생 이 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허락했다. 단, 지금 당장 피임약을 사와야만 한 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고. / 아버지가 뛴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향해 뛰었다. ...

 (<달려라 아비>, 소설집 p12~p13)

    ... 어둠 속,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어머니한테 얼핏 담배냄새가 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골이 나서 ‘아주 나쁜 엄마군!’이라고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아주 긴 고요가, 어머니의 숨소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작게 움츠러든 몸을 더욱 안으로 말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무엇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잘 썩고 있을까?” ...

 (<달려라 아비>, 소설집 p27~p28)


     누군가 이 웃음과 재미를 만들어내는 김애란을 두고 ‘긍정의 힘’을 가졌다거나 ‘낙천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혹자는 ‘부정의 긍정’이라는 조금 어려운 말로도 설명하고, 심지어 ‘화해’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김애란을 두고 부정적이나 긍정적이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 더 가깝게 서있다고 하겠다. 김애란이 소설을 통해 만들어내는 웃음과 재미는 ‘파토스(phtaos)’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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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서울 낙산



    문학에서 파토스적인 웃음은 약자가 고통을 겪으면서 발생한다. 모던 타임즈의 챨리 채플린이나 흥부와 그의 가족들, 혹은 <달려라 아비>의 ‘나’와 ‘어머니’나 모두 강자가 아니라 약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김애란의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 또한 택시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홀어머니와 그 딸(달려라 아비), 옥탑방에 사는 가족(스카이콩콩), 불만증에 시달리는 ‘그녀’(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공원에 버려진 아이(사랑의 인사), 홀아버지와 사는 가난한 소년(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혼자 사는 여자(나는 편의점에 간다), 월세 쪽방에 사는 여자(노크하지 않는 집) 등으로 모두 약자, 혹은 소외 계층에 속한다. <모던 타임즈>의 챨리 채플린이 세상과 화해한 것이 아니듯, <흥부>가 낙천적인 것이 아니듯, 김애란 또한 긍정적이라거나 혹은 낙천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애란은 다만 그들을 어떤 형식을 통해서든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소외계층 주인공들이 (소설 속에서)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소외를 만들어내는 환경이나 적대 세력과 투쟁하기(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파토스적 효과를 연출하며 우회하기(김려령 소설 <<완득이>>) (3)소외를 만들어내는 환경과 세력에 야합하기(전광용의 단편소설 <꺼삐딴리>). (1)의 경우 소설은 이른바 ‘비극’을 연출하며 ‘눈물’을, (2)의 경우 ‘재미’를, (3)의 경우 풍자(諷刺, satire)2)를 만들어내게 된다. 김애란의 소설은? 맞다. (2)에 해당한다. 김애란은 소외의 고통을 파토스적인 웃음과 재미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재미있다.


    ... 미아보호소 안은 훌쩍이고 칭얼대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우는 아이들 사이를 가까스로 헤쳐나간 끝에 나는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여직원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최대한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헛기침을 한 뒤 한번 더 정중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

 (<사랑의 인사>, 소설집 p146)

    ... “비싼 거다. 많이 먹어라.” / 냄비를 비울 때까지 우리는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려가며 복어를 뜯었다. (중략) “복어는 말이다.” / 아버지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 “.......” / “ 그 독은 굉장히 무서운데 가열하거나 햇볕을 쬐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복어를 먹으면 짧게는 몇 초, 길게는 하루 만에 죽을 수 있다.” / 나는 후식으로 나온 야쿠르트 꽁무니를 빨며 아버지를 멀뚱 쳐다봤다. / “그래서요?” / 아버지가 말했다. / “너는 오늘밤 자면 안 된다. 자면 죽는다.” / 짧은 정적이 흘렀다. / “뭐라구요?” / “죽는다고.” /  나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요?” / “나는 어른이라 괜찮다.” / 나는 몸을 꼰 채 식탁 위에 수줍게 서 있는 아버지의 야쿠르트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주방에 커피를 시켰다. / “근데 왜 나한테 이걸 먹였어요?” / 아버지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 “네가.....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어릴 때 이걸 먹고 견뎌서 살아남았다.” / “정말이요?” / “그럼.” / 아버지는 덧붙여 말했다. / “옆집 준구네 삼촌도 ......이걸 먹고 죽었다.” (중략) “아버지, 전 이제 어떡하죠?” / 아버지가 말했다. / “너는 오늘밤 자면 안 된다. 자면 죽는다.”  ...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소설집 p167)


     왜, 김애란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재미있게’ 말하는가? 즉, 왜 (1), (3)의 형식이 아니라 (2)인가?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체념인가, 아니면 자조인가. 혹은 문제를 현상 그대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것인가. 문제에 대항할 상대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몰라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건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며 설령 안다고 해도 의미 없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김애란은 파토스적인 웃음과 재미를 만들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이든 (2)든, 혹은 (3)의 형식을 취하든 어느 쪽이든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문학은, 조짐과 징후를 포착해 전하는 의사소통이자 한 시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지 진단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

(황지우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31p)



각주)-----------------

1) 파토스(pathos)는 '일시적인 격정이나 열정, 또는 예술에 있어서의 주관적/감정적 요소'를 뜻한다. 사전적 어의로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말하며, 애상감, 비애감의 뜻을 가지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특정한 시대·지역·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적 원칙이나 도덕적 규범을 지칭하는 에토스(ethos)와 대립하는 말이다.

 2) 풍자(諷刺, satire)는 개인·사회·정치 등의 악덕·모순·부조리·허세 등을 비판적 또는 조소적으로 빈정대는 표현기법이다. 어원은 일반적으로 <가득히 담긴 접시>라는 뜻의 라틴어 lanx satura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뒤에<혼합물>,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조롱하기 위해 각각 다른 주제를 잡다하게 다룬 것>을 뜻하게 되었다. 풍자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비평적 태도를 취하므로 아이러니와 비슷하지만 아이러니보다는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 의도를 지닌다. 또한 대상의 약점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직접적인 공격을 피하고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2010/05/15 01:33 2010/05/1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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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고독한 연대기 

- 하진1)의 소설 <기다림(Wating)>(시공사, 1999)과 <광인(The Crazed)>(시공사, 2007) -


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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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진의 소설, <광인(The Crazed)>(시공사, 2007)과 <기다림(Wating)>(시공사, 1999)



기다림 뒤에 ‘더는 없다’_ <기다림>(시공사, 1999)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강변역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 사랑이 버스를 타고 도착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하진은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균형감각과 예술성과 절제미, 서정성까지 갖춘 필체로 ‘아니다’라고 말한다. 혹은 니체가 ‘행위자란 행위에 덧붙여진 단순한 상상적 허구일 뿐이며, 행위가 전부인 것이다’ 2)라고 했듯 ‘삶의 의미는 현재형이니 미래를 꿈꾸지 마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혹은, ‘사랑보다는 편안함을 택하겠다’는 린의 말처럼 그저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왜 그렇게 ‘목 메어 우는가’3)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미국 문단에서 ‘이 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Realist)’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작가 하진이다. 리얼리스트. 스토리에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실재하는 그대로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 리얼리스트가 '있는 그대로’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서술해 나간 <기다림>의 줄거리는 단 석 자, ‘기다림’이다. 작가 하진의 뛰어난 문체를 빼고 보면 이 소설은 끝날 것 같지 않은 기다림만 남는다. 소설의 주인공 ‘린’이나 그의 아내 ‘수위’, 유부남 린을 사랑하는 골드 미스 ‘만나’ 모두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심지어 소설이 끝나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기다림을 계속할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들이 하는 일이란 게 마냥 기다리는 일이라니!

     기다림은 이렇다. (1)도시의 골드미스 ‘만나’를 사랑하는 유부남 ‘린’은 촌스럽고 못생긴 그의 아내 ‘수위’와의 이혼을 기다린다. 이혼하기 위해 그는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고향을 방문하고, 해마다 법원에 가지만 늘 실패한다. (2)‘만나’가 기다리는 것은 린이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는 것이다. ‘린’이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이혼에 성공했는지 늘 궁금해 한다. (3)린의 촌스럽고 못생긴 아내 수위는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을 드러내지 않는다. 수위의 기다림은 침묵이다. 원해서 한 결혼은 아니지만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셨고 딸 ‘화’를 잘 기른다.

     아내 수위와의 이혼을 위해 몇 번이나 집을 찾지만 그때마다 에피소드를 만들며 실패했던 린이 중국 법에 따라 별거 후 17년이 지난 후에야 수위와 이혼하고 만나와 결혼하면서 그 모든 기다림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니었다! 기다림은 다시 반복하고 변조된다. (4)린과 결혼하고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는 만나는 심장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녀는 이제 죽음을 기다린다. (5)만나의 요청으로 전처 수위를 만난 린은 울면서 수위에게 돌아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린은 이제 수위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6)돌아오겠다는 린을 반갑게 맞이하는 수위는 다시 린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는데 작가 하진은 소설을 끝낸다. 린이 수위에게 돌아가지 않은 채, 만나가 죽지 않은 채 이야기가 끝나고 주인공들은 그 상태로 소설 안에 갇힌다. 게다가 하진은 또 다른 기다림을 배치한다. (7)린과 만나의 딸 ‘화’는 애인과의 결혼을 기다린다. 딸 ‘화’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겠지만 앞선 세대 린과 만나처럼 연애와 결혼, 환상과 현실의 격차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다시 무엇인가를 기다릴 것이다. 앞선 세대와 같은 모양새로 사랑하고 기다리진 않겠지만 다른 이유, 다른 모양으로….

     ‘역사는 반복한다.’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사>를 쓴 투키디데스가 한 말이다. 그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후 가라타니 고진 또한 설령 ‘종언(終焉)’을 선언한다 하더라도 ‘종언이란 역사에 있어 반복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4)고 냉정하게 말했고, 현대철학의 거봉 마르크스도 역사는 반복하지만 변조한다고 말했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거쳐 양(量)에서 질(質)로 변형되며 변화를 산출한다. 정의 모순은 반을 산출하고 동일화되고, 부정은 다시 부정되어 또 다른 질의 변화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고 변조하면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삶을 영위해 왔다. 만약 이야기를 이어간다고 해도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다시 기다림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하진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소설 속 인물들의 기다림을 종언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리얼(real)이다. 대체 리얼(real)이란 무엇인가. 리얼(real)을 ‘실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대체 무엇이 실재하고 어떤 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 참 리얼하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있는 것인가, 혹은 없는 것인가? 이미 눈치 챘겠지만 <기다림>은 삼각구도다. 얼마 전 종영된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김수현 극본, 정을영 연출)에 대입한다면, 세련되고 럭셔리한 외모의 ‘이화영(김희애 역)’은 ‘만나’, 착하고 천사 같은 아내 ‘김지수(배종옥 역)’는 ‘수위’, 궤도를 벗어나 두 여자 사이를 방황하는 ‘홍준표(김상종 역)’는 ‘린’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소설 <기다림>의 인물들과는 다르게 미워하고 분노하고 갈등한다. 이 삼각구도에서 절제와 기다림이 리얼인가, 아니면 갈등과 분노가 리얼인가. 혹은 소설 <기다림>이 리얼한가, 드마라 <내 남자의 여자>가 리얼한가.

    리얼리스트 작가 하진은 착했다. 착한 하진은 분노와 갈등과 배신이라는 극적인 요소를 빼고 위트와 해학이라는 다른 장치들을 스토리 속에 숨겼다. 이 장치는 자못 심각해질 수 있는 삼각구도를 갈등 없이 해결해 버리는 마력을 발휘했고 미움과 분노, 갈등라는 감정의 조울(躁鬱) 없이도 그의 소설은 재미있게 읽힌다.

     그런데, 읽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 인생이 뭐 별 것 있는가. 먹고(eat), 생존하고(survive), 재생산(re-produce)하는 것! 하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면 뒤에 더는 없다’는 니체의 말처럼 하진의 소설도 ‘기다림 뒤에도 더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리얼리스트는 ‘삶에 뭔가 있다’라는 망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여. 그게 다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아포리즘. 그렇게 마침내 리얼리즘은 니힐리즘(nihilist)5)과 만나고, 리얼리스트는 니힐리스트(nihilist)와 조우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뒷맛은 갑갑하다. <기다림(The Waiting)>은 저녁 거리의 한 모퉁이 앉아 ‘뭐, 그게 인생이지’를 중얼거리며 술 한 잔을 마시게 하거나 김행숙의 싯구처럼 “네 개의 발을 모두 들고 헬리콥터처럼 공중6)”에 뜨고 싶게 만든다. 정말 ‘그저 그런 것’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그런 것’이라는 사실(real)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가끔 미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Cogito ergo Boom!


(c)Copyright by Mudbull

▲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하회탈춤_중탈



무엇이 그를 미치게 하는가_ <광인(The Crazed)>(시공사, 2007)


    이 착한 리얼리스트가 세상에 쓴소리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그의 소설은 문예사조로 치면 ‘리얼리즘(realism)’이다. 실물(實物)을 뜻하는 라틴어 'realis'에 생각이나 관념의 뭉치를 뜻하는 ‘-ism’이라는 꼬리표를 단 것이다. 관념이나 상상에 대립되는 ‘리얼’로 그는 세상에 관념의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 그것도 1989년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났던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사태라는 참극을 이야기해야 하니 조심스러울 밖에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묘사하는 현실주의적인 문예사조인 리얼리즘으로, 관념적인 유형보다 구체성을 중시하며, 이상주의와 같이 선택적/수사적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를 추구하는 리얼리즘으로 ‘관념’을 이야기해야 하는 난감함이다. 하진은 그 이야기를 ‘광인’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다. 소설 <광인(The Crazed)>이다.

     소설 <기다림(The Waiting)>의 주인공들이 ‘사랑’에 몰입한다면 <광인(The Crazed)>의 주인공들은 <지적인 자유>에 몰입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 것도 없기는! 여기 사색과 문학의 즐거움이 있다.’ 적어도 샨닝 대학 중문학부의 ‘양 교수’에게는 그렇다. 그에게 있어 삶의 가치는 ‘먹고, 생존하고, 재생산’하는 것이라기보다 문학을 통해 삶을 조명하고 해석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돈이나 권력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는 무관심하지만 문학이란 범주 안에서만은 자유롭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자다.

     문제는 그런 그에게도 정치와 권력이라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는 ‘미쳤다’. ‘자유로운 문학은 없다. 단지 정치와 권력에 끌려 다니는 종에 불과하다’는 양 교수의 진술은 그를 미치게 했던 이유의 함축이자 이 소설의 핵심이고, 하진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정치와 권력에 끌려 다니는 종’으로서의 지식이라면 그것은 ‘지식 권력(savoir pouvoir)’7)이며 이를 거부하는 양 교수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란 뇌졸중이라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성을 이용하여 스스로 광인이 되는 것이었다. 양 교수가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천천히 알아 가는 양 교수의 제자 ‘완지안’. 그는 미치는 대신 어디론가 떠난다. 혹은 잠적한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쓰면서 ‘미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 자체도 하나의 광기일지도 모른다’는 파스칼의 말로 시작한다. 학생 식당의 ‘광인’은 권력 쪽에 썼다가 희생된 광인이며, 양 교수는 미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광인이다. 양 교수를 이용하는 권력의 하수인 ‘펭’은 권력의 기제 편에 선 광인이며 돈과 권력을 찾아 떠난 완지안의 애인 ‘메이메이’는 권력 기제를 받아들이는 자발적이고 소극적인 광인이다. <베이징 텐안먼 광장 인민운동>에 참가한 학생들은 권력 기제를 거부하는 적극적인 광인들이다.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광인, 하지 않더라도 광인이라면 이 세계에서는 온전하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이것도 ‘리얼’이다.

    그래서 마침내 하진이라는 리얼리스트는 푸코와 조우한다. 무엇이 그들을 미치게 하는가? 미셀 푸코식으로 말하면 그들이 정말 미친 것이 아니라 ‘권력이 미친 것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그의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이른바 ‘광인’의 역사와 사회체제를 정리하고 ‘생산적 권력’, ‘생체권력’, ‘지식권력’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인은 정상인과 구별되어 감금되거나 병자 취급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정상인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거리의 부랑자들은 예전에는 나병환자를 가두던 수용소에 감금되기 시작했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그들은 감금에서 해방되지만, 사회적 질서를 따르겠다는 전제하에서 풀러난다는 것이다. 양 교수처럼 책임지길 거부하는 자는 감금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쳐 한때는 인간의 내면에 들어 있는 어떤 특징으로 간주되던 유별난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광기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둬두어야 할 대상, 치료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의사’로부터 치료받아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 광인과 정상인을 가르는 구분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고, 그렇게 병정신리학자와 권력은 밀착되어진다. 결국 지식과 권력이 뗄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 푸코는 이와 같이 권력에 봉사하는 지식을 ‘지식 권력(savoir pouvoir)'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미셀 푸코가 말하는 권력이란 국가권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인과 정상,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선을 만들고 유지하는 힘’을 말하는 것으로 ‘리얼’하게 표현하자면 ‘권위’라는 개념에 가깝다. 양 교수에게 어떤 모종의 권력에 순종하라고 음모를 꾸미는 ‘펭’은 하나의 권력이다. 펭의 권력은 국가권력(미국 출장비 문제)이기도 하고 지위(地位)를 이용한 개인 권력(추천서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권력은 우리 삶의 곳곳에 흩어져 배치되어 있다. 감옥은 물론이고 병원, 학교, 가정, 직장, 군대, 심지어 마켓 등 모든 근대적인 사회 체제에서 영역은 모두 권력이며 관습이나 고착화된 관념 또한 권력이다. 학교가 진정한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지식 상업을 통하여 사회 유지에 공헌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학교 교육의 목적이 사회화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나 권력 기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슬라보에 지젝은 화장실에서조차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선언했다.8)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정치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념과 관습에 가까운 개념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러므로, 그래서 누구나 이데올로기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하진은 양 교수를 병사(病死)케 하고 완지안을 이름 모를 곳으로 떠나보내며 소설을 끝낸다. 독자에게 생각해 보라는 배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완지안의 이야기를 이어가봤자 결론은 같을 것이라는 하진식 ‘리얼’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소설 <기다림>에서 주인공들이 기다림을 반복하듯이 떠난 완지안은 ‘지식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해묵은 담론과 만나고 스승 양 교수의 절망감을 다시 반복하고 변조할 것이다.

     동일자가 알지 못하도록 변장하고――머리를 깎고 옷을 바꿔 입고――어디론가 떠나는 타자(他者) 완지안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결국 하진식 반복과 변조의 끝, 그 결론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완지안은, 아니 우리는 이 담론의 해결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인가, 혹은 짜라투스트라처럼 체념이라는 깊은 절망을 안고 이 시대를 떠돌게 될 것인가?



각주)-----------------

1)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소설가. 본명은 진쉐페이(金雪飛)이며 하진은 필명 진하(金哈)의 영어 표기다. 1956년 2월 21일에 중국의 헤이룽장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그도 문화 혁명기인 1969년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헤이룽장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를, 산둥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미국에서 톈안먼 사태를 접한 그는 미국에 남기로 결심하고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96년 <Oceans of Words>로 펜 헤밍웨이 문학상을, 1997년 <Under the Red Flag>로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문학상을 받아 미국문학의 흐름에 당당히 합류하였고, 1999년에 출간된 <기다림 Waiting>으로 그해 전미 도서상과 2000년 펜 포크너 문학상을 수상,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르며 미국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2004년에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War Trash》로 펜 포크너 문학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3)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중에서

4)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도서출판비, 2008)

5) 니힐리즘(Nihilism, 虛無主義)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음산한 허무(니힐)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사상적 입장이다. 우주·인생의 진실을 무(無)에서 보려고 하는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나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사상과 닿아 있다. 니힐리즘에서 니힐(nihil) 즉 무(無)가 뜻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더는 없는 것’이다.

6) 김행숙 시집 <<이별의 능력>>(문학과 지성사, 2007) 중 시 <착한 개> 중에서

7) 푸코(Michel Foucault, 1926-84)가 정립한 개념.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을 통하여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선을 유지하려는 힘을 ‘권력’이라 해석하고, 지식이 그 경계선 유지에 사용되면 ‘지식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정신병리학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과학적인 준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냐, 없느냐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식과 권력이 뗄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라는 의미에서 푸코는 ‘지식권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8)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



 

2010/04/29 18:47 2010/04/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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